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트라인 - 라구람 라잔]
[지진 조심하세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의 위기" 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위기에 취약하고, 위기를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능하고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가는 사람들은 "경제학의 위기"를 넘어서 "자본주의의 위기" 라는 주장으로 까지 번진다. 이제 자본주의는 효력을 다 했으니, 다른 체제로 이행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다. 물론 뭐 일견 타당한 분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분명 사실은 아니다. 일단 경제학의 위기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경제학계는 일률적으로 같은 목소리를 내는 집단이 아니다. 이 책의 저자인 라구람 라잔부터가 그린스펀이 주관하는 마지막 잭슨 홀 회의에서 '증권화'와 '잘못된 인센티브 구조'가 경제에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고, 로버트 실러 등 수많은 학계 인사들도 버블에 대해서 경고한 바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위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한 마디만 하고 싶다. "그래서 대안이 뭔데?" 라는 것이다. 최고는 아닐지 몰라도 최선은 맞다. 그럼 우리가 가진 것을 고쳐서 잘 돌아가게 만들 생각을 해야지 아예 버리자고 주장하는건 멍청한 소리다. 그럼 어떻게 어디를 고쳐야 할까? 그건 지금부터 <폴트 라인>이라는 책을 통해 라구람 라잔이라는 학자가 우리에게 알려줄 것이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잠재적인 위험요인이 될 수 있는 구조적인 특성에 대하여 논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런 구조적 특성을 "폴트 라인"이라고 부른다. 지질학에서 쓰이는 용어인데, 판과 판의 접촉면을 지칭하는 말이다. 지진은 서로 다른 판이 서로 접촉하거나 부딪히면서 판의 끝이 부러지거나 꺽일 때 발생하는 엄청난 압력에 의해서 발생한다. 따라서 폴트라인이란, 잠재적으로 지진이 발생할 위험이 있는 지역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걸 경제에 적용시켜보면, 잠재적으로 위기가 발생할 위험이 있는 특성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경제의 폴트라인은 크게 정치적 요소에 따른 폴트라인, 수출중심 경제구조의 수출국에 따른 폴트라인, 그리고 시스템 간의 충돌에 따른 폴트라인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 폴트라인들이 서로 더 큰 파급력을 갖도록 만드는 금융시스템의 폴트라인이 부가적으로 추가된다. 저자는 이런 폴트라인들에 대해서 소개하고, 궁극적으로 이 폴트라인들을 서로 연계시켜 더 큰 파급력을 갖도록 하는 금융 부문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책을 서술한다.
우선 정치적 폴트라인부터 알아보자.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시발점은 다들 알다시피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붕괴였다. 그런데 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무분별하게 시행된 이면에는 정치적 요인이 자리잡고 있었다. 세계화와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는 보다 진보했다.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모든' 인류의 복지가 증진되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정보통신기술을 발전은 이른바 '대학 프리미엄'을 한층 높였다. 대학 프리미엄이란, 고졸자와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의 경제적 차이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대학 프리미엄이 높아졌다는건 이 고졸 이하 학력자와 대졸 이상 학력자 간의 소득 격차가 심화되었다는 의미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단순하다. 정보통신기술은 - AI 나오면서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사무직은 다 치킨집 행일 수도 있겠지만 - 주로 고졸 이하 노동자들이 했던 일을 대체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고졸 이하 노동자들이 했던 일은 보통 단순 반복적인 성격을 갖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정보통신기술을 적용하기가 굉장히 수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고졸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보다 낮은 임금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반면에 대졸 이상 학력자들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을 통해 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발휘한다. 또한 여기에 규제 완화로 임금 상승률을 제한하는 요인마저 사라지자 그야말로 큰 임금 상승률을 누린다. 그 결과 가계 간의 소득격차가 벌어지면서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되기 시작한다.
