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면 사람의 마음이 착 가라앉고 차분해진다. 그래서 더욱 더 냉철한 자기반성과 내면으로의 자기관찰을 가능케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각 계절마다 비가 내리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감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봄에 내리는 비는 자라 오르는 새로운 희망에 대한 영양분을 공급해주면서 한 템포 박자가 늦추어지게끔 절제시켜 주는 힘이 있다.
겨울에 내리는 비는 차가운 한기에 더욱 더 차가움을 전해주면서 깊숙히 안으로만 찾아 들어가게끔 만들어버리는 힘이 있다고 한다면, 봄에 내리는 비는 이와는 다르게 새로운 미래에 대한 꿈을 서서히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하늘에서의 축복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가을비와 겨울비는 고독한 사색의 분위기에 더욱 더 힘을 보태어주는 힘이 있어서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여름비는 어린아이의 뛰쳐오르는 생동감에 시원한 물장난을 쳐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고 봄비는 농염한 육체의 성숙미가 발산됨이 매력적인 30대 여성의 매력과도 비슷하다.
마치 겨울동안 감춰져 있어서 아주 풍만해진 살점을 하얗고 보드랍게 가꾸어서 뽐내고 싶은 마음에, 촉촉함을 더해 주어서 더 농후하게 무르익은 아름다운 자태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 봄에 내리는 비라고 생각이 든다.
봄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 1악장의 음률이 연상된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은 그의 동생인 모데스트가 붙여준 제목인데, 제목에서도 그러하거니와 음악의 전반적인 느낌은 고통에 사무친듯한 암울함이 강하다. 실제로 차이코프스키는 '비창'을 작곡하고 그 해에 자살을 했다. 듣는이에 따라서는 '비창'을 미사곡 장송곡 등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그럴만도 한 것이 비창은 들을 때마다 아주 심오하고도 철학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음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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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은, 분명 비가 내리는 날에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는 실내에서 창밖으로 보여지는 희뿌연 먼 산과 우중충한 하늘의 먹구름을 바라보면서 들어야, 차이코프스키가 '비창' 을 작곡할 때에 어떠한 심정으로 이 곡을 완성하였는지가 제대로 전해져 온다.
하지만 나는 왜 봄비가 내리는 때에 비창을 즐겨들으면서도, 이 음악 속에서 암울함과 죽음을 앞둔 고독한 사색의 무거움이 아니라 희망적인 솟아오름을 느끼는 것일까? 그리고 그 희망적인 솟아오름을 느끼면서도 또한 30대의 풍만해진 여인의 야릇하고도 농후한 매력을 자꾸 되내이는 것일까?
어쩌면 봄비는 성숙해져버린 30대 여인의 고독한 우울함처럼, 가능성이 있는 미래와 가능성이 꺾여버린 과거의 경계선상에서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절묘한 어우러짐을 가진 것이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