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서 영어 보조로 일한다. 아이들 숙제 검사, 단어 시험 등등을 봐 준다. 아이들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그 아이들이 내게 '아이'라고 불릴 만큼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는다. 고등학교 1-2학년 아이들과 대학교 2학년인 나 사이에서, 미성년과 성년이란 차이도 사실 크게 느껴지지도 않고. 거의 친구 같다.
단어 시험지를 채점하다 보면, 늘 잘 외워오는 아이와 잘 외워오지 못하는 아이가 극명히 나뉜다. 재시험을 보고 가는 아이들도 늘 정해져 있다. 숙제 검사를 하고 나서 코멘트가 달리는 아이들도 늘 정해져 있다.
그 아이들에게 말한다.
"왜 단어를 안 외워 왔니."
"왜 숙제를 안 해 왔니."
그 이유는 나도 안다. 외우기 싫고, 하기 싫었겠지.
공부에 크게 꿈이 없는 아이라서 그런 것이겠지.
알면서도, 늘 상처를 준다. 굳이 입 밖으로 싫은 소리를 내지 않아도 아이들은 내 표정을 보고 눈치를 본다. 내 표정이 그렇게 나쁘지 않아도, 그러니까 가면을 잘 썼어도 본인들이 늘상 제대로 해 오지 않은 것에 있어서 죄책감이 있기 때문에, 그 아이들은 늘 분위기를 살핀다.
공부가 꼭 길이 아님을 이야기 해 주고 싶지만 그 아이들의 부모님은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어 하고, 하지만 막상 아이는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스스로도 모르고. 학력의 시대는 갔다고 다들 이야기 하면서도, 그 학력의 시대는 여전히 존재 하고.
하나은행 신입 사원 채용 때에도 서연고에게만 가산점을 주어 서연고가 아닌 실력자들은 거의 죄 다 떨어졌는걸.
우리 머릿속의 세상과 현실 속의 세상의 괴리감은 크다.
아이들을 대하는 것은 그래서 어려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