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날로그 세대들은 장기 바둑 등을 기본적으로 거의 다 두어봤을 것이다. 지금의 디지털 세대들이야, 컴퓨터 게임문화가 더 발전되어져 있으니 디지털 세대들 중에서 장기와 바둑을 두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수가 과거의 아날로그 세대들 만큼이나 아주 대중적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내 어릴적에 바둑과 장기를 접하게 되면서 체험했었던 것들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기억을 꼽으라고 한다면, 경로당에서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께서 장기를 두신는데, 그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감내놔라 배내놔라"하는 식으로 훈수를 두고 있는 여러명의 다른 어르신들의 행동거지를 구경하고 있으면 그 자체가 너무도 재미있는 코믹장르의 한 장면이었으니, 그 광경을 구경하면서 배꼽을 잡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한 순간순간마다의 기가 막힌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감히 상상해보지도 못할 것이다.
하여튼 그 당시의 한국에서 바둑과 장기를 두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상적 오락문화였고 또한 그 옆에서 훈수를 두는 것 또한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관습이었다. 한마디로 장기와 바둑판에 훈수꾼이 없으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훈수를 어떻게 잘 두느냐에 의해서도 한 번의 실력 결판이 나기도 하는 정겨움과 친밀감과 멱살잡이 혹은 주먹싸움으로까지 번질수 있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칼날 위를 걸아가는 듯한 긴장의 연속을 체험할 수 있는, 코미디 장르의 축소판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서양에도 그들의 장기인 체스판이 벌어지면, 그들 역시 훈수를 두면서 이러쿵 저러쿵 간섭하는 것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장기바둑판에서의 훈수문화는 유별나게도 일상생활속의 훈수문화로까지 발전되어져 있으니, 그 유별스러움이 가히 전세계적으로 어디에도 뒤처지지 않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나 남의 가정사나 개인사까지도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기 좋아하면서, 이것을 하나의 가족주의적인 친밀감 문화로까지 여기고 있는 그 특이함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까지 해야 할것이다. 그러나 남의 일에 간섭하기 좋아하면서도, 남이 자신의 일에 대해서 간섭을 해오면 그것에 대해서는 아주 못마땅해하는 아주 괴팍하고도 모순적인 심성이 유달리 심한 것 또한 한국인의 특성이기도 하다.
바둑계에서 통용되는 속담 중에서, 관전팔수(觀戰八手), 반외팔목(盤外八目)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훈수꾼이 여덟수를 더 본다" 는 뜻이다. 왜 그럴까? 당장 바둑을 두느라고 상대방의 수를 읽기에 온 정신이 다 팔려 있는 사람에게는 멀리서 객관적으로 판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둔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냥 옆에서 구경하면서 훈수를 두는 사람은 아주 차분하게 객관적인 시각에서 판 전체를 볼 수 있다 보니, 선수 두 명이 수를 계산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멀리까지 수를 읽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판 안에 갇혀 있어버리면 판 안에서의 시각으로만 판단을 하기 때문에 현재 자신이 무엇을 잘못 하고 있는지, 어떻게 큰 맥을 놓치고 있는지를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자신만의 고집불통적인 틀 안에 갇혀있으면서도 자신이 무엇이 잘못되어져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빗대어서, "남이 못하는 것을 그렇게도 잘 찾아내면서 자기가 잘못 하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한다" 는 뜻의 고사성어인 목불견첩[目不見睫]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목불견첩은 《한비자(韓非子)》 의 <유로(喻老)>편에 나오는 말인데, 원 뜻은 "눈은 눈썹을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장기바둑판의 훈수두기를 너무 너무 잘하는 한국인들의 그 비상한 두뇌능력을, 이제부터는 남을 향한 훈수두기에서 자신을 향한 훈수두기로 바꿔나가면서 그 좋은 머리들을 활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제는 대화로 갈등과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하는시대이자, 합리적 지성적 능력을 발휘하면서 사회적 기여를 해야만 삶의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대로 변화되고 있다. 과거처럼 힘과 무대포 정신으로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삶의 질이 더 나아진다고 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그러한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서 한국인들이 좀 더 수준높은 문화인으로서, 좀 더 사려깊은 지성인으로서 새롭게 성장해가기 위해서는, 그 유별난 훈수 두기 좋아하는 문화를 남을 향해서 하는 훈수실력이 아니라, 자신을 향하여 훈수 두기를 잘 할 수 있는 훈수실력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