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1월 24일에는 무슨일이 일어났을까?
200여년을 거슬러가 1848년으로 돌아가보자.
1848년 1월 48일, 스위스 출신의 상인 존 서터가 고용한 현장 책임자 제임스 마샬은 공사를 하던 중에 아메리칸 강가에서 사금을 발견했다.
(최초로 금을 발견한 James Marshall)
마샬은 서터에게 이를 가져가 금임을 확인했다. 당시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샌프란시스코 땅을 헐값에 사들였던 서터의 꿈은 자기 땅에서 대규모 낙농업을 건설하는 것이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금이 발견됐다는 사실을 비밀로 했다. 허나 소문은 생각보다 빠르게 퍼졌고, 금앞에서 욕심을 막을 수 없었던 서터는 본인 사업을 중단하고 금 채취를 준비한다.
(신문사들이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된것을 보도했고, 골드러쉬에 기름을 부었다)
금 발견 소식을 듣고 전 세계적에서 캘리포니아로 이민자들이 몰렸다. 이렇게 골드러쉬가 시작되었고, 초창기 골드러쉬에 쇄도한 1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49년에 몰렸다고 하여 포티나이너스(Forty-Niners)라는 고유명사까지 생길 정도였으니, 골드러쉬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당시 미국 서부쪽은 무법천지였다는 것이다. 당시에 샌프란시스코는 작은 시골마을에 불과했기 때문에 법 따위는 무시하고 사유지든 뭐든 허가없이 금을 캐가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서터가 걱정했던대로 서터의 땅들은 모두 엉망진창이 됐다.
참다못한 서터는 법원에서 재산권 보호 승소 판결까지 받아냈으며 무법자들을 몰아내려 했으나 되려 무법자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서터는 이로인해 세 아들도 잃고 재산도 모두 잃은채 20년동안 땅을 되찾으려는 노력만 하다가 사망하고 말았다.
(처음 금을 발견한 땅의 주인이였으나 안타깝게 모든걸 잃어버렸던 Johann Sutter)
금을 캐서 엄청난 부를 이루고자 한 사람들이 몰렸지만, 실제로 꿈을 이룬 사람들은 극히 일부였다. 채굴 기술이 점점 발전함에 따라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개인 채굴자보다 회사의 대규모 채굴 작업이 금광을 거의 지배했다. 실제로 부를 얻은 사람들은 개인 채굴자들이 아닌 채굴에 필요한 도구들을 팔았던 상인들이 훨씬 많다고 한다.
골드러쉬를 기점으로 당시 미 서부 캘리포니아의 로스 엔젤레스, 샌디에고, 샌 프란시스코 등의 도시들이 발전하기 시작했고, 캘리포니아는 사람이 살기 좋은 주로 개발되었다. 골드러쉬가 오늘날의 캘리포니아를 있게 해준 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 캘리포니아 주의 gdp는 프랑스를 추월하는 수준이며, 세계6위의 규모이다.
한편 골드러쉬의 이면에는 욕심앞에서 더럽고 추악해진 인간의 모습도 존재했다. 사금을 채취하다가 약탈당해 죽은 사람도 많다. 개인간의 약탈뿐만 아니라 조직간에도 전투가 벌어지는 등 법과 윤리 따위는 무시한 끔찍한 상황들이 연출됐다. 또한 인디언들은 채굴자들로부터 공격받아 학살당하고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땅에서 내쫓겼다.
서터는 인디언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서터와 인디언들은 마을에서 공존하며 서로 도와주는 관계였는데, 이렇게 보면 골드러쉬로 인해 잃은것이 더 많은 서터가 참 안타깝다.
1848년 1월24일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에 대한 uchaanp의 포스팅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