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25분
보지도 않는 드라마를 주구장창 틀어놓고
애인과 통화를 한다.
참 다정하고 자상한 애인이다.
하루종일 있었던 억울한 일들을 들어주고는
다음날 이른 아침 도시락을 싸다주겠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짙은 코발트 빛이 가득한 방안에
노트북에서 쏟아져나오는 불빛이
유일한 조명이 되었다.
노트북을 덮지도 않고
드라마를 끄지도 않고
그냥 대충 옆으로 누워서
얕은 한숨을 내뱉다가 잠들었다.
꿈에 오늘 보았던
황홀한 핑크빛, 주황빛으로 물든 구름과
아직 물들지 않은 높은 하늘이
절묘하게 펼쳐져
내 발걸음을 붙잡았었다.
결재를 기다리는 이들이
하나둘 줄을 서고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갔다.
먼지 냄새가 가득한 사무실에 작은 창 너머로
방금 보았던 황홀한 하늘이 또 나를 불렀다.
꿈에서 나는 그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도로옆 흙 바닥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얄팍한 비닐봉지를 열고
뭔가 꺼내어 정답게 먹으며 큰 소리로 웃어댔다.
흙바닥에 앉던
지나가는 차가 매연을 뿜어대며 먼지를 날리던
그들은 신경쓰지 않았다.
돌아가는 배를 놓쳐버린
여행객은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서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하늘을 날아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