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1월 21일에는 어떤일이 일어났었을까?
1968년으로 돌아가보자.
1968년 1월 13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장 김정태로부터 124부대 소속 31명이 청와대 습격을 지시받는다. 31명의 공작원들은 대한민국 국군 복장과 기관단총으로 무장하여 , 휴전선을 넘고 임진강을 건너 수도권까지 잠입했다.
허나 1월 21일에 이들은 청와대를 100m 가량 남겨두고 자하문 초소에서 당시 비상근무중이던 경찰의 불시검문을 받는다. 대량 병력 이동을 보고받은 바가 없는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총경이 그들을 막아섰는데, 그때 올라오던 시내버스 2대를 보고 지원병력으로 오인한 무장 공비들은 버스에 수류탄을 던지고 경찰에 총기를 난사한 뒤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자하문 초소 전투는 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많은 경찰들이 부상을 입었고 최규식 총경은 현장에서 전사했으며 정종수 경장은 중상을 입고 치료 도중 사망했다. 게다가 버스에 있던 민간인 3명이 사망했다.
이에 군경은 즉시 비상경계 태세를 선포하고 대대적인 추적 작전을 감행한다. 결국 31명 중 김신조를 제외한 나머지 무장 공비들은 자폭하거나 현장 사살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군경 30명이 전사하고, 민간인 8명이 희생되었다.
이 중대한 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큰 충격을 받고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 안보 우선주의'를 선언했다. 이를 계기로 예비군이 창설되고, 을지훈련이 만들어졌으며, 주민등록제도를 실시하여 신분조회가 확실해지도록 하였다. 이 밖에도 전투경찰순경이 창설되는 등 국가 안보를 위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6.25 전쟁 휴전선언이 이루어진지 15년이 지난 시점에서 갑작스러운 북한 무장 공비들의 청와대 침투는 한국사회 전체를 변화시키고 북한에 대한 경계심을 일깨워준 중대한 사건이었다.
1.21 사태로 인해 전사하신 군경분들과 희생하신 민간인 분들께 애도를 표합니다.
uchaanp의 포스팅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