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눈을 맞추고 현실적인 답변을 해 주고 나면, 그의 눈이 나를 너무 슬프게 바라본다.
그래서 힘들다, 그 눈이.
자주-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주변인의 상담을 꽤 많이 해 왔다. 주변인이라고 해 봤자 지인보다는 친구들이 주를 이루지만. 그들은 마음에 어둠이 드리워지면 이따금씩 나를 찾아 온다. 학창 시절의 그 어둠은 대개 학업이나 가족 관계로 빚어진 것들이었는데, 작년부터 부쩍 이성 관계로 생겨난 그림자가 많아졌다. 성장-했다는 것일까. 연애를 두고 성장이라고 하기엔 변수가 많고, 학업의 틀을 벗어난 것 쯤이 되겠다. 어쨌든 힘든 일 있을 때마다 찾아오는 그들이, 나는 좋다.
고민을 털어논 이들은 보통 을의 위치에 있다. 갑의 위치에 있으면서 상담을 받고 싶어 했던 이는 - 한 명 밖에 못 봤다. 그것도 상대방과 잘 되고 싶어서가 아닌, 거절을 하면서 나쁜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는 방법을 물색하려는.
오늘도 친구를 만나 그의 고민을 들었다. 그 역시 을의 위치에 있는 자였고, 그는 이미 지쳐 있는 상태였기에 그의 눈에는 슬픔과 분노, 허무함이 자리 잡은 상태였다.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그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음을 확신시켜주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를 현실 세계로 이끌어 준다면, 그것은 상담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그에게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준 것이 된다.
그의 슬픔에 찬 눈동자에 슬픔으로 마주하고, 그의 가쁜 숨결에 위로를 건네고, 그의 분노에 찬 언행에 동조를 했다면, 그의 얼굴을 현실과 마주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내가 지금까지 누군가를 위로하면서 지키는 철칙.
그러나 그들이 언제나 안타까운 처지에 있는 것은, 또 아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들이 미워하는 '갑'의 입장도 이해가 되어 버리는, 그런 곤란한 상황이 나와 버릴 때가 종종 있다. 이럴 때 주의하는 것은, 최대한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것. "그런데 그건 걔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객관성은 이야기가 끝날 때 쯤 보여도 늦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상황에서 내가 상대방에게 최대한 공감을 해 주고 있다는 것.
이미 상처 받은 을은 달리 나를 찾아 오는 게 아니다. 그저 위로가 필요해서, 이야기를 털어 놓을 사람이 필요해서. 그래서 누군가를 찾아 나서는 것이고, 그 누군가가 내가 된 것. 그래서 나는 그에게 최대한의 공감 능력을 보이며 마지막에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어 그의 슬픔과 마주하는 것.
공감이 끝나고 조언을 해 주고 날 때면, 늘 아프다. 그가 후에 더 큰 상처를 받는 것이 걱정이 되어 미리 작은 상처를 내 주면, 그는 머리의 인정을 한다. 마음으로 이해하지는 못 한다. 하지만 그도 안다, 그게 맞다는 것을.
오늘 내가 그에게 낸 작은 상처가 후에 더 큰 성장으로 다가오길 바란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 더치페이를 했다는 점. 힘든 일로 찾아오는 이에게는 항상 뭐든 사줬었는데, 그의 밥 값을 내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밥은 다음 약속 때 사줘야지.
그 약속이 얼른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