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을 총칭하여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애완' 이라는 용어속에 들어있는, 도구적 관점에서의 의미에서 탈피하여 동물 역시도 인간처럼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로서 인식하기 때문에, '반려' 라는 단어로 대체된 것이라고 한다.
이 반려동물들을 왜 사람이 가까이 하려고 하느냐 물으면,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혹은 사람들이 반려동물에 애정을 쏟는 가장 큰 이유는 정서함양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시대는 이처럼 인간의 정서적인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해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정이 1인, 2인 가구의 증가세와 더불어서 날로 급증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1천만 반려동물이 가정에서 사람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하니, 최소 5집 중에서 1집 이상은 반려동물을 한 가족처럼 여기면서 살고 있을 듯 하다. 앞으로는 고령화와 미혼인구의 증가로 인하여 이러한 반려인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도 한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유를 반려인들에게 물어보면, 공통적으로 비슷한 답변들을 내놓게 된다. "외로우니까, 정서적으로 서로 의지할 수 있어서", "한 가족처럼 지내면서 정을 나눌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니까" 등등 거의 비슷하게 정서적인 측면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특히 어린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동물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아이들이 사랑을 배워나갈 수 있어서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또한 극단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들한테 워낙 상처받은 것이 많아서, 차라리 동물들하고 지내면 덜 피곤하고 외롭지도 않고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도 있어서 더 좋아요" 라고 해명을 하기도 한다.
하기야, 지금의 세상이 워낙 합리적인 개인주의화로 치닫고 있는 세상이다보니,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것이 인간대 인간의 관계로서 시작이 되고 또한 인간대 인간의 관계로서 끝나는 것이니, 모든 좋은 것과 나쁜 것도 인간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인간관계 속에서의 피로도가 가장 큰 것이기도 하겠다. 그러니 그 빈틈을 메꿔주면서 가장 편안하게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고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면 차라리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는 것이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측면의 문제를 역설적으로 관찰해보면, 지금시대의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정서적 안정감을 누릴 수 있는 환경과 그 대상이 같은 인간을 통해서는 더 이상 얻지를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일명 지금의 시대를 인간관계의 피로사회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과거의 시대는 인간중심의 행복한 시대였었고, 그 이전의 오랜 역사시대는 언제나 인류가 한가족 처럼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누릴 수 있는 시대였냐면, 그것 역시도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사회는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인간관계의 피로도가 현저하게 낮아서 반려동물을 한 집안의 가족처럼 받아들이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시대는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가 유달리 반려동물 문화가 확산되어지는것 처럼 보여지는 것은, 반려동물을 한 집안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는 인간적인 가족처럼 상대를 하는 것이 특이한 점이기도 하며, 인간을 보좌하는 하급의 동물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인간과 동급의 가치를 가지는 시대가 되어졌기 때문에 특이하다고 할 것이다.
과거의 시대에는 지식인이 소수였고, 그 지식인을 중심으로 해서 지식을 갖추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삶을 주도해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지식인이 시키는 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주 정상적이고 당연한 것처럼 가치관이 받아들여지던 시대였다. 그래서 그 시대에는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인간관계의 피로도가 덜 하던 시대였다고 할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의 문화적 가치관이, 가부장제 권위주의 혹은 남성우월주의적 문화 혹은 종교적인 신성우월적인 가치관 등이 수직적 상하구분의 질서체계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어서, 삶의 방식 역시도 이러한 관습에 잘 적응하기만 하면 인간관계의 피로가 발생하지도 않고 그냥 그럭저럭 살아갈 수가 있었다.
그래서 과거 시대에는 권력을 가지고 힘이 있고 지식을 가진 자들이 대다수의 무식하고 글도 모르고 생각도 부족한 백성들을 지배하기가 쉬웠고, 이끌어나기가 쉬웠다. 반대로 무식하고 생각이 짧은 백성들은 그들의 주인되는 자들이 부려먹는 대로 아무 생각없이 순종하면서 말만 잘들으면 엄청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살 수 있는 시대였었다. 그래서 오히려 이러한 시대에는 인간관계의 피로도가 덜하게끔 되어져 있었다. 심지어는 인간관계의 피로함이 무엇인지조차도 인식을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과거의 시대와는 다르게 모두가 지식인들이고 박식하고 아는 것이 풍부하고, 나날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터득하면서 사고능력의 수준이 급속하게 진화발전해 가고 있는 시대이다. 이러한 지식인들만의 시대에는 모두가 각자의 주관과 생각과 판단력이 있기 때문에, 결코 다른이의 주관과 생각에 쉽게 동조하지도 않고 쉽게 끌려가지도 않는다. 오늘날 시대에 전통적인 가부장제가 무너지고 있고 여성권익을 존중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개념의 가정해체와 1인 독신가구의 급증등이 바로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겠다.
