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설명하는 '선배'는 후배와 나이 차이가 심하게 나지 않는, 그런 선배를 말한다. 뭐 십 몇년 전 졸업생, 이런 사람은 해당 사항 없다.
본인은 워낙 낯도 안 가리고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살갑게 대하는 편이다.
어느 정도냐고 묻는다면, 교수님과 1대 1로 밥을 먹어도 괜찮고 본 지 30분도 안 된 선배와 언니 동생 사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어찌 보면 뻔뻔하다.
어쨌든 뻔뻔할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 한정으로 친화력이 좋은 나를 몇 년 전부터 괴롭히는 단어가 있는데, 그게 선배님 되시겠다. 님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서 '선배님'이라는 단어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근데 이렇게까지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일단 '선배님'이라는 단어는 다른 '님'자가 붙는 단어들보다 화자와 청자 사이의 나이 차이(혹은 계급 차이)가 크지 않다. 선생님, 교수님, 부장님, 병장님, 기타 등등의 '님'들은 모두 아랫사람과 비교했을 때 매우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선배'는 어떠한가. 대학교를 기준으로 후배와 선배는 꼴랑 몇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물론 남성의 경우 군대를 다녀오니 20대 중-후반까지도 학교를 다닌다만, 근데 그렇다고 할지라도 과연 '님'을 붙일 정도로 높이 쳐줘야 하는 것인가.
사실 더 근본적으로 저 단어가 싫은 이유를 대라면, 아랫사람을 더욱 옥죄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글의 화두에서 나는 저 단어가 몇 년 전부터 싫다고 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몇 번의 경험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옆집 사는 남자애가 나를 보더니 '안녕하세요 선배님' 이라며 90도 인사를 했다. 그 애는 중학생이었고, 내가 나온 중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본인과 같은 중학교를 다녔었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존댓말을 써 가며 폴더폰 인사를 한 것이다.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사촌 여동생이 있다. 이번 설날에 오랜만에 만났는데 예전에는 하지도 않던 존댓말을 갑자기 해대는 것이다. "언니 잘 지냈어요?" 라면서.
"뜬금없이 웬 존댓말이야, 그냥 하던 대로 해~" 라고 했지만, 동생은 "저보다 나이가 많은데 어떻게 그래요" 라며 결국 끝까지 존댓말을 했다.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학교에서 '선배님' 호칭과 존댓말을 쓰는 암묵적인 문화(?)를 배웠나보다 생각했다.학교 커뮤니티 익명 게시판에서 우리 과 18학번 후배를 알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쪽지로 카톡 아이디를 알려주고 그 후배와 카톡을 했다.
그 애는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선배님 안녕하세요!!" 라고 했다.
뭐랄까... 이게 되게 암묵적으로 '선배'라는 존재를 후배들로부터 매우 윗사람인 양, 존중을 넘어서 그 이상의 무언가로 대접을 받아야 할 사람인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때가 많다.
고작 중학생이 된 옆집 남자애는 내게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깎듯이 인사하며, 내게 거리낌 없이 반말을 하던 사촌 동생은 어느날 갑자기 존댓말을 했다. 그 애들과 내가 딱히 권력의 상하 관계에 놓인 것도 아니고, 그저 90년대에 태어났는지, 2000년대에 태어났는지의 차이일 뿐이었는데 그 애들은 나를 본인보다 한참 높은, 본인이 조심해야 할, 혹은 잘 보여야 할 그 누군가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선배님이란 말을 싫어하긴 하는데 그렇다고 남을 제한할 생각은 없다.
일단 기본적으로 후배 입장에서 안 친한 선배를 부를 때 '선배'라고만 하기엔 뭔가 이 나라의 정서상 이상하다. 아랫사람이 불편해 질 상황을 굳이 만들고 싶진 않다. 또 '선배님'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상한 것이라고 치부될 문제도 아니라서 그냥 혼자서 저 단어를 싫어하는 것에서 머무른다.
다만, 나는 내가 밥 몇 그릇 더 먹었다는 이유로 상하관계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더 정확히는 아랫사람에게 위압감을 주는 문화가 싫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항상 "그냥 언니라고 불러-" 라고 말하긴 한다만, 그것에 익숙하지 않은 후배들이 종종 보여서 왠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