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속 새빨간 하트가 옹졸하다.

Words
525
Reading
3 min
Listen
Play
9y

나, 갈게.

뭐?

처음부터 선택 받을 수 없는 사람인데 내가 여기에 왜 있어.

급하게 남자를 붙잡는 여자. 가지 말라고, 차에서 이야기 하자고. 입을 오물거리는 여자의 목소리는 떨어지는 꽃잎 마냥 한 없이 약하고, 떨렸다. 그녀의 눈을 쳐다보지 않는 그의 모습이 그녀를 더욱 작아지게 만들었다. 차를 타고 그녀의 집 앞으로 가는 길은 두 사람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도착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여자.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아닌데. 잘못한 건 없는데.

오빠는 나랑 그래서 헤어지고 싶은 거야?

이 상태라면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어, 나는.

나는… 그러기 무서워.

새로운 일상이 찾아올 거야.

여전히 자신의 눈을 쳐다보지 않는 그가 미운 그녀. 창 밖을 바라본 그의 눈에 더 이상 그녀는 비치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주머니에 있는 막대사탕 하나를 입에 물었다. 진한 포도향이 그녀의 입 안을 맴돌았다.

사실 난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도망치는 걸 선택하고 있어. 내가 비겁하게 도망치는 거야. 성은이 말이 맞고, 왜 그러는지도 알아. 다만 내가 비겁한 거야. 그러니까 성은이는 잘못한 게 없어. 성은이가 좋지 않은 게 아냐. 그런데 나는 나도 너무 중요해.

비겁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비겁하지 않았다. 비겁하게 도망치는 행동을 비겁하다고 말하는 그는 비겁하다고 할 수 있나? 비겁한 말을 하는 비겁하지 않은 그는 그녀를 밀어내고 있다.

너랑 나는 마치… 달리는 기차 같아. 옆에 꼭 붙어서 가는 기차. 평소에는 충돌할 일이 없는데, 한 번의 충격을 받으면 서로 부딪쳐버려. 그래서 우리는 함께 할 수 없어. 나는 뚜렷한 기준이 있어,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는데. 성은이 의견을 수용하는데 사실, 남들보다 몇 배 더 많은 순간을 감내했어.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나는 더 이상 나를 갉아먹으면서까지 너를 받아들일 수 없어. 방금 오면서 생각 했어. 나는 네 의사를 묻지 않고 멋대로 카페를 나와서 너희 집 앞으로 왔어. 나는 너한테 데이트 폭력을 해 버렸어. 나는 너를 존중하지 못 했어.

말을 마친 그의 입이 쓰다. 그녀의 눈에 물이 맺혔다. 이제 더 이상 그는 그것을 닦아줄 수 없다. 그것을 안 그녀도 더 이상 그에게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지 않는다. 풀이 죽은 목소리로, 그동안 이래서 고마웠어, 저래서 미안했어. 이래서 행복했고, 저래서 좋았어. 그 동안의 일들을, 미처 말 못한 것들을 눈물 콧물 범벅으로 늘여 놓는다. 그녀의 입 속에서 녹는 막대사탕이 둘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사실 어제 밤만 해도 난 화가 나 있었어. 금요일엔 야근해서 토요일 오후 2시까지 자고. 또 일어나서 나랑 카톡은 잘 안하고 모임 가서 술 마시고 새벽 2시에 집에 들어오고. 엄청 화가 났었어. 서운했어. 근데 오늘 오빠 얼굴을 보니까 또 화가 안 나더라.

알고 있었어. 성은이가 나한테 서운했던 거 사실 다 알아. 나를 많이 배려해주고, 나한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나에게 애정을 갈구했어. 참.. 좋은 사람이야. 아마 내가 앞으로 성은이만큼 좋은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울거야.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서 까다로운 나를 제일 많이 이해해 주고, 항상 나를 배려해줬어.

마지막으로 한번 안고 이마에 뽀뽀하면 안될까?

응, 안돼. 미안하다, 배려해주지 못해서.

알겠어.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나도 오빠도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 나중에 정말 내가 오빠를 봐도 아무 감정이 들지 않을 때 연락할게. 그땐 우리가 친구로 지낼 수 있길 바라. 잘 가.

응, 잘 있어.

집에 온 여자는 다이어리를 펼쳐 든다. 26일 금요일 밤에 설레는 마음으로 28일에 하트 표시를 했던 자신이 야속했다.
이제 더 이상 스팀잇에 쓴 글을 자랑할 상대가 없다. 글을 보고 같이 좋아해줄 사람도 없다.

다이어리 속 새빨간 하트가 옹졸하다. 다 먹은 막대사탕의 막대가 외롭다. 입 안의 포도향이 쓰다. 애써 다이어리에 힘겹게 적는다.

후회하지 않는다. 정말 행복했다.

다이어리 속 새빨간 하트가 옹졸하다.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