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nude)라는 단어은 라틴어의 '벌거벗은' 이라는 의미를 가진 'nudus' 에서 따온 말이다. 예술장르에서 누드화는 미술적으로 절대 빠질 수 없는 아주 핫한 키워드인데, 원시예술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인간의 육체를 묘사하거나 조각하는 데서 비롯된 조형예술을 포함하여 인간의 생명력과 움직임과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육체와 그 육체가 가지고 있는 복잡미묘한 아름다움을 표현해는 것은 예술의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인식되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의 영역에서 미적 대상으로서의 육체가 역사적으로는 중세시대에 잠시 제약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것은 일관된 사실이다. 오늘날에는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인식되는 보디페인팅도 이 누드예술의 진화된 영역이며, 보디빌딩 역시도 자기의 육체를 미화하면서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예술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시대의 예술을 들여다 보면, 비례와 비율의 균형미를 건축과 조각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물들에서도 그 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려고 했었던 것이 돋보인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각종 누드조각과 벽화 그리고 각종 기록물에 등장하는 그리스 시대의 벌거벗은 성인 남자의 모습들인 것이다.
그리스 시대의 누드 작품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약 2800년 전부터 시작되었던 올림픽 축제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들이다. 그리스의 올림픽 축제는 로마가 그리스를 지배하기 전까지 무려 1000년간을 이어져온 축제였는데, 이 축제에는 성인남자만 들어갈 수 있었고 여자와 노예는 제외되었다고 한다. 그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관습에 의하여 성인남자의 육체야말로 완전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을 하였던 것이며, 성스러운 올림픽에 참가하는 모든 남자는 누드상태로 발가벗고 참가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사용하는 체육장(gymnasium)이라는 단어도 '벌거벗은'이라는 뜻의 김노스(gymnos) 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니, 그리스 시대의 성인남성의 육체에 대한 동경이 어느정도로 강하였는지를 알 수 있겠다.
여자는 올림픽 경기를 관람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만약 몰래 관람하다 들키면 벼랑에서 떨어뜨려 죽이는 형벌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리스시대의 누드작품들 중에서는 비너스 여신에 대한 누드화이외에는 여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여자의 알몸을 은밀하게 생각하였으며 오로지 남자의 육체만을 완전한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드러내놓고 바라보았다고 할 수 있다. 간혹 여자의 몸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얇게라도 옷으로 중요부위를 가리고 있는 형태로 작품들이 만들어져 있는 것들이 있으니, 여자의 알몸이 남자의 마음을 쥐어흔들기 때문에 이것을 경계하고자 했던 것인지, 오히려 여체의 아름다움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문화적 특성때문에 이것을 은밀하게 숨기려고 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그리스 시대의 누드작품들은 죄다 남자들 투성이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스 시대가 끝나고 로마시대가 열리면서 기독교문화가 문화적 지배의식으로 자리를 하게 되자, 그 영향으로 누드작품은 그리스 시대처럼 완전히 발가벗은 형태가 아니라, 성스럽고 고결한 것으로 꾸며져서 표현이 되어진다. 특히 여성의 몸을 아주 성스럽고 신성한 것으로 인식하여 함부로 노출하거나 보여주어서는 안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풍조가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이 기독교 문화가 강력하였던 로마시대부터 심지어 중세문화에까지 약 1000년 넘는 세월동안은 누드화라고는 하지만 마치 부드러운 비단옷을 살포시 걸친 듯한 모습의 성서 속의 마리아와 이브를 묘사한 반누드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모든 예술장르의 국경을 넘나드는 결합과 다양성의 표출이 가능해지면서,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 완전누드, 심지어는 포르노 그래피 수준의 완전 알몸의 예술적 작품들이 대거 등장하고 이것이 대중적인 상업예술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누드역사의 흐름을 연구해보면서 의문을 가져볼 만한 것이 있다. 왜 동양의 작품들 속에는 서양의 누드작품들처럼 대중적으로 공개될 수 있는 누드작품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동양에서도 예술작품들에는 인물묘사와 인간의 몸동작과 행위를 보고서 묘사한 미술작품들이 꽤나 많이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서양의 그리스 시대의 화려한 누드 조각상들처럼 알몸 자체를 묘사해놓은 예술작품은 보지도 듣지도 못햇을 것이다. 설령 간혹 발견되어지는 완전 누드작품식의 동양예술품이 있더라도, 그것은 음서나 춘화 혹은 민화의 형태로 아주 음침한 예술로 인식되어지면서 숨겨져 있을 뿐, 서양의 예술작품들처럼 대중적으로 공개를 하면서까지 드러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 차이를 두고서 서양에서는 사물을 관찰할 때에, 개인을 중심으로 하고 미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성향이 강하므로, 인간의 육체 하나만을 예술적 작품의 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었겠지만, 동양에서는 전체 속에서의 조화를 위한 하나의 객관적 대상으로서 사물을 인식하기 때문에 자연속에 묻혀있는 조그만 한 사람의 모습 정도로만 묘사를 할 뿐이지, 서양처럼 그 대상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쪼개어서 보듯이 관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해명을 할 것이다. 몰론 이 설명도 일리는 있겠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의 누드예술장르에서는 동서양의 경계구분이 없을 정도로 모든 문화권마다 그 독창적인 알몸투성이의 예술작품들을 만들어서 쏟아내고 있으니, 이것을 예전처럼 동서양의 문화적 관습차이라고만 해명하기에도 이제는 한계가 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이제는 동서양의 문화관습차이를 극복할 정도로 지구촌의 인류의식 수준이 상승했다고 봐야 할 것인가. 어쩌면 이것이 가장 합당한 해답이 되지 않을까도 싶다.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의 발전과정은, 말 그대로 육체적 중심의 아름다움을 중요시하는 차원에서만 흘러왔었기 때문에, 그리고 개별적 주관적 관찰 성향이 강한 서양예술을 통하여 인간의 알몸이 예술적으로 표현되어져 나타났던 것이겠지만, 이제부터는 그 차원을 넘어서서 인류의 전반적인 의식수준이 진화를 해 온 결과 예술장르에서도 그 경계선이 허물어졌다고 봐야할 것 같다.
현재의 인류를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라고 호칭하지만, 이 단계가 더 진화되어서 호모 슈퍼 인텔리전트 사피엔스(Homo Super Intelligent Sapiens)로 진화를 하고 있는 상태라면, 초 지성적 능력을 더욱 더 동경하고 이 능력을 다욱 더 발달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인류문화는 변화 발전되어져 갈 것인데, 이 과정에서는 외적인 아름다움에서 예술미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것으로 예술미의 관점이 변화되어져 갈 것이다. 아마도 지금 시대에 예술장르의 동서양 경계구분이 허물어지는 것도 이러한 과정의 일련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예술의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대상이 인간의 육체를 포함한 눈에 보여지는 것들이었겠지만,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것 보다는 내면으로 느껴지는 것과 상상되어지는 것들 속에서 예술의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대상으로 옮겨가지 않을까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