그럼 당연히 고졸 이하 학력의 노동자들은 불만이 쌓여간다. 그리고 이런 불만은 정치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표에 민감한 정치인들은 이런 사회적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 - 사실 무시해도 안된다. - 따라서 대책을 모색하게 된다. 일단 가장 원론적이고 분명한 방법은 교육의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다. 교육 제도를 손 보고, 조세제도 개혁을 통해 소득 격차를 완화하는 방식이 아마 가장 원론적인 정공법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 방법은 상당히 많은 이해관계자와 관련된 이슈를 처리해야 한다. 특히 조세제도 개혁은 민주당/공화당 양당으로 구성된 미국의 정치제도 상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대안을 탐색한다. 결국 해결하고 싶은 것은 저소득층, 저학력계층의 사회 불만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불만은 일자리를 잃으면서 생계가 위협 받고, 소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 근거한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이런 결론을 내린다. "일자리와 무관하게 같은 소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면 된다." 는 결론이다. 그리고 그 방법이 바로 "신용 제공을 통한 주택 제공" 이다. 신용 수준이 낮은 사람들에게 정부가 나서서 신용을 제공하고, 그들이 집을 사게 되면 집값이 올라서 그들의 부를 증진시킬 것이고, 그러면 노동 소득이 늘지 않아도 소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쉬운 방법은 대부분 문제를 동반한다. 이 경우에는 "집값이 올라서" 라는 전제가 항상 계속적으로 유지되어야만 저 논리가 유효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거품에는 한계가 있고, 언젠가는 붕괴되며, 우리는 그 붕괴를 목격했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하이먼 민스키의 부채의 질 개념을 도입해보면, 이 경우는 정부가 나서서 폰지 부채를 제공한 꼴이다. 정상적인 상황 하에서 채무자의 능력으로는 이자조차 제대로 감당할 수 없는 질 낮은 부채 말이다. 물론 당시 정치지도자는 이런 정치적 요인 외에도 선의도 있었겠지만,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선의는 항상 긍정적 결과를 보장하지 않고, 세상이 내마음 같지 않은 것이 이치다.
그리고 이어서 중요한 폴트라인은 수출 중심 경제 부국들의 상황이다. 세계의 부국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전통적 부국과 신흥 부국, 이때 전통적 부국은 장시간 꾸준하게 부를 축적해온 나라들이다. 이들은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를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혁신과 파괴 그리고 다시 혁신이라는 순환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켜 왔다. 따라서 탄탄한 내수시장을 갖추고 있고, 그만한 소비력을 스스로 갖추고 있다. 하지만 신흥 부국의 경우에는 경우가 다르다. 고전적인 신흥 부국인 독일, 일본을 비롯해서 그야말로 신흥국 중에 신흥 부국인 한국, 대만 등은 굉장히 단시간 만에 높은 성장률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했다. 굉장히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서 저자는 '조직자본'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빈곤한 국가와 부유한 국가의 차이를 통해 알아볼 수 있는 개념이다. 빈곤한 국가와 부유한 국가, 다시말해 경제가 성장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선 물적 자본의 유무가 중요할 수 있다. 물적 자본의 차이 때문이라면 부유한 국가에서 빈곤한 국가로 물적자본이 투자 된다면 빈곤한 국가는 충분한 성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같은 물적 자본을 투자했을 때 늘어날 수익을 생각하면 빈곤 국가는 수익률까지 탁월한 투자처이다. 돈이 철저하게 수익률을 따라서 흐르는 것을 상기해보자. 그럼 사실 빈곤한 국가랑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왜 빈곤한 국가가 존재하는 것일까? 이때 나오는 것이 바로 '조직 자본'이다. 예를 통해서 이해해보자.
코카콜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프랜차이즈 가치를 가진 기업 중 하나다. 그 회사의 물적 자본은 자본 총계를 기준으로 하면 26,637 밀리언달러(2016년 7월 기준, 약 27조 원), 자본의 시장가치인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하면 약 184 조 원 정도가 된다. 만약 당신에게 둘 중 큰 값이 184조원 만큼의 돈을 준가면 코카콜라의 프랜차이즈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단언컨데 불가능할 것이다. 왜? 우리는 탄산음료 시장에 대해서 아는 것도 부족하고, 생산관리, 조직관리를 비롯해서 유통, 재무 등 각 요소들에 대한 능력 또한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적 자본이 주어졌을 때 해당 물적 자본을 바탕으로 생산성 높은 가치를 창출해내는 능력이 바로 '조직 자본'이다.
전통적인 선진국들은 오랜기간에 걸쳐 작은 기업에서부터 시작해서 효율적인 기업이 살아남고 다시 그 효율적인 기업이 이런 저런 프로세스 등을 도입하는 등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 조직 자본을 쌓아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개발도상국들의 경우에는 이런 조직 자본 갖고 있지도 않고, 시장이 자생적으로 조직자본을 쌓을만큼 기다리기에는 너무 오래걸린다. 하지만 분명 경제 성장은 시켜야 한다.
