인문학으로의 초대 - 65. 그리스신화 '나르키소스'의 자기애

yangmok70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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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소스'는 매우 아름다운 청년으로 많은 젊은이들과 소녀들의 흠모를 받았으나 그 누구의 마음도 받아주지 않았다. 그에게 실연당한 숲과 샘의 요정인 '에코'는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다 몸은 사라지고 목소리만 남게 된다.  나르키소스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이들 가운데 하나가, 나르키소스 역시 똑같은 사랑의 고통을 겪게 해 달라고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에게 요구하게 된다.  

나르키소스는 결국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로부터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지는 벌을 받게 되고, 헬리콘산에서 사냥을 하던 나르키소스는 목이 말라 샘으로 다가갔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랑하게 되어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고 샘만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탈진하여 죽게된다. 만지거나 잡으려 들면 달아나기만 하는 자신의 모습에 애간장이 타던 나르키소스는 불러도 대답이 없고 만지려면 도망가는 모습에 시름시름 앓다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던 것이다. 그의 사랑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죽은 자리에서 꽃 한 송이가 피어났는데 그  꽃이 바로 수선화이다.  꽃말 역시도 '자기애'이다.

나르키소스는 ‘망연자실’이라는 뜻이다.  타인이 나르키소스의 얼굴을 보면 그 자리에서 넋이 나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르키소스가 자신의 얼굴을 물에 비춰보면서 자기사랑을 하게 된 것은, 또 한편으로는 타인과 소통할 줄 몰랐던 나르키소스의 비극이기도 하다. 나르키소스가 미소년으로 자라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보게되면 불행하게 될 것이라는 어느 예언자의 말을 있었고 있던 어머니가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노력을 계속 했었기 때문이었고,  어머니의 요청으로 하인들과 요정들이 물에 자신의 얼굴을 비취보려고 하면 물결을 흔들어놓아서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하려는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아름다움 뒤에 하인과 요정들의 노력이 있다는 것을 몰랐고, 숲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본 적이 없었다.  에코의 처절한 원망이나 요정들의 기도에는 사랑의 갈구만이 아니라,  자기를 돌아봐주기를 바라는 작은 관심의 요구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자기사랑의 의식이 너무 높았던 나르키소스는 결국 스스로의 세계에 갇히게 되고, 그의 죽음으로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것과는 반대로 타인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도 자신을 고통으로 옭아메고 파멸로 이끄는 수가 있다. 자신보다 타인이 생각하는 것을 따르기만 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 역시 불행해지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갈등이라는 것은 가장 어렵고, 모든 불행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때로는 나 홀로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때가 있다.  그러나 절대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의 관계는 유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만, 사람들의 횡포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서인지 혼자서 조용하게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기는 하다.  

인간관계의 기준선이 어디까지,  그리고 어떤것이 적절하고 적당하다는 것인지 판가름하기 애매모호한 경우가 수두룩하다.  타인의 삶에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험담하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르게는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면서 살다보니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해서 기어이 마음에 병이 드는 사람도 있다.  타인과의 관계가 삶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큰 것이다. 하지만 너무 타인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살아도 나르키소스처럼 자기사랑만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불행을 초래하는 것이지만, 타인을 너무 의식하고 살아도 그것 역시나 불행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