이러한 새로운 지식인들 중심의 사회에서는, 당연히 모두가 각자의 생각과 판단과 주관을 인정받고 살려고 하기 때문에 인간관계의 피로도는 급속하게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어느 누구도 쉽게 나의 말을 들어먹지도 않을 뿐더러, 어느 누구도 쉽게 다른이의 말을 들어먹으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똑똑하고 모두가 아는 것 많고 모두가 잘난체 하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가족이 아니라 그냥 남남일 뿐이고 서로 피곤하기 때문에 가급적 거리를 두고 살아야만 덜 피곤해지는 것이겠다.
만약 지금의 시대에도, 과거시대의 기준잣대로 가족주의적 친화주의적 인정주의적 방식을 고수하면서 인간관계를 맺어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언제나 속고 당하고 빼앗기고만 살게 되는 바보멍청이가 되어질 뿐이다.
그러니 사람이 같은 사람과 잘 어울리면서 정서적 행복감과 평안함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말도 못하고 순종적이기만 하고 마음대로 잘 다스릴 수 있는 동물을 자기 가족처럼 동급의 위치로 올려놓고서 상대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듣기 거북할 수도 있는 솔직한 말로 표현을 하자면, 지식인 중심 사회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인간관계 속에서 올바르게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내면의 깊이와 질량들이 아주 빈약하고 허약하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어줍잖은 현상일 뿐인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미숙해서 사람들과 말을 잘 못하고 자기표현력이 약하고 인간관계의 방법론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래도 정서적 유대감을 누리고 싶다는 본능은 있어서, 결국에는 인형과 장남감을 가지고 놀면서 혼자서만 웅얼웅얼 거리는 말을 하려고 하듯이 말이다.
사람이 정서적 안정과 유대감을 누리는 것은 당연히 같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이것이 동물들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것은 지극히 모순적인 말이다. 그래서 반려견 1천만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사람이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올바른 관계를 맺고 올바르게 말을 하고 정서적인 안정감을 누릴 수 있는 올바른 방법에 대한 지식인들 중심 인간사회의 문화적 가치관이 올바르게 정립이 되어지지도 이것을 깨우치지도 못했다는 설명이 되어지는 것이다.
최근 6.13 지방선거를 앞 두고서, 전국의 1천만 반려동물인들의 표심을 노리고서 반려동물 테마파크나 놀이터 조성에서부터 반려견 문화·복지센터 건립, 지역경제를 위한 반려동물 관련 기업 유치 등 다양한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는 소식이 있다.
과거시대 같았으면 정치선거판에서 감히 내세우지도 못 할만한 코미디 같은 선거공약 같지만, 오늘날에는 시대의 흐름이 그러한 만큼 반려인들이 전국민의 1/5 수준에 육박하는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여 반려인들로부터 표를 얻어보려는 선거전략이 등장한다는 것을 결코 코미디라고만 하지도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정말로 우스꽝스러운 것은, 사람대 사람의 관계속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누려야 하는 인간이 동물들과 가족관계를 맺으면서 그 속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찾으려는 기이한 현상도 아주 이상한 것이지만, 오히려 사람대 사람사이에서 정서적 유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를 변화시켜나가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그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오히려 동물과의 가족관계를 더 부추기면서 사람대 사람사이의 정서적 공감대 형성의 문화를 더 퇴보시키려고 한다는 것이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것은 모두가 지식인들이고 고학력자들이 되어버린 현대사회에서, 정말 똑똑하고 머리 좋은 사람들이라면 사람대 사람사이의 피로도가 오히려 줄어들어야지, 그 피로도가 더 증가하고 있는 진짜 이유를 모르고 있고 그 해결책을 찾아내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더 코미디 같고 우스꽝스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