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레로폰의 비극 - 1
고요한 밤하늘에 별 하나가 외로이 몸을 반짝이고 있다.
홀로 서서 몸을 반짝이고 있는 별은 도시에서 자취를 감춘 동료를 대신해 밤바다를 외로이 비추고 서 있는 난파선 같다. 나는 그 별 아래에 새로운 별자리들이 어깨동무하고 빙글빙글 춤을 추는 상상을 해보았다. 카스피호랑이, 바바리사자, 네브래스카 늑대, 콰가, 토종늑대, 흰목파란 잉꼬, 여행비둘기…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장수하늘소가 유성처럼 하늘을 떠돈다. 장수하늘소는 한쪽의 날개를 잃어버린 병신이 되어 절뚝절뚝 하늘 가장 높은 곳을 향했다.
값비싼 양주가 내 속을 가득 채워서 그런지 추운 날씨에도 속이 뜨끈했다. 대학 시절, 천문학동아리 대표로 활동했다는 이 대리는 내 옆에서 자랑스럽게 별자리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도시의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은 희미하기 그지없건만 그는 내 옆에서 마치 별들이 생생하게 떠있기라도 한 듯이 서구신화를 들먹여가며 설명하기에 열을 올렸다.
“페가수스는 영웅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죽였을 때 흘러나온 피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예술의 여신 무사들이 노래시합을 벌이던 헬리콘 산에서 페가수스가 대지를 걷어차서 샘이 솟아나왔는데 그걸 히포크레네라고 하죠.”
“그렇군.”
“과장님, 바로 저기가 페가수스 별자리의 몸통 부분이에요.”
“어, 어디?”
“제 손가락을 따라가 보시겠어요? 보이시죠? 오늘 날씨가 흐리긴 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일 겁니다.”
“저기 말하는 거야?”
“아니요. 저기 네 개의 별을 연결하면 큰 사각형이 되잖아요.”
“아, 아 그러네. 보이네, 보여.”
“페가수스의 몸통으로 이어진 이 네 개의 별들을 가을철 대사각형이라고 불러요. 이 별을 중심으로 놓고 다른 별자리를 찾는 거죠.”
나는 문뜩 밤하늘의 별자리는 왜 죄다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만을 빼다 박았는지 궁금해졌다. 내 눈에는 전혀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명마 페가수스가 연상되지 않는 데 말이다.
“왜 별들의 이름은 모두 그리스신화에서 따온 걸까? 그보다 좋은 이름도 많잖아. 태백산 야생호랑이, 토종늑대 같은 거.”
“글쎄요. 뭐, 다소 어감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닐까요?”
“이 싱거운 양반 좀 보게. 어감이 좋다고 붙이는 게 말이나 되나? 천체동아리 반장까지 맡았었다는 사람이 하는 생각하곤, 공부해오게.”
“그나저나 사모님하고 따님께서는 한국에 오실 때가 되지 않으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어젯밤에 아내와 딸과 영상통화를 했다. 오늘 밤하늘에 뿌려진 보이지 않는 별들이 유통기한 지난 설탕가루 마냥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딸아이의 예쁜 눈동자는 몇 개월에 한 번씩 볼 때마다 의젓해지는 것이 느껴지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은 이상할 정도로 감상에 젖어든다. 냉정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감상에 곧잘 빠지는 마음 따위는 버리는 게 좋다. 감상에 젖어드는 것은 나약한 인간이나 하는 놀이에 불과하니까.
“원래는 올해 말 즈음 한국에 돌아오기로 되어있었는데 조금 더 공부할 생각인가 봐. 못해도 2년 정도는 더 있다가……”
“어휴, 그럼 몇 년을 홀로 생활하신 거예요?”
“8년 조금 넘었나?”
이 대리는 8년 정도를 홀로 생활했다는 내 얘기를 듣곤 기겁을 하며 말했다.
“아니! 그 정도나 되었습니까? 우와 저 같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생활은 못할 겁니다. 역시 과장님의 인내력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2년 더 있다가 오면 합이 10년입니다. 10년!”
“뭐, 그런 셈이겠군.”
“이제라도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해서 같이 생활하면 좋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렇게 견딘 시간이 몇 년인데, 아깝지 않은가.”
“아이코, 대단하십니다. 정말……저 같으면 못 견딜 거예요. 그런 생활은.”
“우리나라에서 배우는 콩글리시 같은 영어로는 경쟁력이 없어. 그런 영어로는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단 말씀이야. 이 사람아! 자네도 아이를 어떻게 경쟁력 있게 키울지 생각해봐야 해. 요새 같은 경쟁시대에, 아이를 사람 구실하게 키우기 위해선 과연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해봐.”
“저는 그냥 지금이 좋습니다. 아, 그 귀여운 아이들을 외국에 때어 보내면 대체 무슨 재미로 살겠습니까? 어휴. 그리고 저는 그만한 배짱도 없고요.”
