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A와 길고양이 -3화- 완

woonkim(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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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와 길고양이
<3화>

어느 순간부터 고양이는 A를 경계하지 않았다.

먹이를 들고 근처로 가면 A근처로 슬금슬금 다가오는가하면 먹이를 먹는 동안 만져도 가만히 있었다. 때로는 A근처를 맴돌거나 다리를 부비기도 했다. A는 퇴근길엔 꼭 녀석의 아지트에 들렀다. 먹이를 먹고 있는 동안에는 이런저런 신세한탄을 늘어놓기도 했다. 별다른 친구가 없는 A에게 고양이는 어느새 단짝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A와 고양이 사이에 놓인 벽이 허물어져 가는 만큼 진급대상자를 발표하는 날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진급대상자를 발표하는 날 당일이 되자 A는 아침부터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우유에 시리얼을 타서 대충 아침을 떼운 A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길로 나섰다. A는 평소처럼 고양이의 아지트를 찾았다.그런데 평소와 같으면 야옹 소리를 내며 A근처로 다가와야 할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녀석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왠지모르게 허전한 마음과 적잖게 서운한 생각이 A의 출근길 내내 먹구름처럼 따라다녔다.

회사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로비 주변에 모여들어 웅성거렸다. 로비에 진급대상자의 명단을 공지사항을 내걸었기 때문이었다. A는 모여있는 사람들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얼핏 눈길을 준 곳에 시야에 포착된 이름은 오사원의 이름이었다.

오사원이 진급대상자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할 정도로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A는 자신의 이름을 계속해서 찾았다. 하지만 진급대상자 명단 어디에도 A의 이름은 없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후배보다 진급이 늦어지다니.

회사를 위해 모진 업무를 마다한 댓가가 몇년째 진급누락이라는 현실을 마주한 A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감정을 표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때마침 오사원이 A의 근처에 있다가 진급대상자명단 앞에서 망연자실해 있는 A를 발견하곤 슬그머니 다가왔다.

" 주임님, 여기 계셨군요!"
" 아... 응.... 아, 오사원 축하해! 조금 전에 봤어."
" 축하는요 뭘, 그래봐야 아직 주임 나부랭이죠. 어쨌든 앞으로 잘 좀 부탁합니다!"

대체 무엇을 잘 부탁한다는 것인지 A는 오사원의 속내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 아 김주임님 그리고 힘내십쇼! 진급이 뭐 대수라고 저렇게 벽보를 붙이는지 참, 떨어진 사람들은 어떡하라는 건지...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오사원은 A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활짝 웃는 얼굴로 A를 위로하며 사무실로 향했다.
회사내부 사람들은 다소 희비가 교차하기는 했지만 대다수 별 일이 없었던 듯이 평온했다.

A의 일상도 특별한 변함이 없었다.

A의 서류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렬되어 있었고 그의 볼펜은 행군하는 전투부대처럼 일렬로 진열되어 있었다. A의 모니터에 띄여진 엑셀파일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온갖 숫자와 품목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 날 저녁 A는 퇴근길에 고양이의 아지트로 발걸음을 향했지만 여전히 녀석의 아지트는 비어있었다. 이상한 조짐이 느껴졌다. 분명 이 시간에 고양이가 사료를 얻어 먹기 위해 기다릴 시점인데 없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A는 불안했다.

어쨌거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고양이의 아지트와 몇발자국 되지 않는 풀숲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옅게 들려왔다. A는 처음엔 그저 잘못들은 것이겠거니 넘겼지만 소리는 여러번 A의 귓전을 건드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A는 소리가 들리는 풀숲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그곳엔 녀석이 있었다.

하지만 온전한 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양쪽 뒷다리와 앞쪽 왼편 다리에 심한 상처를 입은채로 가느다란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무슨 일이야? 다리는 어디서 그런거야? 피가 흥건하네! 안되겠다!"
녀석은 다행히 아직 숨은 붙어 있었고 A의 물음에 멀찌기 보기만 말고 빨리 병원으로 옮기라는 듯, 옅은 울음이나마 계속 질러댔다.

A는 녀석의 신호를 알아채기라도 한 듯 녀석을 번쩍 손에 들고 오면서 보았던 동물병원으로 황급히 내달렸다. 녀석은 분명 동네 떠돌이 개들에게 공격을 받았거나 1톤 트럭 바퀴에 숨어 있다가 치인 것일 테다.

A가 내달린 횡단보도 위로 녀석의 선혈이 흔적처럼 뚝뚝 흘러내렸다. A가 횡단보도의 눈금을 밟는 것도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가을을 재촉하는 서늘한 바람이 A와 고양이가 지나간 자리 위로 살랑살랑 불어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