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가족들- 반올림 활동가들, 농성 마침 문화제 개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1023일 농성에 마침표를 찍는 날, 삼성직업병 피해자 고(故) 황유미씨 아버지인 황상기씨,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 반올림 상임활동가들은 시민들 앞에서 감사의 큰절을 올렸다.
25일 저녁 강남역 8번 출구 인근 삼성 서초 사옥 앞에서 '1023일 농성을 기억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농성 마침 문화제'가 열렸다. 40여개 시민단체와 300여명(주최 측 추산)의 시민들이 농성장 주변을 가득 메웠다.
문화제의 사회자를 맡은 다산인권센터 소속 랄라씨는 "반올림의 싸움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앞으로 나올 2차 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이 나온 이후 또 다른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며 "다만 농성은 그때까지 잠깐 쉼표를 찍었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자의 감사 인사로 시작한 문화제에서는 농성장을 지킨 반올림 지킴이들과 제보자, 농성을 응원한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에게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다. 시민들은 문화제의 제목인 "당신의 연대가 참 감사했어유(you), 꼭 승리할게유(you)"를 함께 외쳤다.
고(故)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 "하늘에 있는 유미에게..."
"마침내 농성장을 접었다..." 연대한 시민들에게 보낸 반올림의 감사 인사
문화제 시작 전, 황상기 씨에게 하늘에 있는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는 "반드시 유미가 병에 걸린 이유를 찾는다고 유미하고 약속한 적이 있습니다. 삼성과 대화해서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게 되어서 유미한테 약속했던 것을 충분히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유미를 그렇게 병에 걸리게 놔뒀다는 것은 상당히 미안합니다."
그는 23살 딸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채 11년간 싸워왔다. 그동안 기자회견장과 농성장에서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우리 유미는요..."라고 딸의 이야기를 전해주던 그였지만 답을 하는 순간엔 눈시울이 촉촉했다.
삼성 직업병으로 뇌종양을 앓고 있는 한혜경씨와 그녀의 어머니 김시녀씨도 품에 꽃다발을 안고 문화제에 참석했다.
한혜경씨는 한 글자 한 글자 진심을 담아 편지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혜경. 맞아요. 저희가 승리한 것 같아요. 기뻐요. 그런데요. 솔직히 좀 아쉬워요. 사람들도 못 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농성 활동하는데, 연대 활동을 잘 해주셨어요. 모든 게 그런 거 같아요. 너무 어렵게 두렵게 생각하는 것보다 그냥 쉽게 얼굴 비치고, 커피 믹스라도 한 개 주머니 넣어가서 같이 먹고, 열심히 하라고 해주면 나도 좋고 상대방도 좋아지고요. 그냥 그렇게, 평범한 게 잘못된 건가요. 아닌 거 같아요. 그냥 그렇게, 그게 좋아서 살아서 여기까지 왔어요. 고맙습니다"
뒤에서 눈물을 흘리며 지켜보던 김시녀씨는 "마침내 농성장을 접었습니다"며 "여러분들의 관심 덕분입니다. 너무 고맙고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황상기씨는 문화제를 위해 준비했던 편지를 낭독하며 그동안 도움을 준 시민, 연대 단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에 화답하듯 시민들은 반올림 마침 문화제 참가자 일동의 이름으로 '반올림과 함께하는 우리들의 다짐'을 읊었다.
11년 싸움의 의미, "계속 문을 두드리면, 언젠가 문은 열린다"
"삼성의 진심 어린 사과, 배제 없는 피해자 보상, 재발 방지 대책 나오길"
반올림 농성장에는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뿐만 아니라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농성장을 지켜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있었다. 이날 문화제에서는 이들의 소감도 빠질 수 없었다. 반올림 상임활동가들과 농성 상황실 멤버들은 시민들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교섭단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공유정옥씨는 수많은 시민들이 삼성전자를 포위하는 시위를 하고, 삼성이 대화에 나올 수 있게끔 문을 두드려 준 것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2015년 1차 조정위원회 과정에서의 실패와 삼성의 일방적인 보상을 언급하며 "그해 10월 7일 삼성전자가 조정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 의자를 몇 개 놓고 농성을 시작했다"라며, 처음 농성장을 차릴 당시를 떠올렸다. .
