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1월25일에는 어떤일이 일어났을까?
1973년으로 돌아가보자.
1973년 1월 25일 목포항에 있던 한성호는 진도로 갈 예정이였다. 조도의 주민들인 관매초등학교 학생들과 조도면의 주민들이 탑승했다. 허나 당시 날씨가 매우 안좋아 폭풍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였고, 아직 해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9시경에 승객 135명과 화물 6톤을 싣고 목포항에서 출항했다.
중간 기항지에서 26명을 내려주고 나서 조도로 향하던 한성호는 오후 2시30분경에 거센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침몰하고 말았다. 육지와는 20~30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서 사고가 발생했으며, 사고 당시 탑승객은 109명이였다. 이 중 19명이 사망하고, 42명이 실종됐으며 48명이 구조되었다.
당시에는 미디어가 신문, 뉴스에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고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문제점이 잘 부각되지 않았다. 그 당시 한성호의 문제는
승객과 화물을 초과해서 실었다. 게다가 승객수도 처음에는 66명으로 허위기재 됐었다.
사고 당일 운행했던 사람은 원래 선장이 아닌 자격증이 없는 갑판원이였다.
선장 대신 운행했던 자는 승객들이 배에 있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선실 밖에서 문을 잠갔다고 한다.
한성호 침몰 사고는 19명의 사망자와 42명의 실종자를 낳은 큰 사고였다. 폭풍주의보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운행을 감행했으며 승객과 화물도 초과해서 실었었다. 당시 관계자들의 안전불감증이 만들어낸 최악의 사고였으며, 41년 뒤 4월 16일에 사고 지점과 18km 가량 떨어져 있는 진도 인근 해상에서 여러모로 비슷한 사고가 한번 더 일어났다. 바로 세월호 참사였다.
역사는 반복된다. 과거 겪었던 사고나 패배에서 문제를 보완하지 못한다면, 더 끔찍한 사고로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 수 있다. 한성호 당시에도 정부의 대처가 소극적이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행적이 불명확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밖에도 여러가지 음모론이 있었는데, 세월호 참사와 정말 비슷하게 보이는 점이 많아서 너무나도 안타깝다.
한성호와 세월호 참사의 모든 사상자와 유족들에게 애도를 표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