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경험했던 것들 중에서 유별나게 기억에 남는 것들 중의 하나가, 학교에서 학기마다 가정형편조사지를 작성해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내용안에는 가정집에 TV 전화기 냉장고 자동차 피아노 등의 고가품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묻는 것이 있었다.
지금시대에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것을 작성해오라고 조사질문지를 나눠주는 것 자체가 정말 어이없는 것이라고 손가락질 당하기 좋은 것이지만, 그 시대에는 그러한 가정생활조사가 아주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었고, 이 내용은 학생의 가정생활수준을 파악하여 어느정도의 여유있는 환경에서 성장을 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 조사 과정에서 가난하고 없는 집안의 아이들은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마음에 상처를 받는 일도 많았으니, 결코 이 가정조사 내용이 그다지 환영받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 시절의 가정형편조사를 되돌아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교육학적 정책에서는 그 학생의 가정생활정도에 따라서 향후미래 발전가능성이 예측되어지기도 하고, 앞으로 어떠한 재능을 발휘해서 뛰어난 학업과정을 이어갈 수 있느냐를 예측할 만한 객관적인 지표로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는 설명이 된다. 학생들 앞에서는 가정환경과는 상관없이 자기 스스로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출세성공할 수 있다는 객관적인 자신감을 강조하지만, 막상 뒤에서는 부모의 능력과 가정수준에 따라서 그 학생의 행실이나 학업성적등이 결정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음을 알수 있는 것이다.
지금이야 이것이 아주 객관적이고 명확한 원리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시대이지만, 과거시대에는 가정형편 따지지말고 부모님의 능력은 원망하지도 말고 스스로 노력해서 성공하라는 식으로만 학생들을 몰고 갔으니,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 시절은 자식들 낳아서 마음 편하게 키우기에 훨씬 더 좋은 시절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어쨋든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떠한 환경속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그 아이의 가능성과 재능이 발휘되기도 하고 묻혀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사회공동적으로 신경을 쓰게 되는 복지정책의 하나가 아동들에게 무상으로 공평하고 질적인 수준이 높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주자는 것이다.
특히 어린 유아동들에게 어떻한 질좋은 놀이문화의 기회를 제공해주느냐는 길게 보았을 때에 어떠한 사회성을 길러서 장차 사회전체적으로 유익한 구성원으로서 성장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느냐의 문제가 되는 백년대계적인 노력이기도 하다.
< 한 달에 성인 한 명당 34달러로 생활하는 가정의 장난감 >
사진작가 안나 로슬링은 전 세계 50개국에서 264개가 넘는 주택을 촬영하고 그 속에서 아동들이 가지고 노는 장남감의 수준을 가지고서 빈부격차를 설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고 한다.
한 달에 1인당 20달러로 살아가는 가정의 아이들부터 1인당 7000달러를 넘게쓰는 가정까지 빈부격차에 따라서 아이들의 장난감이 다양하게 나타나면서 빈부격차를 생생하게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 한 달에 성인 한 명당 39달러로 생활하는 가정의 장난감 >
단순히 이것이 어린아이들 장난감 가지고 생활수준이 결정되어진다는 것도 아니고, 그 아이가 어린 시절에 가난한 집에서 싸구려 장난감 가지고 논다고 해서 나중에 제대로 사회생활을 못하는 어른이 된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린시절의 빈부격차에 따른 장난감 문화가 다르고 놀이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얻어진 마음의 상처와 소외감은 성장한 후에도 그에 따른 사고방식이 평생을 갈 수밖에 없고, 좀 더 좋은 교육과 배움의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해주어서 사회전반적으로 더 유리한 성장의 기회를 얻도록 해주는 것이 분명 장기적으로는 사회전체의 이득이 되는 효과가 더 많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회를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사회전체적으로도 안타까운 사실임은 분명하다.
< 한 달에 성인 한 명당 102달러로 생활하는 가정의 장난감 >
다르게 보면, 지금 시대의 사회적 갈등의 원인은 모든 조건이 결국은 빈부격차와 그에 따른 계층간의 불신에 의해서 차별적인 대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다툼과 분쟁이 사회악의 원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린시절부터 공평하게 질좋은 놀이문화의 기회를 제공해주어서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가정형편의 격차에 따른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사회공동체적인 관점에서도 사회적 비용의 부담을 감소시키는 선순환적인 힘이 있음이 분명하다.
< 한 달에 성인 한 명당 369달러로 생활하는 가정의 장난감 >
한국 속담중에, "용은 여의주가 귀하고 쇠똥구리는 쇠똥이 귀하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타고난 대로 그에 걸맞는 놀이문화가 다르고 가지고 노는 것도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잣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릴 적에 가지고 노는 장남감도 고급스럽고 질좋은 것으로 가지고 놀면서 무척이나 빠르게 두뇌능력이 발달을 하지만, 가난한 집에 아이들은 어디서 주워온 고물쓰레기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상대적으로 두뇌능력 개발이 뒤쳐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설명도 되는 것이다.
< 한 달에 성인 한 명당 7,433달러로 생활하는 가정의 장난감 >
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출신이 용이고 쇠똥구리라고 해서, 처음부터 가지고 노는 장남감의 수준마저도 차별을 주고 이것 마저 사회공동적인 차원에서 해결을 해주지 못한다고 한다면, 사회진화발전적인 측면에서 그동안의 세월 동안 사회가 성장해왔다는 것이 과연 실질적인 성장을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해왔다는 것인지 우리 스스로를 돌이켜 생각해 볼 만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