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관계인든 무슨 이유에서이든, 사람들이 키스를 한다는 것은 사랑의 감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간의 표현이다.
연인의 탄생을 알리는 첫 키스이든, 작별의 마지막 헤어짐을 위한 키스이든, 어린 딸과 아빠의 키스이든, 엄마와 아들의 키스이든, 아니면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이루어지는 애절한 키스이든지, 달리 수식어로서 표현을 해낼 수 없는 가슴의 '뭉글함'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것이 '키스' 이다.
키스를 하는 행위에 대해서 그리고 가슴으로의 '뭉글함'에 대해서, 그 이유를 학술적인 측면의 설명과 생리학적인 측면의 욕구론적 이론으로 해명을 하지는 않겠다. 다만 문학적인 표현으로서 키스를 하는 것에 대한 미시어구를 제쳐두고라도, 키스를 하는 순간에 혹은 키스를 하는 순간을 바라보는 순간에 마음으로 느껴지는 '뭉글함'의 기분과 그 느낌을 예술적으로 표현해내려는 것은 모든 예술가들의 공통된 도전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런데 왜 예술가들은 좀 더 선명하게 좀 더 확실하게 좀 더 또렷하게 예술의 표현 도구로서 키스를 드러내보고 싶어했었고, 키스를 해명해보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구스타프 클림트의 <연인(키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키스>
에드바로 몽크의 <키스>
장 오노레의 <키스>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키스>
오귀스트 로댕의 <키스>
오노래 도미에의 <키스>
그림으로서 조각으로서 키스의 그 순간에 가슴으로 느껴지는 '뭉글함'을 표현해 보고자 했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들 역시도 그러하다. 그 작품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가슴에서부터 '뭉글한' 기분을 느끼면서, 그 순간에 찰나로 세상이 멈춰버림을 느끼게 된다.
왜 이렇게도 많은 예술가들이 키스를 드러내고자 했던 것일까?
그냥 성스러운 행위라서, 가장 아름다운 행위라서, 아니면 가장 거룩한 모습이라서???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예술가들 역시도 키스의 그 순간을 바라보면서 혹은 자신이 키스를 하면서 그 순간에 세상이 정지해버리는 어마어마한 가슴 '뭉글함'의 이상한 것을 느꼈을 것이고 그것을 예술적 표현의 테마로 삼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키스의 순간에 세상을 멈춰버리는, 마치 천지창조의 순간에 번뜩였을 것 같은 위대한 파워가 나타나면서 세상을 정지시켜버리는,,, 전쟁의 폐허와 혹은 폭동의 현장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도 않은 가장 거룩하고 가장 성스럽고 가장 아름다운 인간 몸짓의 표현이 모든 것을 다시 리셋(reset) 시켜버리는 것과 같은 그러한 신비로운 힘이 있음을 체험하는 것은 위대한 창조주의 어떠한 힘이 인간에게 실려있기 때문일까?
그 힘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 왜 인간에게는 그러한 힘이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그것이 존재하고 있음을,,, 뜨거운 키스의 그 순간에 가슴으로 올라오는 "뭉글함"을 통해서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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