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트인은 로마시대에 갈리아인이라고 불렸던 부족으로 고대에 독일지역에서 이주한 민족이다. 기원전 4세기 무렵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지역에 진출하였으며, 지금의 아일랜드, 웨일스, 브리타뉴 지방에서 거주했던 풍습과 언어가 발견되고 있다. 175년경 영국에 기독교가 상륙하면서 형성된 아일랜드와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켈트 기독교 또는 켈틱 교회의 발전은 자연과 일상생활에서 하느님을 경험하는 켈틱 영성이라는 기독교 전통을 만들어내었다.
어린시절에 영국의 전설적인 왕이라고 하면서 위인전과 영화로도 많이 접했을, '아더왕' 도 켈트족출신이다. 켈트족의 영성문화는 그 독특함이 마치 샤머니즘적이거나 토테미즘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져 있으며, 마술이나 주술 등의 신비로운 고대신비주의 학문들에도 많은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더구나 아일랜드 지역의 매력적이고도 예술적 감성을 자극하는 심오한 자연의 분위기는, 켈트족의 영성문화가 더욱 더 신비롭게 고차원적인 영성적 깊이를 가질 수 있도록 자극을 해왔던 같다.
그런데 이렇듯 독특한 신비주의적 영성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켈트족에게는, 그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는 "켈트족의 기도문"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그들의 고차원적이고 초자연적인 영성적 깊이를 더욱 잘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당신의 손에 언제나 할 일이 있기를
당신의 지갑에 언제나 한, 두개의 동전이 남아 있기를
당신 발 앞에 언제나 길이 나타나기를
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등 뒤에서 불고 당신의 얼굴에는 해가 비치기를
이따금 당신의 길에 비가 내리더라도 곧 무지개가 뜨기를
불행에서는 가난하고 축복에서는 부자가 되기를
적을 만드는 데는 느리고 친구를 만드는 데는 빠르기를
이웃은 당신을 존중하고 불행은 당신을 아는체도 하지 않기를
당신이 죽은 것을 악마가 알기 30분 전에 이미 당신이 천국에 가 있기를
앞으로 겪을 가장 슬픈 날이 지금까지 겪은 가장 행복한 날보다
더 나은 날이기를, 그리고 신이 늘 당신곁에 있기를
켈트족의 기도문은, 전 세계인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고 행하고 있는 기도문의 형식이나, 기도의 관점과 기도의 대상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기도를 한다는 것이, 하느님이나 예수님을 찾거나 혹은 부처님을 찾으면서 원하는 것을 이룩할 수 있게끔 해달라는 자기중심의 기도인다. 아니면 타인을 위한 객관적 차원의 기도를 하기는 해도, 그것 역시 그 타인이 특정목적의 현실적 달성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원하는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의 기도이다.
그러나 켈트족의 기도문은, 기도의 대상과 관점이 자기중심성을 벗어난 완전 이타적인 관점에서의 축원 축복을 주기 위한 기도이다. 왜 켈트족에게는 이 독특한 형태의 기도문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일까?
켈트족의 문학과 역사를 연구해보면, 그들의 문화 속에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섬세한 묘사가 뛰어나며, 다소 비합리적이지만 초자연적인 것을 좋아하고, 몽환성(夢幻性)이 강한 특성들이 있다. 그래서 다르게는 켈트족이 죽음과 관련된 다른 차원계와의 교류 소통을 중요시하는 영성적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지구차원계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아주 고차원적인 다른 세계의 법칙과 원리를 아주 많이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라는 해석을 하는 분석가들도 있다. 그러니 지구차원계에서의 수준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적차원의 원리를 알고 있다보니, 그들의 영성종교에서도 어떠한 방식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며 효험이 강한 것인지를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것이다.
즉 나를 중심으로 하는 소원성취를 바라는 기도가 아니라, 남을 위하는 타인을 위해주는 기도의 갈망이, 결국은 자신의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힘이라는 것을 켈트족은 그들의 영성문화와 영성종교속에서 이미 깨닫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보자, 종교인이든 수련인이든 모두가 자기의 발전을 위한 목적으로 정신수양과 기도생활을 열심히들 하고 있다. 간혹 국운상승과 재난의 극복을 위한 중보기도, 혹은 타인의 행복을 빌어주는 이타적인 기도를 한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자기중심적인 기도의 소원에서 크게 벗어나지를 못한다. 그러나 켈트족의 기도문은 오로지 남을 위한 기도만을 할 뿐이다. 오로지 남을 위해서 축복을 주고 축원을 해주는 기도만을 할 뿐이다. 이제는 한국사회에서도 모든 분야가, 켈트족의 기도문처럼 널리 남을 위하고 널리 남을 이롭게 하는 기도의 힘이 어떻게 나에게 돌아오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겉으로는 사회를 위하고 나라전체를 위한다고는 하지만, 막상은 말과 행동이 다르고 그 결과에 있어서는 자신의 안위를 먼저 위하게 되는 현 한국의 지식인들과 공직자들의 실태를 보면서, 켈트족의 기도문은 우리에게 아주 깊은 감명을 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