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 70. 악(惡)의 등장과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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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문열의 단편 '사로잡힌 악령' 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힘이 없는 악은 의미가 없다. 악이 악(惡)다워 지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완숙한 악은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면 파괴되지도 절멸되지도 않는다”

이 구절의 의미는, 정말 강한 악은 외부에서의 힘에 의해서는 거의 절대적으로 무너지지 않는 난공불락의 존재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나니아 연대기'를 썼던 C.S 루이스는 " 악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마치 비웃음의 대상이 되거나 무시를 당하게 되면 순간 힘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이문열 작가의 글과 C.S 루이스의 글은 언뜻보면 전혀 다른 것 같아보인다.
그러나 두 작가의 차이점이 왜 그러한지를 더 깊게 파헤쳐들어가보면, 이 두작가의 주장에는 공통점이 드러나게 된다. 바로 악은 "오직 자기자신만을 열렬히 사랑하는 존재" 라는 것이다.

오직 자기자신만을 너무나 열렬히 사랑하기 때문에 타인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힘에 의해서만 몰락할 수 있는 것이고, 자신만을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조롱당하거나 무시당하는 것을 가장 괴로워하는 것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스토리를 인용하자면, 마귀가 예수를 유혹하기를 " 만일 나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것을 너에게 다 주리라" 하는 대목이 나온다. 예수가 죽은 후 2천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힘을 가진 자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경배를 하고 믿음을 가져주기를 원한다. 그 "힘을 가진자" 라는 것이 지금 시대에는, 성서속에서 악마가 말했던 천하만국과 영광일 것이며, 다르게는 ''돈'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다.

오늘날의 '돈'은 스스로 살아있는 거대한 생명체이자 의식체이다. 돈만 있으면 천하만국과 영광을 내 것으로 만들어서 손에 다 쥘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은, 마귀가 예수를 유혹해서 자신을 경배하고 따르라고 요구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는가?
어쩌면 오늘날에는 그 모습이 마치 재벌들에게 경배를 하면서 따르려는 지식인들과 권력자들의 모습과 비슷하기도 하다.

그래서 악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숭배, 경배, 믿음이다. 사이비 종교가 생겨나는 이유도 인간이 믿음이라는 자신의 의식의 틀 속에 스스로를 가둬버리기 때문에 존속할 수 있는 것이다. 돌덩이 하나를 앞에 두고서 매일 물을 떠 놓고 그 앞에서 기도를 하면, 그 돌덩이에도 귀신이 붙는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이다. 마치 현대인들이 돈을 쫓기 위해서 매일 생각의 힘을 돈에게 계속 실어주고 있듯이 말이다.

악은 결코 자기 자신을 해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믿음의 힘을 불러놓어서 그들 스스로를 피폐하게끔 만들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파괴와 몰락이 생기면 그 자체를 "악의 횡행" 이라고 판정을 하게끔 만든다. 실제로 악마는 그들의 믿음 속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진짜 악마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악마는 오로지 자신만을 열렬히 사랑할 뿐 외부세상과 다른 존재를 사랑하지 않는다.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 는, 정신치유분야에서 사용하는 자기사랑을 위한 말의 의미는 자신이 가장 소중한 것 만큼 타인도 그만큼 사랑하라는 외부지향적 목적을 염두에 둔 조언일 뿐이고, 내가 가장 소중한 만큼 타인도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라는 자기교훈적인 말 일뿐이지, 오로지 자기만을 열렬히 사랑하는 "나뿐(나 혼자뿐인)"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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