이 대리는 연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나는 녀석이 애송이처럼 느껴졌다. 나도 아내가 처음 외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 비슷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녀석도 나와 같은 코스를 밟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 요즈음 세상에 그런 경쟁력 없이 세상이 살아지겠는가? 모든 게 경쟁이고 전쟁이다. 어차피 세상이 전쟁터인데 우리가 그런 피난민 생활을 못 견디란 법도 없다. 우리와 같은 세대에게 자식을 경쟁력 있게 키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노후준비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했다. 우리는 언젠가 환하게 필 연꽃봉우리를 틔우기 위해 쓰디쓴 인내를 견디고 있는 셈이다.
“과장님, 그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쇼.”
“그래. 주말 잘 보내게.”
택시를 잡아서 집 방향까지 기사에게 친절하게 알려준 이 대리는 내가 사라질 때까지 가벼운 묵례를 했다. 페가수스 덕에 안전하게 키마이라를 죽이고 영웅이 된 벨레로폰은 자만심이 커져 페가수스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자만심이 하늘을 찌른 벨레로폰을 탐탁지 않게 여긴 제우스는 등에 한 마리를 보내어 페가수스의 꼬리 밑에 붙게 한다. 등에는 보통 파리와는 달리 마피를 빨아 먹을 정도로 몸피가 큰 녀석인데 제우스가 만들어 보낸 녀석이니 보통의 등에 하고는 차원이 달랐을 것이다. 등에 때문에 몸부림치던 페가수스는 벨레로폰을 떨어트리고 고귀한 천상으로 올라가 별자리가 되었다. 그리고 갈대밭에 떨어진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절름발이에 장님이 된 벨레로폰은 사람을 피해 외로이 황량한 들판을 떠돌다가 불우한 여생을 마쳐야 했다.
이 대리는 나를 택시에 태워 보내기 직전에서야 별자리 신화의 결말을 알려주었다. 직장 후배에게 별자리강의를 들을 줄 알았더라면 진작 교양 삼아 별자리 공부나 해둘 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너무 앞만 보고 지금까지 달려왔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종종 들 때가 있다. 하기야 그토록 묵직한 바위 같던 아버지가 나에게 단둘이 여행을 가자고 제안해서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도 아버지가 지금의 내 나이 무렵이었으니까, 그토록 강직했던 나도 세월의 흐름은 거스를 수가 없나보다.
택시는 어김없이 북부 버스터미널을 지났다. 그곳을 지나야 내가 홀로 자취하고 있는 빌라가 나온다. 나는 문뜩 버스터미널을 지날 때에 늘 바라보게 되는 공간을 기계적으로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꿰맨 자국이 있는, 낡은 양복을 걸친 걸인 악사와 이국적인 소녀, 나는 그 공간에 언제나처럼 서서 연주하는 그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명칭을 붙여 속으로 불러보았다.
오늘따라 그들이 무척 보고 싶은 밤이다. 내일은 어차피 할 일도 없을 텐데 버스정류장에나 가서 가능하다면 그들과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어느새 택시는 우리 집 앞에 당도했다. 택시기사에게 구겨진 지폐를 주섬주섬 꺼내다 손에 쥐여주고 불 꺼진 방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업무로 지친 노곤한 몸을 침대에 던지고 불은 켤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옷에 밴 주점 아가씨들의 진한 화장냄새와 술 냄새와 담배냄새가 혼합된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어쩌면 회사업무 때문이 아니라 업소에서 가식적인 웃음을 파는 아가씨들의 물컹거리는 살결에 치여 몸이 지쳐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기야 그것조차 회사업무의 연장… 거래처사장이다, 바이어들이다, 뭐다, 지겨운 족속들이건만 그들은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우리 부서의 실적을 책임지는 열쇠들이기도 하다. 마음속에 칼날 같은 송곳을 품고도 겉으로는 연신 허리를 굽실대며 형님, 형님, 아우님 하며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것이 영업부서에서 일하는 자의 숙명이다. 반지르르한 개기름으로 가득 찬 살집에서 터져 나오는 뱀 같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파는 아가씨들을 양어깨에 차는 가증스러운 몇몇 사장들을 지켜보며 내장 속에서 올라 나오려는 구토를 애써 씹어 삼키며 나 또한 그들처럼 아가씨를 어깨에 차고 즐거운 가면을 장착하느라 속은 썩어 문드러져 간다. 솔직히 그러한 유흥 속에서 쾌감을 느낀 적도 몇 번 있기는 하나, 결국 내가 이러한 가식적인 생활을 이겨낼 수 있는 근원은 하루, 하루 자라나고 있는 사랑스러운 내 딸과 하나뿐인 아내다.
나는 침대에 드러누운 채 작년에 함께 찍은 휴대폰 속의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며 좀 전까지의 지저분한 생활을 씻어 내렸다. 아내와 딸은 이 시간에 무얼 하고 있을까, 텍사스의 시간은 몇 시지, 영상전화를 걸어볼까,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가장으로서의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게다가 지금은 잔뜩 술에 찌든 모습이 아닌가.
