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만평(時代漫評) - 198. 갑질제보, 미투운동, 대한항공 촛불

Words
781
Reading
4 min
Listen
Play
8y

image.png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은 한국사회에서 그동안 억눌러져 왔었던 권위주의적 횡포에 대한 반발을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만들었던 사건이다.

그 이전에 박근혜를 청와대의 권좌에서 물러나게끔 만들었던 것은 권력기관의 힘이 아니라 전국의 소시민들이 모두 들고 일어난 민중봉기의 힘이었다. 지금시대의 민주봉기는 정치권력의 횡포를 더 이상 용납하지도 않을 뿐더러 단순히 과거역사시대처럼 먹을 것을 수탈해 가는 정도의 착취만을 가지고서 봉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과거의 역사시대에는 민중의 봉기라는 것이 자신들의 농토를 빼앗기거나 먹을 것을 수탈당하는 식의 물질적 착취에 저항하기 위한 싸움이었지만, 지금처럼 인터넷 문화가 발달되어져 있고 기본적인 수준의 지식을 누구나 다 공유하고 있는 시대에는 물질적 착취 때문이 아니라, 나중에라도 물질적 착취를 야기시킬 수 있을 만한 소지가 있는 이념적 정치적 사상적 억압과 자유로운 표현의 억압과 동등한 인격적 대우를 묵살하는 정신적 착취를 더 중요한 민중봉기의 원인이라고 보아야 하는 시대이다.

그만큼 사회가 성숙해졌다는 것이고, 성장을 해왔다는 것이고, 사회전체적인 구성원들의 머리수준이 커졌다는 것이다. 어린애들도 어릴 때에는 미숙하고 아는 것이 적기 때문에 어른들이 적당히 먹을 것을 입에 넣어주면서 속이려고 하면 얼마든지 속이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지만, 점점 커가면서 아는 것이 많아지고 서서히 자기주체적인 생각의 능력이 생겨나기 시작하면 부당하고 부조리한 어른들의 처사에 대해서 따지고 대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정신머리 똑바로 박힌 어른이라고 한다면, 아이가 점점 자라나면서 자기주체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고 스스로의 비판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을 더욱 반갑게 여기고 환영을 해야하는 것이지, 아이가 점점 자신의 말을 안따르고 반항을 하는 것이 많아진다고 해서 그 아이를 내팽개친다면, 그 어른은 어른이라고 대접을 받을 권리조차 없는 막 되먹은 놈이라고 할 것이다.

그만큼 어린아이가 자라나면서 어른의 잘잘못을 지적하고 따지고들면, 자신을 돌이켜서 스스로에게 잘못된 것이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을 하고 나쁜 습성을 고쳐나가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지, 무작정 어린아이의 지적이라고 해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국은 가정의 틀이라는 것 자체도 깨어져 버리게 됨이 분명하다.
image.png

박근혜가 시민들의 촛불혁명 위세에 눌려서 결국은 권좌에서 쫓겨나게 된 원리 역시도 그러하다. 과거 자신의 아버지 시대처럼 국민들의 전반적인 사고수준이 시골에서 농사일 하면서 살던 사람이 대다수였던 시대처럼 정치권력자의 위세에 벌벌떨면서 죽은 시늉이라도 하라고 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하던 시대의 사고방식으로만 국민들을 상대하면, 이제는 국민들의 전반적인 사고수준이 어린아이 수준을 벗어나서 성숙한 어른이 다 되어버린 시대에 그러한 정치적 술수와 황포가 먹혀들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한 연장선에서 생각을 해보면, 땅콩회항 사건으로 시작되어진 갑질문화의 비판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 역시도 국민들의 정서적 의식적 사고수준의 향상과 인터넷토론문화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환경이 빚어낸 특수성이 이러한 사건들의 여론형성이 가능할 수 있게끔 만들어낸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서 미투운동이 일어나면서 여성들에 대한 성적억압과 숨겨져 있었던 여성성에 대한 부정한 이미지를 타파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 역시도, 그 속에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연관된 환경적 배경이 깔려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미투운동과 갑질비판운동을 넘어서서 대한항공 촛불시위에서처럼 권위적 자본가세력을 향한 비판의 문화까지도 형성 되어지고 있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조양호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퇴진을 촉구하면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는데, 이 촛불시위에는 대한항공 전 현직 직원, 한진그룹 계열사의 직원들과 가족들을 비롯해서 예상외로 일반시민들의 참여까지도 크게 늘고 있다고 하니, 탈권위적 시민운동에는 이제 전국가적인 의식의 형성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image.png

이 현상 역시도 과거의 대기업 주도하의 국가산업 성장이라는 시대적 사명이 강하게 어필되던 시대에는 전혀 일어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미투운동 광화문촛불시위혁명 갑질제보 대항항공촛불시위 등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분명히 시대변화와 더불어서 일어나고 있는 탈권위적인 정신개혁의 움직임이라는 것은 분명한데, 이 탈권위적인 개혁의 대상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누군인가를 물어본다면, 그것이 애매하게 정의될 수 있는 혼란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아주 껄끄러운 현상이다.

과연 대기업총수가족의 갑질횡포가 마음에 안들어서일까?

방송국 사장의 업무능력이 무능하고 부하직원들에 대한 인사권을 마음내키는 대로 행사를 한 것 때문일까?

나이 많은 직장상사가 나이 어린 부하직원에게 기분 나쁜 말을 했다고 해서?

남자 직원이 여자직원의 가슴을 만지면서 야릇한 농담을 했다고 해서?

돈많은 기업가들의 위화감 느끼게 만드는 그들의 화려한 소비문화가 마음에 안들어서?

권력기관의 장급위치에 있는 자들이 그들의 권한 밖에 있는 권한을 행사하려고 해서?

아니면 그들이 몰래 여직원 엉덩이를 문질러댄 추잡한 과거가 있어서?

상당히 이상하지 않은가? 분명히 시대적 변화의 현상은 탈권위적 탈권력적 현상이 다양한 사회적 운동으로 나타나면서 전개 되어지고 있기는 한데, 구체적으로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명확하게 정의 내리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아주 딜레마같은 지금의 한국사회이다.

아니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정의를 내리기 이전에, 과거의 피해본 것, 억울했던 것, 억눌렸던 것, 기분나빴던 것에 대한 마이너들의 메이저들에 대한 집단적 반발이자 보상을 원하는 무작정 반항을 위한 반항의 표출문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image.png
그래서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탈권위적 탈권력적 사회개혁운동의 전개양상들을 바라보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 가지 섬뜩한 예견을 해 본다면,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들 역시도 회사에서나 가정에서나 동료들간에서나 미투운동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갑질제보의 대상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탈권위적 탈권력적 비판의 대상이 되어서 언제 비난과 힐난의 대상이 될 지 모른다는 경계심을 항상 가지고 조심성있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하는것이 과연 조심성있게 하는 것이냐고 어느누가 물어온다면 당신들 역시도 답을 해주기에는 아주 곤란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도 아직까지 탈권위 탈권력적 사회개혁운동의 본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감을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의 급속한 사회변혁을 상징하는 현상들의 이면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상식적이다라고 정의 내려왔었던 그 상식의 논리들이 이제는 그 생명성을 다 했으니까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들의 수준을 넘어선 새로운 페러다임의 사회적 가치관을 만들어 내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감을 알려주고 있는 그림자와 같은 현상들이 아닐까?

image.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