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동안 어떤 상처로 인해 나를 숨기고 지내다 결국엔 깨달음을 얻고 원래의 '나'로 돌아오기로 한 사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예전의 나는 늘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해주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겼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크게 봐주고 칭찬도 아낌없이 해주었다.
'사람'을 좋아했고 나와 마주치는 모든 사람과 잘 지내려고 했으며 소외된 사람이 있으면 꼭 챙겼다.
한 마디로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와보니,
이런 나의 행동을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칭찬을 해주는 이유는 그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서가 아닌, 그 사람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좋은 부분을 발견시켜주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받길 원하는 것을 먼저 남에게 해줘라.' 라는 말은 누구나 많이 들어본 말일 것이다.
그런 진심어린 칭찬을 나도 목 말라 했었고, 그래서 남들에게 먼저 해주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의외로 타인에 대한
칭찬에 인색했다.
그 후, 나는 사람들에게 칭찬하는 것을 멈추었다.
내가 상대방에게 칭찬을 하면 그게 상처로 돌아올까봐 겁도 났었다.
그럴 바에야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낫겠다 싶어 누군가의 좋은 점이 발견되어도 입을 꾹 다물고 칭찬을 아꼈다.
그리고 다른 일도 있었다.
그때부터 난 '사람'에 대해 경계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세상을 밝게 바라보던 내가,
세상은 두렵고 알 수 없는 곳이고, 이기적이며 나쁜 사람들이 많은 곳이구나. 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때부터인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 같다.
사람들에게 늘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주던 내가,
굳은 표정으로 경계를 했고, 나와 친해지기 전까지는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웃음도 잃어갔다.
그러던 중 '운을 읽는 변호사'라는 책을 쓴 니시나카 쓰토무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니시나카 쓰토무는 70대 나이의 변호사인데 50년간 1만 명의 의뢰인의 삶을 분석하여 행운과 불운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도덕성이 '운의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데, 적극적으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는 등의 도덕성이 나의 운을 좋게 해주고 반대로 대성하던 사람도 도덕성이 결여되면 반드시 안 좋은 쪽으로 운이 흘러간다고 한다.
니시나카 쓰토무의 인터뷰를 본 후 나는 원래의 '나'로 돌아오기로 결심했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나를 숨기기 시작하면서 세상은 역시 혼자구나 싶었고, 예전에 착하기만 했던 내 모습이 참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꼭 은인이 나타나 나를 도와주셨고 행복하고 기분 좋은 경험도 많이 했고, 또 좋은 사람들이 늘 곁에 있었다.
아마도 이건 내가 그동안의 삶에서 덕을 많이 쌓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선행을 누가 알아주지는 않지만 하늘은 알아준다고 생각하니 왠지 힘이 나더라.
그래서 마음을 열고 다시 예전처럼 환하게 웃으며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정말 신기한 게 내가 그렇게 행동한 순간 마음이 한결 편해지고 일이 더 잘 풀리더라.
사람들을 경계하고 나를 보여주지 않았을 때에는 스스로도 마음이 너무 불편했었는데 역시나 나는 사람들과 잘 지내며 선행을 하는 것이 더 마음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이런 것을 깨닫게 된 데에는 '스팀잇'의 도움도 컸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따뜻한 분들을 많이 만나며 더불어 사는 세상이 참 아름답고,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아갈만하다고 느꼈으니까 :)
그리고 스팀잇의 문화가 니시나카 쓰토무가 말하고 있는 '운의 이치'와 닮아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상대방에게 전해지고, 또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이렇게 내가 전했던 '작은 배려'가 더 커다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