내 주변에도 나처럼 외로운 기러기들이 꽤 있다. 그들 중에는 외로운 생활을 견디지 못해 술로 외로움을 채우려다 결국 알코올중독자가 되어버린 놈이 있는가 하면 방탕한 생활에 빠져 결국 가정을 파탄 낸 의지박약자도 있다. 또 웬걸, 아내가 외국 놈과 눈이 맞아 가정이 산산조각이 난 꼴사나운 가정도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오직 딸의 교육을 유일한 삶의 목표로 두고 서로 신뢰와 인내로 똘똘 뭉친 이상적인 유형의 가족인 셈이다. 남이 무어라 하던, 적어도,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 속이 또다시 뜨끈하게 달아오른다. 나는 꿈에서 아내와 딸을 조우하는 것에 만족하기로 하고 잠을 청한다. 그러나 이놈의 값비싼 양주는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여전히 내 속을 두드리고 할퀸다. 결국, 새벽에 몇 번이나 잠에서 깨어나 변기에다가 구토했다. 네 번 정도 구토를 하고 나니 어느새 시침은 새벽 여섯 시를 가리킨다. 근래에는 지금처럼 늘 이른 새벽에 잠을 깬다. 애써 침대에 드러누워 잠을 청해보지만 한 번 달아난 잠은 육체를 벗어나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문뜩, 어두운 방구석을 우두커니 지키고 있는 목각부엉이가 눈에 띄었다. 목각부엉이는 나를 쳐다보며 큼직한 눈을 번쩍 뜨고 부엉, 부엉, 울음을 터트렸다. 언젠가 출장 차 방문한 태국의 어느 골동품 가게에 들렀다가 구매한 물건이다. 육십이 넘은 노파가 운영하던 가게였는데 그녀는 그 일대에서 괴기한 명상가, 혹은 점을 치고 신비스러운 물건을 파는 무당으로도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 그곳을 여행하고 돌아온 한국인이나 여타 외국인이 그들의 블로그에 기괴한 노파와 신비스러운 물건을 파는 골동품가게에 대한 글을 많이 올렸고, 여행사직원이 그곳을 추천하는 명소 중 하나로 추가시켰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 당시 신혼여행을 막 다녀온 이 대리의 소개로 그곳을 들렀었는데 그녀의 소문은 굳이 따져 묻지 않더라도 외모만으로도 충분히 소문의 진가를 드러냈다. 허리춤까지 기른 백발과 퀭한 눈, 그리고 얼굴을 가득 덮고 있는 장신구들이 신비하고도 괴상한 마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목각부엉이가 가진 신비(神祕)에 대해서 그들의 언어로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마치 내가 물건을 사야 할 것처럼, 아니, 이미 물건이 나를 선택했다는 식의 억지를 부렸다.
‘이 부엉이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스스로 선택한다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다가오면 나에게 신호를 보내지. 나무 도령의 한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당신은 이 부엉이를 타고 자유자재로 이곳저곳을 넘나들 수 있을 것이오. 시간도 공간도 없는 꿈을 통해서, 당신의 깊고 깊은 마음의 어둠을 통해서, 당신이 보고 싶은 것들을 볼 수 있지.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는 순간에 끊임없이 부엉이에게 신호를 보낸다면, 당신은 어둠 속에 담긴 현실을 볼 수 있을 거요. 자, 5,000밧에 가져가시오.’
‘5,000밧은 너무 비쌉니다. 고작 이 나무공예품을… 너무하시네요. 할머니.’
나는 어설픈 태국어로 노파에게 대꾸했다.
‘저걸 얕보지 마시오. 저것은 그냥 나무 조각이 아니야. 나무 도령이 목숨을 부지한 거대한 맹그로브가지 중의 하나를 주워서 만든 우리 집안의 보물이지. 이 부엉이가 자네를 택했으니 거저 주는 셈이지. 잔말 말고 가져가.’
‘보물이라면서 왜 나에게 팝니까?’
‘내가 말했지. 이 부엉이는 자기가 선택을 한다고 말이야. 오늘 아침부터 이 녀석이 그러더군. 드디어 자신을 데려갈 적임자가 온다고. 자네가 바로 그 적임자야.’
‘참나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군. 공예품이 말을 건다니.’
‘자네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지? 망령의 징조다. 이걸 가져가. 그래야 진실을 볼 수 있어.’
망령의 징조라는 단어를 내 가족과 동일취급을 써가며 물건을 팔아 처먹은 할망구는 저주를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나이로 볼 때 지금은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내방의 목각부엉이는 그냥 나무 조각이라고 보기에 여간 찜찜한 구석이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주인의 흉측한 구라라고 해도 말이다. 종종 밤이면 부엉이 소리가 실제로 귓가에 맴돌곤 하는데, 주인이 목각부엉이에 대해 신비성을 부여하는 것은 그녀의 조상 대대로 관리해온 거대한 ‘맹그로브’ 나무에 얽힌 이야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