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연히 두 영화를 접했습니다. 블루 발렌타인과 클로저 입니다.
딘(라이언 고슬링)과 신디(미쉘 윌리엄스)의 블루 발렌타인.
전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한 신디는
자신의 모든 걸 사랑해주고 안아주는 딘과의 결혼을 선택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듯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히며 힘들어합니다.
딘이 관계를 되돌리려 노력하는, 그러나 쉽지 않은 과정들이 영화의 주를 이룹니다.
줄리아 로버츠, 주드 로, 나탈리 포트만, 클라이브 오웬 등의 유명한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지요.
너무나 유명한 영화인데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봤습니다.
네 남녀의 얽히고 섥힌 사랑 이야기로
사랑을 배신하고, 배신당하고, 상처주고, 상처받고,
질투하고, 집착하는 내용입니다.
지금의 나이와 경험에 이 영화들을 접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조금 더 나중에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이 영화들을 본지는 2주가 넘었습니다.
글을 쓰고 싶어지게 만드는 영화임은 틀림없지만
시도할 수록... 제 경험과 수준으로는 거창한 글이나 리뷰를 남길 수 없겠다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두 영화 모두 현실과 사랑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이기에
마치 "이래도 사랑이 좋아?!!"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정말 사랑은 변할까요?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렇겠죠...?
안타깝게도 혹은 다행히도
현실에 부딪혀 혹은 다른 이유로
사랑이 식어가거나 권태로움을 느낀 경험이 없습니다.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로 인해 상처받은 경험이 (아직은) 없습니다.
2주 동안 이 영화에 대해 나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에 대한 은근한 고민을 계속 했습니다.
고민하는 중에 마주한 단상을 나열해보자면
첫번째는, 관계와 존중에 대한 내용입니다.
관계의 핵심은 사랑깊은 존중입니다.
부부, 연인, 친구, 가족 등의 인간관계의 핵심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지요.
이 존중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와 관계하고 있다 말할 수 없습니다.
설교말씀으로 이 내용을 듣고
다시 한 번 존중과 존경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이전에 책을 읽고 썼던 글을 찾아봤습니다.
존경.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인정하는 것.
정말 소름돋게도
책의 구절을 적어놓은 마지막에 이런 글귀가, 똑같이 나옵니다.
서로 간의 존경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으로서의 관계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의 토대는 존경에서 비롯된다.
사랑이 존경과 존중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앞서 얘기한 두 영화에서 보여지는 사랑의 결말을 피하기 위해서
즉, 꾸준히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나는 존경받고 존중받을 만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애정어린 관계가 유지되려면 서로는 각자를 돌봐야한다는 것이지요.
서로에게 존경받고 존중받을 만한 존재가 되어야 하니까요.
결국, 또 다시
모든 관계의 핵심은 '나'에게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록
더욱 자신을 돌봐야 함이 명백해집니다.
두번째는, 요즘 읽고 있는 <신경끄기의 기술>에 나온 구절입니다.
성공을 결정하는 질문은 '나는 무엇을 즐기고 싶은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고통을 견딜 수 있는가'다.
행복으로 가는 길에는 똥 덩어리와 치욕이 널려 있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에 맞추어, 내 멋대로 해석해봅니다.
사랑의 성공을 결정하는 건, 우리가 즐기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함께 마주할 고통을 견딜 수 있는가이다.
좋은 날도 있지만 좋지 않은 날도 많겠죠.
모든 고통의 순간을
당신과 함께라는 이유로
견딜 수 있고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게 사랑의 성공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사랑에 대한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모호한 듯 하지만요.)
비교적 최근 누군가와 함께하기를 결정한 사람이
두 영화의 결말이 꽤나 맘에 들지 않아서 (흥)
어떻게 하면 저런 결말을 피해 사랑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상상하며 다독이는 발버둥의 글입니다. (흥흥)
나를 돌보고, 함께 마주할 고통을 기다리라.
이 얼마나 어렵고 심오한 결론인지-
살아보면 알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