결국 조직자본을 어떻게 쌓을 것이냐라는 문제를 직면하게 된다. 이때 후발 경제 개발국들은 2가지 선택권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국영기업체를 설립해서 전적으로 경제 활동을 이들에게 맡기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시장 경제를 조성하되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소수 대기업에만 특혜를 주는 방법으로 산업 경쟁력을 살리는 방법이다.
첫 번째 방법의 경우 대부분은 실패했다. 물론 전부 실패한 것은 아니다. 스탈린 시기 소련의 경제는 나름 탁월한 성장을 했으니 성공 사례도 있긴 하다. 그래서 마오쩌둥이나 자와할랄 네루 등은 스탈린의 소련의 국가 주도 성장을 롤 모델로 선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련의 공무원들이 성과를 낸 이면에는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돌아올 숙청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결국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도입하기가 좀 어려운 방식이다. 소련 이외에도 국영기업으로 성공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 경우는 소유권만 빼고 나머지 부문을 모두 사실상 민간기업처럼 운영된 경우이므로 첫 번째 방법으로 성공을 하기는 많이 어렵다.
두 번째 방법은 탁월한 성공 케이스가 존재한다. 한국이 바로 그 성공 사례이고, 한국 뿐만 아니라 대만, 인도네시아 등 과여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린 나라들이 바로 이 모델로 성공한 사례들이다. 이 모델의 방식은 이렇다. 정부가 내수소비재 생산을 제한하고, 수입에 많은 규제를 도입하여 국가의 저축률을 높인다. 그리고 이렇게 모인 자본을 일부 특혜 기업을 선정해서 지원한다. 이 뿐만 아니라 신규 업체의 시장 진출 억제,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함으로써 민간 기업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도록 돕고, 그렇게 창출한 수익을 산업발전에 재투자하도록 유도한다. 동시에 국가가 일부 부담을 지면서까지 민간 업체에 저가로 원료를 공급하고, 외국 기업들로부터 국내 업체를 보호할 목적으로 고관세를 부과한다. 이처럼 정부의 보호 아래 놓인 특혜 기업은 급속한 성장을 하면서 수익을 증대시키고, 그 수익을 바탕으로 기술, 부, 조직자본을 손에 넣는다. 물론 이렇게 정부에서 나서서 특혜를 준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나쁜 사례가 바로 필리핀이다. 정부의 특혜 기업 선정이 어떤 기업의 역량이 아니라 정치인의 친인척 관계에 의해서 결정되면서 처절한 실패를 한 케이스다.
어쨌든 이렇게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조직자본을 갖춘 대기업으로 성장하면 이제 정부는 방향을 전환한다. 비효율적인 국내 기업을 길들이고 동시에 상품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들 기업에게 수출을 장려하는 것이다. 이런 수출 장려는 철저하게 사다리의 바닥부터 시작한다. 낮은 기술력, 많은 노동이 필요한 섬유 산업 등이 초기 수출의 중심이 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런식으로 낮은 기술력의 상품부터 차근차근 하이테크 상품까지 발전해나가면 결국 그 나라는 경제성장에 성공하게 된다. 이 수출 전략으로 전환하는 것 또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브라질이나 인도처럼 실패한 사례도 분명 존재한다. 이 부분에서 그래도 우리나라가 꽤 성공한 사례라는 점은 기분이 좋았다.
아무튼 이렇게 성장한 신흥 부국은 본질적인 문제점을 하나 내재하고 있다. 바로 국내 내수 소비 시장의 부족이다. 결국 그 나라 경제가 유지되려면 수출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부를 창출해야만 한다. 이게 경제 규모가 작을 때는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전략을 채택한 국가의 부가 점점 더 증대되면서 확실한 문제가 된다. 보자, 물건을 거래는 최소 두 명의 행위자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팔려면 누군가가 사야하는 것이다. 이건 국가간 무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나라가 수출을 하려면 어떤 나라는 수입을 해야한다. 그런데 세계 경제에서 수출하는 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면 그만큼 더 수입해줄 나라가 필요해진다. 결국 이런 구조는 글로벌 경제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세계가 그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로 돕는 것은 고사하고, 자국의 경제 조차 위기에서 구할 수가 없다. 이게 바로 수출 중심 경제를 가진 국가들이 세계 경제의 폴트라인이 되는 이유다.
