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유달리 자존심이 강하다. 남에게 어떻게 보여질까를 제일 중요한 삶의 척도로 생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을 역으로 이용을 하면 자존심을 건들고 사회적으로 악평을 하고 평판을 나쁘게 만들어서 고립을 시켜버리면 그것만큼 가장 치명적인 고통이 없다는 말도 된다.
체면치레 문화의 특성이라는 것이 그러하다. 이러한 심성적인 문화의 덕택에 남에게 지기는 싫고 꿀리는 것이 싫어서 경쟁적으로 더 잘 살아보려고 악독하게 노력을 해 올수 있었던 성장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였던 것이고, 비록 자신은 보잘 것 없는 가난한 삶을 살지라도 자식들만은 훌륭하게 잘 키워보려는 자식공부 뒷바라지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었으니 그것 때문에 오늘날의 한국사회까지 발전해올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이 심성적 특성들이 온라인 미디어와 SNS 커뮤니티가 지배를 하는 시대에 도리어 한국인들의 심성적 문화적 단점을 건드리면서 무너뜨릴 수 있는 치명적인 부메랑식의 공격방법이 될 줄이야.
촛불시위혁명의 성공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한국인 특유의 심성적 특성을 역으로 간파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상대를 공격해서 무너뜨릴 수 있다는 공식이 성립되기 때문에 성공이 가능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성폭력 의혹을 받는 이화여대 관현악과 S고수의 사무실 앞에 학생들의 항의 포스트잇과 문구들이 붙어있다>
시위를 하면서 공격적인 방법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폭력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다만 시위를 위한 시위만으로는 안 먹히는 것이 권력자들의 횡포이기 때문에, SNS 커뮤니티와 온라인 토론공간등을 활용한 방식으로 공격대상자의 과거지사와 가정사적인 헛점까지도 다 캐어내서 유포시키면서 그 권력자의 오늘날 특성이 왜 그렇게 나올 수 밖에 없었는지를 과거지사의 이야기들과 연관을 시켜서 논리정연하게 설명을 하고 그것을 온라인상에 유포시키면, 그 특정인에 대한 악담이 돌고 돌아서 결국은 치명적인 상처를 물리적 칼로 찌르는 것보다도 더 고통스럽게 느끼게 하면서 스스로 물러나게 만들어버린다.
어쩌면 온라인 공간상에서의 마녀사냥과 갑질제보와 미투운동 등의 전개가 가장 급속하게 가장 짧은 시간내에 퍼져나가면서 사회를 개혁하려는 물밑작업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한국에서 가장 심하게 느껴지는 것에도 당연히 이러한 이유가 숨겨겨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시위문화는 당연히 있는 것이고 권력자의 횡포에 저항하려는 움직임은 어느 시대 어디사회에서나 동일하게 존재하는 것이 인류문화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느냐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를 따지고 들어가게 되면, 그 나라 그 민족 그 시대 그 사회의 특수성과 밀접하게 연과되어져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춧불시위혁명이 조용한 듯 비폭력적인 것 같으면서도 치명적인 무기가 되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인의 심성적인 문화적인 시대적인 특수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임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에서 유달리 명예훼손죄와 모욕죄와 관련된 고소고발이 넘쳐나는 것에는 그만한 사회적 특수성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도 사회권력자가 국민대다수에게서 자신의 개인사에 대해서 밝혀지면서 마녀사냥을 당하는 것에 있어서는 법적대응을 일일이 따져 물을 수 있는 현실성 있는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법률에서는 아주 기묘하고도 절묘하게 권력자들의 횡포를 온라인 상에서 까발려도 아무런 대응을 할 수도 없도록 만들어져 있는 한국사회만의 또 다른 특수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특수성이 촛불시위혁명을 통해서 드러났던 것도 그러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사회전반적으로 춧불시위의 문화적 특성이 변화되어져서 등장하고 있는 실태이다.
<대한항공 직원들과 시민들이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열린 '조양호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제1차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최근의 대한항공 총수일가의 갑질횡포로 인하여 붉어진 촛불시위 역시도 그러한 특성을 드러내고 있는데 온라인 공간을 통한 치명적이고 부끄러운 과거지사에 대한 실토와 확산유포, 그리고 오프라인에서의 촛불시위운동을 같이 전개하면서 심리적 압박을 가하게 되면, 한국인이라면 천하의 강심장이라도 버티고 있을 권력자는 아무도 없다.
그가 순수한 한국인의 문화적 특수성을 물려받은 한국인 혈통이라고 한다면, 억지로 안하무인식으로 눈 하나 깜짝 안 한다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공격대상자인 그에게서 치명적인 단점을 캐어내기에 가장 적절한 내용은 뭐니뭐니해도 성적인 일탈과 치부를 들춰내는 것이겠다.
어쩌면 한국인이 불법유통의 발기부전치료제 등과 정력제등을 유달리 많이 찾는 나라이면서도 동시에 성적인 문화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듯 터부시 하는 척 하는 이중적 잣대의 문화를 가진 배경에도 이러한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한 특수성 때문에 성적인 치부를 들춰내어서 과거의 무례하고 비도덕적이었던 행동거지들을 까발리게 되면, 비록 그것이 마녀사냥일지라도 한국인에게서는 가장 치명적인 칼날이 심장에 꽂혀드는 고통을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공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마치 갑질제보와 미투운동의 확산, SNS 커뮤니티 수단의 등장, 세계에서 가장 으뜸가는 온라인 활용문화, 그리고 오프라인에서 전개되어지는 촛불시위문화는, 한국인들을 위한 한국인에 의한 한국사회의 개조를 위한, 지금 이 시대의 새로운 변혁을 위해서 등장한 한국인의 치명적인 사회개혁의 수단들이라고 여겨질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