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 35. 음식은 사회적 관계의 도구이다.

yangmok70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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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프랑스의 인류학자였던 피에르 부르디외의 작 '구별짓기(La Distinction)'라는 책에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사람들의 취향을 조사해놓은 내용들이 나온다.  이 책에서 결론으로 나오는 것은, 취향(taste)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집단의 차이, 즉 사회경제적인 계급의 차이를 구별하는 방식으로 발달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가지 사회경제적인 차이를 구별하는 사례들 중에서 음식에 관련된 것도 있다. 

소득과 사회적 지위가 높은 상류층은 량이 많고 배부른 것 보다는, 분위기 좋고 우아하고 깔끔한 분위기의 음식을 선호하며, 교육이나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적은 돈으로도 많이 먹을 수 있는 량적인 측면으로 음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음식을 통한 집단간의 구별짓기는 여러가지 상황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 사대부 집안에서 설 음식으로 떡국을 장만할 때에,  요즘 우리가 흔히 보는 비스듬한 타원형이 아니라, 동전처럼 동그란 모양으로 썰었다고 한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음식이 늘 부족할 수밖에 없던 상민들은 같은 양이라도 푸짐하게 보이려고 길쭉하게 비스듬히 썰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계층간 음식문화의 차이가 지금도 다를 바가 없다.  TV 속 드라마를 보면, 잘 생기고 배운 것 많고 사회적으로도 잘 나가는 주인공들은 고급레스토랑에서 근사한 한끼의 식사를 앞에 두고 와인을 주문하는데, 그렇게도 긴 와인의 이름을 아주 자연스럽게 발음을 하면서 주문을 한다. 아마도 이러한 실제 상황속에서 서민층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주문을 하라고 하면 주눅이 들어서 하지도 못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음식문화로 인한 계층간 구별짓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1938년 여성소설가 백신애의 단편소설 '일여인' 에 등장하는 한 대목을 소개한다.   

마님은 도련님에게 열심으로 푸념을 하고 있으나, 

도련님은 비싼 박래품 오트밀이 먹기 싫고 바나나 먹기에 바빠 

마님의 말은 귀 너머로 듣는 모양이었다. 

“너 학교 가면 선생님한테 아침에는 밥 먹지 않고 

오트밀을 먹는다고 해야 된다. 알았니?”

“응. 보리죽 먹는다고 그랬어.” 

“이 자식, 보리죽이라면 그까짓 선생이 오트밀인 줄 아니? 

이제부터는 꼭 오트밀을 먹는다고 해야 돼. 알겠니?” 

“알았어. 바나나하고 커피차하고.” 

“그래, ‘오트밀 한 그릇, 바나나 두 개, 커피 한 잔을 먹습니다’ 라고 해.” 

도련님이 학교 간 후 이 젊은 마님의 아침 식사가 시작된다. 

보리쌀 섞은 밥과 장찌개와 간청어 꽁지뿐이다. 

한 통에 육십 전 하는 오트밀을 먹는 아들의 식사와는

 영 뚝 떨어진 밥상이다. 

1930년대에 60전이라고 하면, 지금의 돈으로는 약 300만원이다. 이 엄청난 가격에 해당하는 음식을 아들에게 억지로 먹이고는, 그걸 꼭 학교에 가서 선생님에게 알리라고 압박을 하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져있는 대목이다.  이 대목이 억지적인 것 같지만, 인간의 구별짓기 심리를 이해하고 나면 이 소설속의 상황도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소설 속의 아이가 엄마의 말대로 학교에 가서 그 사실을 그대로 선생님에게 전했다면, 선생님은 그 아이가 엄청난 경제력으로 뒷받침 되고 있는 아주 높은 집안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그 때부터는 그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조심스러워질 것이고 그 아이는 이후에 학교에서의 생활이 대단히 편하게 될 것이다. 

음식의 수준으로 사람을 구별짓고,  또 그렇게 구별을 지어서 상대방을 특별하게 생각해 준다는 마음을 표현해왔었던 한국인들의 오랜 습성을, '김영란법'이라는 강제적인 법제도로서 억제를 해버린다면 한국인들의 구별짓기 문화는 음식이 아니라, 이제는 또 다른 구별짓기의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어야 할 것인데,  앞으로 그것이 무엇이 되어질 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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