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에 한국의 걸그룹인 '베이비복스' 가 북한 평양을 방문하여 통일음악회에서 공연을 펼친 적이 있었다.
이 때 북한 방문의 공연행사에서는 가수 설운도, 이선희, 조용필, 그룹 신화 등이 참여하였는데, 공연장에 참석한 북한주민들에게 단연 눈길을 끌게 만들었던 것은 '베이비복스'의 춤과 의상과 율동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베이비복스 그룹의 의상은 목라인이 깊게 파인 빨간 민소매 상의와 미니스커트 등을 입고서 아주 과감하면서도 다소 선정적인 안무를 선보였었는데, 이를 본 북한 관객들의 표정은 아주 당혹스러워하고 경직되어져서 " 도대체 저 뭐지? " 라는 식의 표정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당시의 북한주민들 입장에서는 베이비복스의 의상과 춤 동작등을 보면서 충분히 그럴만도 했던 것이, 그들의 문화는 폐쇄적이고 체제유지를 위한 공연문화 혹은 과거부터 오랫동안 방송을 통해서 흘러나왔던 과거풍의 오래된 노래등에는 익숙해져 있었겠지만, 남한에서 2천년대 전후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던 화려하고 선정적이고 노출이 심한 섹시그룹 형태의 대중음악예술이라는 것을 접해본 경험이 없었을 것이니 베이비복스의 공연을 처음 접하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으리라.
남한처럼 대중상업 방송을 흔하게 볼 수 있는 사회도 아니고, 여성의 외적인 미모를 중요시하면서 노출이 심한 의상으로서 자신을 뽐내는 문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대중적 예술의 다양한 장르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북한주민들이니 더더욱 놀라고 당혹스러운 면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북한 평양방문 공연에서는 한국의 걸그룹 레드벨벳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의 히트곡인 '빨간 맛'과 '베드보이'를 선보였다고 한다. 이 날의 레드벨벳 공연에서 북한 주민들의 얼굴표정은 전반적으로 과거처럼 경직되고 당혹스러운 표정은 거의 없었고 그냥 점잖게 바라보면서 미소짓는 정도의 표정들이었다고 한다. 또한 과거의 베이비복스 공연무대가 끝난후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썰렁함보다는 레드벨벳의 공연이 끝난후에 전체 박수로 화답해주는 식으로 상당히 문화적 소양이 상승된 듯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아마도 과거 베이비복스의 북한공연 이후로 약 15년 정도의 세월이 흐르면서 남한의 대중예술을 북한주민들이 어느정도는 흡수한 것도 있었겠지만, 또한 김정일 사후 김정은 체제로 전환되면서 북한내부에서도 알게모르게 딱딱하고 경직된 분위기의 사회구조에서도 무언가 변화가 있었던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마치 과거의 베이비복스가 공연을 하였을 때의 상황은, 과거 60년대에 어느 여성가수의 도발적인 노력에 의해서 국내에 처음으로 짧은 미니스커트가 소개되었을 때에 길거리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놀라다 못해서 당황해하고 진땀을 흘리고 있었던 엄청난 문화적 충격과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서서히 대중적으로 문화가 침투하게 되고 결국 나중에는 그것에 익숙해지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듯이, 오늘날의 북한 사회도 이와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들 역시도 현재는 아무리 폐쇄적인 사회주의 국가이고 대중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낮은 문화적 고립지대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들에게 대중예술을 통한 점진적인 문화 침투가 이루어지게 되면 서서히 그들의 사상과 이념까지도 변화를 시키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새로운 체제로의 변화까지도 야기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과거에 미국의 자본세력이 어느 가난한 나라를 침탈해 들어가기 전에 가장 먼저 그 나라에 집어넣는 것이 상업적 물품들과 대중예술을 통한 정서적 자극이라고 하였던 적이 있었다. 미국의 리바이스 청바지와 코카콜라, 햄버거와 슈퍼맨영화, 팝송과 미국의 선정적인 성인문화 컨텐츠 등의 대중적 상업예술과 상업주의적 유명상품등을 먼저 집어넣어서 그들의 정신문화가 미국의 위대한 파워에 감동을 먹게끔 만들어버리고 그들의 주체적 사상과 문화의지를 꺽어내려버리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 금융과 기업의 자본세력이 침투해들어가면 미국은 가장 위대하고 좋은 나라라는 일방적이고도 맹목적인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아주 수월하게 그들의 자원과 자본을 모두 빼앗아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북한 역시도 그러한 과정을 밟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미국식의 자본세력 침탈이 북한에서는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중예술을 통한 지속적인 자극과 그러한 문화에 대한 노출은, 결국은 북한 주민들의 무의식 속에 깊숙히 감춰져 있었던 인간의 본능적인 대중문화에 대한 정서적 욕구를 자극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그들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증가와 새로운 변화에 대한 욕구 표출이 점점 더 깊어지게 되면, 그것이 나중에는 아주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의 막강한 사회변혁의 힘으로 응축되어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예술장르를 크게는 순수예술과 대중예술로 분류한다고 하지만 확실히 대중적 상업주의적 예술은 인간의 오감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강한 힘이 있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인간의 의식을 자극하여 나중에는 전혀 예측하지도 못한 쪽으로 문화와 사회의 또 다른 변화양상을 초래하는 힘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이번 북한 공연에서 '레드벨벳'의 공연을 바라본 북한 주민들 중에서는, 겉으로는 아닌 척을 하고 있겠지만 레드벨벳 멤버들의 화려한 미모와 노출 심한 의상과 선정적인 춤동작 그리고 경쾌하면서도 기분 들뜨게 만드는 이질적인 노래등에 자극받아서, 몰래몰래 한국의 대중 상업주의 예술을 찾아보고 더 많이 접해보려고 노력하는 북한주민들이 계속 늘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