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5일 서울 대형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하던 간호사 박모(27)씨가 송파구에 있는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졌습니다. 숨진 간호사의 남자친구는 "'태움'이라는 것이 여자친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요소 중 하나"라고 주장했습니다. '태움'은 선배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를 괴롭히며 가르치는 것을 말하는 은어로,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입니다.
19일 민중의소리 양아라 기자가 병원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기사 전문을 올립니다.
장시간 노동·인력 부족 열악한 노동환경...간호사들의 몸과 마음을 태웠다
간호사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었다. 다만, 신입 간호사가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경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취재 과정에서 연락이 닿은 간호사들은 "병원에서는 '태움'이 존재한다"며 "태움은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간호사들은 선배의 괴롭힘뿐만 아니라 열악한 업무환경도 간호사들의 영혼까지 태우는 '태움'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A씨는 19일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전국에서 병상 수가 가장 많고, 지방을 돌고 돌아 마지막으로 치료를 받기 위해 오는 중환자들이 많다"며 "8시간 이상 근무는 일상이다. 모두가 장시간 쉴새 없이 일하면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사나 약 용량만 잘못 놔도 환자에게 큰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사수도 신입 간호사도 긴장을 놓을 수 없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덧붙였다.
해당 병원은 지난해 기준으로 2,704개의 병상을 보유하고 있다. 외래환자는 일 평균 1만명이 넘어가며, 응급환자를 포함한 환자수는 연간 약 100만명에 달한다. 해당병원은 우리나라에서 다른 병원에 비해 간호인력(약 3천명)이 많다고 알려져있는 것과 달리 해당 병원 간호사들은 인력 부족을 호소했다.
해당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 B씨는 "숨진 간호사가 일했던 부서는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이 많은 부서인데, 간호사 1명이 환자 3명을 넘게 보고 있다. 의료선진국의 경우 중증환자는 1대1"이라며 "병원은 예산문제를 이유로 들겠지만,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인력이 충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2013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간호사 배치수준은 인구 천 명당 활동간호사 2.7명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간호사 숫자에 관리자들까지 포함시켜 실질적으로 간호하는 인력은 더 부족한 현실이다.
응급의료센터에서 간호사가 환자를 응급처치하고 있는 모습.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뉴시스
'나도 그랬어, 버티면서 일해라?' 연간 2만여명의 신입 간호사의 눈물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 C씨는 "환자나 동료들에게 미안해서 화장실 갈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뛰어다닌다. 간호업무 외에도 행사 등 병원 일을 도맡으며 잔업에 시달린다"며 "일이 너무 힘들어서 신입 때는 결핵에 걸렸으면 싶었던 적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C씨는 "태움을 당하던 선배들이 자신도 쉴 시간 없이 버티고 일했으니까, 후배한테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간호사 D씨는 "신입 오리엔테이션 기간도 너무 짧고, 인력이 부족하니까 교육 후에는 온전히 팀을 맡아서 일하니까 혼자서 감당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내가 실수하면 환자를 죽일 수도 있겠다는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며 일한다"고 토로했다.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E씨는 신입 간호사의 죽음에 대해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국내 병원 전반에 걸친 열악한 근무환경, 인력부족 등에 기인한 문제"라며 "해당 병원이 간호사 자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우리나라 간호사의 평균 근속연수가 5.4년에 불과하고 신규간호사의 이직률이 33.9%에 이른다. 연간 간호 현장에는 2만여명의 신입 간호사들이 투입된다.
보건의료노조는 19일 성명을 통해 "신입 간호사의 죽음은 한국의 간호 현실이 폭발 직전 상황임을 드러내 주는 상징적인 징표"라며 "다시는 박모 신입 간호사와 같은 슬프고 아픈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노동조건 개선과 업무시스템 개선, 조직문화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취재 및 기사 : 양아라 기자
-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 리스팀과 보팅으로 이 글을 응원해주세요
- 민중의소리 스팀잇 공식 계정 (
@vop-news)을 팔로우 해주세요
- 여러분의 응원은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기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