앞의 수출 중심 경제 국가의 문제점이 실제로 발현 된 경우가 바로 우리나라가 겪었던 외환위기 등을 포함한 동아시아 금융위기다. 우리나라와 함께 성장했던 대만,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 앞서서 수출 중심으로 성장한 국가가 있다. 독일과 일본이다. 독일과 일본은 당시에 이미 수출 중심 경제가 직면하는 한계점을 직면한 상황이었다. 경제가 돌아가려면 수출을 해야하는데, 수입해줄 나라가 생각보다 적은 것이다. 거기에 두 국가 모두 순수출 국가이기 때문에 자본까지 넘쳐흐르면서 이 자본을 흡수해줄 시장까지 필요했다. 이때 이 자본을 흡수해준 나라가 바로 동아시아 국가들이었다.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은 성장이 가속화 되면서 상당한 규모의 국내 투자가 필요해진 상태였다. 그 결과 엄청난 양의 원자재, 자본재, 기계 등을 수입하고 있었다. 지출과 생산 사이의 큰 차이를 동아시아 국가들은 외채를 통해서 매꿨다. 빌려주고 싶은 자와 빌리고 싶은 자가 존재하는데 돈이 흘러가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나. 그런데 일부 개도국은 이렇게 무역적자가 가속화 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무분별하게 돈을 빌려오고, 빌려온 돈을 무분별하게 지출했다. 실제로 당시 외국에서 차입한 자금 중 상당 부분은 불필요한 지출과 투자에 투입되었다. 이게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발생시킨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런데 문제는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극복하면서 동아시아 국가들 역시 외채의 위험을 인식하고, 안전을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수출 전략에 더 몰입한다. 결국 일본과 독일을 넘어 동아시아 국가들마저 돈을 빌려줄 자를 찾아나서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더이상 동아시아 국가들이 성장기에 그랬던 것처럼 많은 상품과 자본을 수요하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 문제가 미국의 문제와 다시 연계된다.
아, 미국의 사례를 다루면서 왜 미국 정치인들이 빠른 결과를 볼 수 있는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 소개하지 않았다. - 사실 책의 순서가 그래서 그렇다. - 그 원인은 미국 특유의 사회 구조 때문이다. 미국은 사회의 안정망이 튼튼한 국가는 아니다. 정부가 안전망을 보장하기 보다는 시장을 통해서 얼른 실업자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선호하는 국가다. 따라서 이런 문화적 사회적 토대로 인해 미국의 사회보장망은 다소 허술한 편이다. 사실 과거까지는 이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경제가 침체에 돌입하면, 깔끔하게 파산시킬 회사 파산시키고, 정부가 재정지출 등을 통해 재정 자극을 가하면 새로운 산업이 부흥하면서, 실업으로 인해 일자리가 급한 사람들이 조건을 별로 따지지 않고 바로 구직 활동에 나섬으로서 실업상태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 환경이 변하면서 더이상 생산성의 회복이 노동시장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게 되었고, 미국 국민이 실업을 한 후에 다시 재취업을 할 때까지의 기간이 길어지게 된다. 이때 사회보장망이 부실한 미국의 경우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실업자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엄청난 수준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분노한 국민들은 바로 정치인들에게 표로서 응징을 가하고, 이게 두려운 정부로서는 최대한 빠른 효과가 나올 정책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미국의 제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분명 이런 시장친화적인 미국의 방식이 그들의 혁신 역량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약점은 약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여러가지 관련된 이슈들이 있는데 책에서 친절하게 다뤄주고 있으니 꼭 읽어보길 바란다. 나도 굉장히 인상 깊게 읽은 부분 중에 하나다.
