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서 들을 수 있는 욕들 중에서 " 야~ 이 양반아" 라는 식의 욕은 약간 존대스러운 욕이다. 상대를 나무라거나 지적하려는 욕 한마디 이기는 하지만, 왠지 심하게 쌍스럽게는 들리지 않는 묘한 기분이 느껴지는 욕이다.
" 야! 이 양반아" 라는 욕은 어떻게 해서 한국인들의 욕 문화에서 등장하게 되었을까? "야! XX 같은 놈아!" , "야! 이 XX 야 " 와 같은 천박한 욕들과는 다르게, 한국역사의 신분계급 차이로 분류되는 '양반'칭호를 집어넣어서 욕을 하게 되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 였는지를, '양반' 칭호가 등장하게 된 역사적 유래에서 알아 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양반계급과 그와 반대되는 상놈계급의 역사적인 유래를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한국의 역사에서 신분제도가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조선시대부터이다. 그 이전 고려시대 까지만 해도 '양반' 이라는 명칭은 관직을 가리키는 것일 뿐, 그 자체가 신분적 차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에서는 관직에 진출하지 못하면 양인으로 분류하게 되는데, 이 양인들에게는 군역의 의무가 주어졌다. 자식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짊어지게 하기 싫었던 특권층들은, 군역의 의무를 가지더라도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고 군역에서의 하급관직 제도를 만들어내었고, 그들의 자제들이 간단한 시험을 쳐서 특수병과에 해당하는 하급관직에 배치되도록 하였던 것이다.
15세기말에 이르러서는 관직이 없어도 관품만 있으면 군역이 면해지게 되었는데, 이러한 관품을 매개로 국가에 대한 병역의 의무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 대한 의무에서 면제 혜택을 누리는 계층이 생겨났으니, 이들이 지금의 우리가 일컫는 '양반' 이라는 계층이라고 한다.
그 당시의 신분서열은 양반이 상위층이고, 그 밑으로 중인이 있었으며, 그 중인은 향리와 서얼, 기술직 잡인 등이 포함되며, 일반적으로 이들은 평민이라고 불리웠다. 그 밑으로는 노비 계층이 있었다.
이 노비계층은 다시 공노비와 사노비로 나뉘어지며, 사노비 중에서 솔거노비라고 하는 계층이 가장 하층민으로서 주인집에 속박되어서 살면서 평생 노역을 하는 신분이었다.
양반제도가 생겨난 조선초기와 이 관례가 어느정도 유지되어져 왔던 조선 중기까지, 전체 인구중에서 양반의 수는 약 5% 정도였다고 한다. 이들이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말하는 일명 금수저라고 하는 계층이 되는 것이다.
이러던 양반의 수가 조선후기에 이르면서 전체 인구의 약 60~70% 정도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노비수는 전체인구의 약 10% 정도로 상당히 줄어들게 된다. 그 이유인즉슨, 18~19세기 경에 경제력이 탄탄한 중인( 즉, 평민)들이 가난한 경제력을 가진 양반들과 혼인을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양반은 경제력을 갖춘 중인의 덕택으로 재산이 넉넉해지고 중인은 양반으로서의 신분상승을 꽤 할 수 있었으니, 비록 자기대에는 양반 신분이 아니더라도 자식대에는 양반신분을 얻어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러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생겨난 돈을 받고서 노비신분을 면해주는 제도가 있었으며, 중인이 된 노비들이 나중에는 양반의 위치까지도 올리가는 일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횡행했던 것이 바로, 족보 위조나 족보를 사고팔면서 출신을 아예 숨기거나 바꿔치기하는 일이 빈번했던 것이다.
그러니 조선후기의 사람들은 양반 아니면 노비였다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양반이 60% 이상으로 절대 수가 많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속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양반의 신분을 얻고 싶어했는지 그 갈망이 묻어있다고 하겠다.
" 이 양반 보게 " , " 아니 저 양반이 왜 저러나? " , " 이 양반이 지금 어때 데고 반말이야? " 등등의 '양반'을 집어놓은 욕 짓거리는, 아마도 조선후기의 수 없이 많은 양반들 틈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양반이라고 치켜세워주고 또한 그렇게 부름을 받고 싶어했던 신분상승의 욕심에서 유래되었던 욕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 이 양반아 정신차려 " 라는 한국식 특유의 욕은 다른 욕들보다는 상당히 점잖고 격식갖춘 욕처럼 들리는 것이, 조선후기시대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너도 나도 양반소리를 듣고 싶어하던 심리" 에서 비롯된 역사적 상징의 욕문화라고 해석을 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