그는 지난 투쟁을 되짚어보며 "황상기 씨, 김시녀 씨, 황유미 씨에게 이번에도 안 될 것 같다는 말을 전할 때마다 하늘이 무너졌다"며 "그렇게 1000일이 갔다"고 울먹였다. 최근 2차 조정위의 합의에 대해서는 "한 기업을 망신 주기 위해서 아니라 노동자들이 긍지를 가지고 주체적인 운동을 할 수 있게, 문을 두드리면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사회변혁노동자당 소속 임용현씨는 "삼성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임의적, 자의적 해결을 하려고 했다. 내부적으로 은폐하기 위한 수순을 밟아 사회적 대화가 막히고 농성이 지속됐다. 여기 계신 분들의 연대를 통해 힘겹게 사회적 대화가 열렸다. 승리로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다"며 "적어도 9월말 10월초에는 피해자 배제 없이 보상하고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는, 어긋나지 않는 중재안이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반올림을 만나 인턴일 때부터 활동해온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속 정재현씨는 발언을 시작하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그는 농성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반올림 피해자 118명 중 마지막 사망자인 이혜경씨의 죽음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혜경씨는 아이 셋을 키우면서 살이 썩어가는 병으로 아이를 안는 것도 힘들었다고 했다"고 회상하며, "화장실도 갈 수 없을 정도로 아픈 몸을 이끌고 농성장을 지켜준 이혜경님 감사하고 존경한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노동계와 종교계의 축하인사
"거대한 구조적 악을 물리친 연대"
"반올림 투쟁은 노동자 생명과 안전의 획기적인 전환점"
노동계와 종교계에서도 안전보건운동에서의 반올림 합의의 의미를 짚고, 반올림 활동에 대한 따뜻한 격려를 전했다.
이상진 민주노총 보건안전위원장은 "반올림의 투쟁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산재신청 보상을 둘러싸고 기업과 전문가, 언론이 어떤 유착과 공조를 통해서 인권을 유린하는가를 여과 없이 보여줬다"면서 "화학물질에 의학적인 독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 피해자에게 입증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반증하지 못하면 산재로 인정돼야 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됐다"고 투쟁의 의의를 설명했다. 이어 "국가의 핵심기술, 기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국가가 막고 있는 삼성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 거부의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라며, "어떤 것도 생명과 안전에 우선시 될 수 없다는 중요한 싸움을 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정수용 신부도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정세용 신부는 "(삼성이라는) 거대하고 구조적인 악을 부수기 위해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연대"라며, "반올림 투쟁은 연대의 결과다. 개인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없었던 구조적인 폭력과 잘못을 연대의 힘으로 이겨낸 거룩한 일"이라고 말했다.
문화제에는 노래와 춤 공연도 곁들여져 축제의 분위기를 냈다. 길가는밴드는 "지금 이 자리에는 없는 별이 된 이들도, 보고 계시겠죠?"라며 떠나간 이들을 생각하게 했다. 그는 힘차게 기타를 치며 '다시 빛날 우리'라는 노래로 청중들의 마음을 어루만졌고, "우리는 마침내 서로의 용기가 되어"라는 제목을 크게 외치며 격려의 뜻을 전했다. 앵콜 요청이 오자 그는 같은 곡을 개사해 다시 불렀다. 이 때 황상기 씨, 김시녀 씨, 한혜경 씨는 서로의 손을 맞잡아 높이 올리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반올림 지킴이로 활동했던 보건의료학생 모임인 '매듭'은 "끝이지만 새로운 시작이 될 역설적인 오늘을 맞이했다"며 "반도체 문제 해결 과정이 매듭지어지는 그 날까지 함께 하겠다"며 '우리 하나 되어' 등 두 곡에 맞춰 몸짓 공연을 펼쳤다.
매듭에서 활동하는 유모(23,여)씨는 "매년 여름마다 언제 농성이 끝날까 막막했는데 성공적으로 농성을 마무리 할 수 있어서 감격스럽다"며 "농성을 했던 일이 마냥 의미 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 순간이 즐겁다"고 말했다.
이날 마지막 순서로 삼성 직업병 피해자 가족들은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과 악수하며 최고의 연대상을 직접 수여했다. 연대의 힘으로 헤쳐 온 1023일을 되새기게 하는 따뜻한 마무리였다.
- 글 : 양아라 기자
-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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