서로 다른 시스템 간의 접촉에 따른 폴트라인도 인상적인데, 분량 관계상 생략하고 바로 금융시스템에 대해서 다룬 부분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중요성이 떨어지거나 덜 흥미로워서가 아니라 금융시스템에 대한 부분은 금융개혁 부분과도 연계되어 뺄 수가 없고, 이미 나머지 두 개는 앞에서 써 버려서 그나마 뺄 수 있는 시스템 간의 접촉 부분을 제외하는 것이다. 저 부분도 제삼자간 거래 시스템과 관계 시스템의 충돌, 관리 자본주의의 금융 제도 낙후화 등 굉장히 재미있고 인상적인 이슈를 많이 다루고 있으니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폴트라인으로서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부분은 저자가 예로 든 프랑스 왕정의 죽을 때까지 정기적으로 고정액을 지급하는 연금과 관련된 사례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프랑스 왕정은 국채로서 채권자가 죽을 때까지 고정액을 지급하는 채권을 판매한다. 노령 연금 따위의 금융 상품이 없던 시절에 인기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프랑스 왕정이 겨냥한 대상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부유한 남성이었다. 연금의 구입 가격 측면에서 꽤 공정한 거래였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프랑스 왕정에서 다른사람의 이름으로 채권을 사는 것을 막지 않았던 것이다. 즉 부유한 남성이 자신의 딸의 이름으로 채권을 사서 그 딸이 평생 연금을 받도록 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장수 유전자를 가진 집안을 찾아서 그 집안의 유아기를 무사히 넘긴 여자애의 이름으로 - 항상 그렇지만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길다. - 연금 증서를 구입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식으로 한 제네바의 은행가 그룹이 있었다고 한다. 분산 투자를 위해서 30명 분의 연금을 공동출자 형식으로 구입한 다음 그 연금 수령권을 제네바의 시민들에게 팔아서 현금을 챙겼다고 한다. 그야말로 증권화 작업을 시행한 것이다. 이 증권화를 수행한 은행가 그룹도 유명인사들이었고, 대상도 프랑스 왕정의 국채였기 때문에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 정부의 상품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구매자들도 미처 생각치 못한 리스크가 있었으니, 정부도 부도를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서 프랑스 왕정은 무너졌었고, 혁명 정부는 연금 지불을 뒤로 미루었었다. 물론 얼마 후 연금 지불을 재개하긴 했다. 이 사례를 통해 저자는 우리가 네 가지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1. 돈 냄새를 맡는 데 은행가들보다 더 좋은 코를 가진 사람은 드물다. 2. 은행은 무지한 투자가나 돈을 버는 것과 관련해 은행과 다른 투자 동기를 지닌 사람들을 이용하는데 천재적 소질을 갖고 있다. 3. 은행의 행동은 비록 그 기간이 한시적일지라도 토네이도처럼 점점 규모와 영향력이 커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4. 참여자의 숫자가 많을 수록 안전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4 가지이다. 사실 이 4 가지가 바로 금융시스템의 폴트라인적 성격을 대변하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서 저자는 금융산업이 폴트라인이 되는 원인 2가지를 설명한다. 바로 금융산업의 특수성과 왜곡된 인센티브 구조이다. 애덤 스미스가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이유는 정육점 주인의 이타심이 아니라 이익추구 때문이라고 지적했지만, 사실 사람이 자신의 행위가 사회에 갖는 의미를 아예 무시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행위가 사회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서 무심해지기도 하는데, 자신이 한 일과 그 일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없는 경우에 그렇다. 예컨대, 환자를 고치는 의사는 매 진료마다 자신의 일이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거대 철강회사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자신이 한 일이 직접적으로 사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 즉 성과와 그 성과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아주 복합적인 관계를 갖는 경우에 경제 주체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금융산업은 이런 특성이 매우 두드러진다. 발전소의 PF을 담당하는 은행 관계자는 발전소의 건설 자금을 조달하는 업무를 하지만 실제 발전소가 발전을 하는 것을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금융산업의 성과는 철저하게 '회사에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주었는가'를 바탕으로 측정된다. 결국 금융산업 종사자의 인센티브는 성과에 따라 결정되는데 그 성과는 '회사에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주었는가'에 의해서 측정되는 것이다. 즉 돈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모기지 브로커 사례에서 아주 두드러진다. 모기지 브로커는 어떤 악독한 마음을 먹고 부실 대출을 양산한 것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한 것 뿐이다. 고객이 원하는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자신의 성과인 '돈'이 벌리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모기지 브로커가 아무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특수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자자의 서술이 인상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친 탐욕 때문에 위기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탐욕(좋게 말하면 자기 이익)은 모든 종류의 비관계간 거래를 이끄는 힘이다. 자기 이익 추구는 과거에도 항상 있어왔고, 그런 점에서 이번 위기가 오로지 금융 산업의 탐욕 때문에 생겼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민간 금융계는 자신들이 늘 해오던 방식, 즉 경쟁에서 이길 틈새를 찾으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라는 서술이다. 이 밖에도 은행이 꼬리 리스크 감수 - 펫 테일이면 망하는거죠 아주 - 를 시도하는 이유로 알파를 지적하는 부분이라던지 여러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꼭 읽어보길 바란다.
