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본인으로서는 장난감에 대한 추억이라는 것이, 대부분 종이공작으로 직접 만든 것이거나 혹은 나무를 깍아서 만든 목공예 장난감에 대한 것들이다. 간혹 돈 꽤나 있는 집안의 아이들은 몇천원짜리 미니카나 모형비행기 등을 가지고 놀 수 있거나 명절날에만 특별히 총이나 조금 비싼 장난감 몇가지 살 수 있는 정도였다.
그 시절에는 아동의 인지능력 향상을 위한 장난감 놀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깊지를 못했고 그냥 아이들이 심심하니까 가지고 놀 수 있는 것 정도로서의 개념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시절에 어린 나이지만 친구들과 사회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정치적 책략을 어떻게 구사해야 하는지를 터득하게 만들어 준 것이 어린이들의 장난감 문화였다고 하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나이는 보통 10세 미만의 아동기에 해당한다. 그 나이에 바라보는 세상의 넓이라는 것은 아주 폭이 좁을 수 밖에 없는 것인데, 손에 쥐어준 장난감이라는 것은 자기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또래 친구들과의 장난감 문화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세상살이의 절반 이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어떤 형편의 집안 아이들과 어울려서 놀수 있느냐는 , 그 아이만의 독특한 세상을 창조하게끔 만들어버리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겠다.
나의 경우는 어린 시절 이렇다할 장난감이 많이 없다보니, 구멍가게에서 10~20원 정도를 주고서 살 수 있는 조그마한 자동차 모형이나 고무줄 총 혹은 산에 가서 직접 나무를 깍아서 만드는 모형들 등이 대부분이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어떠한 것을 가지고 놀 수 있으냐는 비슷한 성향의 또 다른 친구를 내가 포함된 친구들 그룹 안으로 포섭을 해와서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드는 유인책이 되는 것이었고, 그 장난감 문화가 서로 다르거나 같으냐에 따라서 친한 사이와 멀어지는 사이가 결정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의 장난감 문화는 혼자서 가지고 놀면서 재미있어 하는 차원이 단순한 1단계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그 후에는 또래의 친구들과 어떻게 사회적 관계를 맺게끔 만들고 그 관계를 유리하게 만들어갈 수 있으냐를 터득하게 만들어주는 관계망 형성의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초적인 수준의 정치적 전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회적 과정을 거치면서 일명 정치적인 전략을 어떻게 구사하느냐에 따라서 친구관계를 더 가깝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관계를 멀어지게도 만들거나 혹은 나를 괴롭히는 나쁜 놈을 보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왕따를 만들어서 쫓아낼까를 궁리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린시절의 장난감은 단순히 가지고 놀 수 있어서 재미있는 대상물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다양한 세상의 속성을 체험하고 깨달아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아주 요긴한 사회적 교육수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세상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의 세상이야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장난감들도 아주많고, 전반적인 부모세대의 학력수준이 높다보니 자녀교육에 열성적이기도 하고, 아동성장기의 놀이문화에 따른 사회적 능력개발과 두뇌능력 발달을 왜 중요시해야 하는지 등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세대이다보니, 아이들에게 비싼 장난감도 주머니사정 마다않고서 턱턱 사 주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야 세상이 변화되면서 그리고 여러가지 사회문화적 환경역시도 변화되면서 나타나게 된 오늘날의 세태이니 이것이 좋다 나쁘다 평가를 할 수는 없는 것이겠고, 지금시대는 외자녀가 많다보니 그리고 다른 집안의 아이들에게 상대적으로 뒤쳐지기 싫다는 부모의 자존심 경쟁이 가세가 되어서, 더더욱 이러한 비싸고 고급스러운 장난감에 집착이 심하기도 할 것이다.
더구나 아동용품이나 완구 장난감들을 생산하는 업체들 역시도, 자식에게 최고로 좋은 것만을 마음껏 해주고 싶다는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심리를 자극하면서 상술적으로 비싼 돈이라도 아까워하지 않고서 고급장난감을 구매할 수 밖에 없도록 부추기는 마케팅 전략을 계속해서 구사하고 있으니 대부분의 부모들은 여기에 넘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부모의 한 달 월급의 10%를 넘는 가격의 장난감"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등장한 것이 있다.
더구나 가정의 달과 어린이날 등이 끼여져 있는 때에는, 부모로서 남들에게 뒤쳐지기 싫고 아이들이 또래 아이들에게서 무시당할까 싶어서라도 무리하게 빚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비싼 장난감을 사주려고 안달을 하는 것이 비일비재하지만, 분명히 이것은 좀 더 깊게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까 싶다.
대한민국의 유별난 교육열과 체면문화 그리고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을 중요시하는 문화의 특성상, 자식에게 어떤 옷을 입히고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게 하고 어떤 교육을 받게 하느냐는 부모로서의 위신을 살리기도 깍아내리기도 하는 것이겠으니, 지금의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어린자녀들을 둔 부모들은 비싼 고가의 장난감을 자녀들에게 사주지 못하는 것이 마치 죄인인라도 되는양 풀이 죽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이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코미디가 아니고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사람들이 모두가 그러하니 거기에 맞춰갈 수 밖에 없는 것이겠고 또한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돈을 쓸 수 밖에 없도록 분위기를 조장하면서 부추기는 자본주의적 상술문화가 바람을 불어대고 있으니, 이러한 속에서 나홀로 고고한 백조 한마리로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만 따지면서 살 수만도 없는 것이겠으니, 오늘날의 값비싼 어린이 장난감 문화를 바라보면서 참으로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말이 또 한번 실감이 난다.
10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에게 값비싼 장난감을 선물해본들, 아이들은 가격이 비싸고 낮음의 차이에 개념을 가지지도 않는다. 혼자서 가지고 놀 때에는 장남감을 통해서 무한한 상상력의 즐거움을 혼자서 만끽하는 것일 뿐이고,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서 놀 때에는 친구들과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형성해나갈 수 있느냐를 배우는 도구로서의 역할이 있을 뿐이다.
다만 부잣집 아이들과 가난한 집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의 수준이 다른 것이니 거기서 위화감과 자존심 상함을 느껴서 주눅을 들 수는 있겠지만, 아이들이 느끼는 것보다도 어른들이 지레 짐작하여 느끼는 주눅듬이 더 심한 세상이 되어져 가고 있으니,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장난감이 아니라 어른들 등골휘게 만드는 장난감의 세상일 뿐이다.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즐겁고 행복하고 친구들을 잘 사귈 수 있고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놀이문화로서의 도구라는 장난감 문화는 사라져 버리고, 오로지 부모들의 자존심을 자극하여 어떻게 하면 비싼 장난감을 아이들에게 사주고 싶게끔만을 연구하는 기형적이고도 상술적인 마케팅 문화만이 존재하는 어린이 장난감 문화의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또래의 친구가 자기 것보다 더 비싸고 더 좋은 장난감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함께 어울려서 가지고 놀 수 있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친밀하게 잘 어울려야 하는지 등을 배우는 공유의 놀이문화는 사라져 버리고, 친구가 가지고 있는 아주 비싼 장난감을 자기도 가지고 싶다고 생떼를 쓰면서 부모에게 졸라대고 부모는 그것을 사주기 위해서 한달 수입의 10%이상을 써버려야 하는 사회성 결여의 놀이문화가 더 지배적인 사회문화로서 정착이 되어져 버린 것은, 지금껏 자본주의적 상술에 눈이 먼 기업들의 소비지향적 마케팅전략 때문에 그렇게만 되어져 온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