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귀한 것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어떠한 곳에 가야만 볼 수 있거나 아니면 축하할 일이 있을 때에 선물을 해줄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미모로 칭송을 받는 여인에 비유함이거나 혹은 고결하고 숭고한 가치를 가진 그 무엇에 비유하여 꽃으로 상징화하기도 한다.
꽃은 바라보는 것도 즐겁지만 받는 사람도 즐겁고 주는 사람도 즐겁다. 그래서 꽃은 즐거움의 힘이 함께 스며들어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꽃이 그냥 길가에서 흔하게 피거나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꽃이라면 그렇게 귀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꽃에도 희소성의 가치라는 것이 있어서 흔하게 볼 수 없고 자라는 과정이 까다롭고 구해오기도 어려운 것이라면, 그 가치는 아주 진귀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매우 비싼 몸값을 자랑하게 되고 그 값어치에 걸 맞게끔 받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높은 수준을 인정받는다는 자랑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꽃도 꽃 나름이라, 어디에서 어떻게 피느냐에 따라서 그 대접이 달라지게 된다.
개나리는 우리 주변에서 봄이 되면 너무나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개나리는 한국땅의 자생식물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특성을 대변해주는 꽃이라고도 하지만, 진귀한 꽃으로 대접을 받기는 커녕 길가에 울타리용으로 심거나 화분으로 옮겨 심어지지도 않는다.
봄이 되어서 따뜻한 날씨가 찾아오면 산에서나 들에서나 길가에서나 너무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기 때문에 아주 평범한 꽃으로만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개나리는 양가집 어여쁜 아낙네의 꽃이 아니라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민초를 닮은 꽃이다.
개나리의 이름자체도 그러하다. 개나리는 "개+나리" 이다. 여기서 '개'는 접두사이고, '나리'는 백합과 식물에 붙이는 꽃이름이다. 혹은 백합을 뜻하는 순우리말인 '나리' 에 백합보다는 아름답지도 않고 흔하게 볼 수 있는 너무 평범한 꽃이라 하여, 하찮은 것을 빗대어서 표현하는 '개' 라는 접두사를 붙여서 수준을 낮추어서 부르는 듯한 이름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자생인 개나리는 색깔도 아주 밝은 노란빛이다. 그래서 눈에 금방 잘 띄기도 하고 너무 흔하게 보여지기 때문에 아주 민중적이고 대중적이고 더 나아가서는 가장 빈천하게 살아가는 천민과도 같은 꽃이다.
자그마한 몸집의 노란색 병아리들이 돌아다니는 듯한 색깔이요, 어린아이들의 노란색 체육복과 같은 밝은 색으로 어디서나 어른들의 보호를 받아야 할 정도로 가녀리고 연약한 그래서 별 다르게 위압감을 주지도 못하는 멍청스럽고 바보스러운듯한 색깔이기도 하다.
봄이되면 사람들이 개나리꽃의 노오랑을 바라보면서 노랗게 웃음을 짓는다. 그 웃음은 부자스럽고 귀티나는 웃음이 아니라 조금은 모자라는 바보들의 웃음처럼 노랗게 짓는 웃음이다. 전혀 귀하지도 않고 그냥 흔하디 흔한 개나리이기 때문에, 마치 노랑병아리를 손으로 만지면서 느껴지는 그 부드러움이 좋아서 웃음 짓듯이 그리고 노랑색 운동복을 걸쳐입은 순진하고 말 잘듣는 어린아이와 함께 놀아주면서 웃음을 짓는 것처럼, 개나리를 보고서 짓는 웃음은 바보스러운 노오람이다.
그래서 개나리는 가난한 노동자의 삶을 살다가신 아버지를 닮은 꽃이다. 당신의 삶은 비록 가난하고 남루하고 빈천하였지만, 자식을 바라보는 웃음만은 항상 개나리처럼 노오란 색깔을 닮아있었다.
노란색 개나리의 꽃말은 희망, 기대, 깊은 정이다. 개나리의 꽃말이 그러한 것은, 천대받는 가난한 노동자의 삶을 살면서도 자식들 앞에서만은 항상 노오란 웃음을 지어보이시던 아버지의 바보스러움 뒤에 숨어있어서, 어릴 때에는 결코 헤아릴 수 없었던 그윽함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