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한국 스팀 커뮤니티를 표현하자면 이랬다
고래님과 붕어님과 피래미들..
그나마 체르노빌 지역 같은 폐허가 되지 않은 것은
훈장님 @clayop 님이 중심이 되주셨기 때문이었다
글을 쓰면 추천은 들어오지만
다들 파워가 없어서 보상은 절망적이었다
그렇게 비실비실 0.00 단위로
보상이 올라가다가 클옵님의 눈에 띄면
뭐지 저 가련한 글은?
100% 보팅이다아아아아아아!!!
그날은 소숫점은 당연히 넘고
심지어 10달러도 바라볼 수 있는 날이었다
물론 당시도 네임드분들은
피래미, 멸치, 송사리분들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스팀가격이 똥값인데다 다들 당연히 지금에
비해선 파워가 약한 상태였고
결정적으로 수가 너무 딸렸다
지금봐도 12보팅에 7달러라는 건 엄청나지만
이땐 클옵님이 분신술(스팀임대)전이라
한방이 무진장 쌨다
저 7딸라를 만든 12인의 의인들(^^;)의 보팅파워다
지금보면 완전 네임드분들이 보팅 폭격을 쏟아주셨다
여하튼 그래도 본인은 그럭저럭 줏어먹었지만
자꾸 외국쪽과 비교가 되었고
파워를 가진 사람이 적다는게 너무나 서러운 상황이었다
논밭은 파워가 없어서 경작을 못하고
식량이 부족해지자 어린 동생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그러던 중..
먹을 걸 구하러 시내(영어뿐인 메인화면)로
나가셨던 클옵님이 뭔가를 끌고 오셨다
바로 큐레이터의 시초
큐리프로젝트였다
사전상으론 방사능측정단위라는데.. 그럴린 없고
뭔가의 약자일것 같지만 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바깥에도 소외 받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소외받기 때문에 상황이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거기에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작가 지원 프로젝트가 큐리이다
임대가 없었던 그때의 방식은
뜻 있는 고래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으면
각 커뮤니티에서 선별된 대표자가 글을 가져온다
그럼 그 고래들이 일제히 보팅해주는 것이다
이때 무상으로 참여가되는건 아니고
해당 커뮤의 고래가 참여해서 힘을 빌려주는 만큼
하루에 몇개의 글을 큐리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클옵님이 보팅파워를 빌려주는 대가로 KR에서는
대략 5개정도의 글이 하루에 큐리를 받을 수 있게되었다
그리고 그 큐리에다가 엄선된 글을 제출할 사람을
구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최초의 한국 큐레이터이고
@yoonjang0707 님과
@morning 님이
처음으로 큐레이터를 맡게되시었다
비록 한정된 글만 가능해서
3일내에 보상을 받았으면 재선정이 안되고
몇불이상이면 안되고 뭐 이것저것 상당한 조건이
있었지만
암울했던 코랴시티에 이것은 엄청난 빛을 발휘하여
절대마벽이던 100달러의 글이
드디어 순수한글로 나올 수 있었던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이후 한국 커뮤니티는 많은 발전을 하게되었다고 한다
-- 끝 --
은 아니고 현재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