이렇게 세계 경제의 폴트라인들에 대해서 설명한 후 저자는 결국 금융개혁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끈다. 그런데 이 금융개혁이 필요하다는 전제에 동의한다고 해도 두 가지 접근 방법이 존재한다. 접근 방법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금융을 바라보는 인식에 차이에 기인한다.
금융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는 1. 금융 분야가 경제 성장과 국민의 복지를 달성하는 과정에 확실히 기여하고 있는가 2. 아니면 그저 곁다리로 묻어가면서 주기적으로 내부 파열을 일으키며 골칫거리 역활만 하는 존재인가 하는 인식의 차이이다.
만약 후자의 입장에서 금융 개혁을 수행한다면, 일이 엄청 쉽다. 금융 산업을 포괄적으로 금지시켜버리는 방법이 제일 단순하면서 무식한 방법일 것이고, 이게 아니라고 해도 안정적인 몇 개의 사업만 독점권을 부여한 다음 나머지 사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엄격하게 규제하고 관리하면 된다. 그런데 만약 전자의 입장에서 금융개혁을 수행한다면 이게 상당히 어려운 문제가 된다. 금융 기관이 창조적 에너지를 발산할 기회를 그대로 제공하면서 동시에 해악적인 결과를 초재하지 않도록 제한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의 관점은 어려운 방법론의 관점이다. 사실 난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였다. 특히 중간에 "어? 헐? 이사람 청산주의자였어?" 라고 오해할 뻔한 대목까지 있어서 더 그랬다. - 물론 도덕적 청산주의자 아니다. - 하지만 이걸 전부 소개하는건 다른 독자의 독서의 즐거움을 뺏는 일이기도 하고, 비효율적인 일이니까. 저자가 소개하는 보편적 원칙만 소개하면서 마지막 부분을 정리하려고 한다. 1. 경쟁을 제한해서는 안된다 2. 인센티브 및 가격 왜곡 문제를 개혁해야 한다 : [1 정부 개입에 대한 기대를 불식시켜야 한다 2. 금융 기관에 대한 정부 보조금과 특권 부여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3. 경기순환사이클에 부합하는 규제 감독 시스템을 채택해야 한다.] 는 것이다. 마지막에 테일 리스크 좆는 관행을 줄이는 방법에 대한 저자의 접근법도 엄청 흥미롭다! 꼭 읽어보시길!
아마 <폴트라인>이 <광기 패닉 붕괴 그리고 금융위기의 역사>와 함께 올라갈 것이다. - 왜냐면 같은 날 읽었으니까. - 아주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책을 두 권이나 읽어서 그런지 상당히 피곤하다. 그런데 동시에 굉장히 즐거웠다. 세계 경제의 활성 단층에 대한 정보를 얻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금융위기를 이해하는데 보다 체계적인 분석틀을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 세계가 채택하고 있는 시장자본주의가 물론 삐걱거릴 때도 많긴 하지만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의 삐걱거림이고 여전히 몇 군데 손만 봐주면 잘 작동할 기계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다소 희망적인 미래가 점쳐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굉장히 독서하는 시간이 즐거운 책이었다.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마지막은 10장의 인상 깊었던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 라는 책 속에 담긴 지혜를 소개하면서 끝내고자 한다.
변호사, 그들의 주특기는
갈등을 부추기고, 고발 사건을 늘리는 것.......
법정 심문을 교모하게 빠져나가고,
그 덕분에 두둑한 수수료를 챙긴다.
또한 사악한 행위를 변호하기 위해
법을 검토하고 확인한다.
빈집털이범이 가게와 집을 털 듯이
어디를 털면 좋을지 오로지 그 생각만 한다.
그들의 사치는
빈공층 100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역겨운 자부심은 또 다른 100만 명을 구제하며,
그들에 대한 부러움과 허영심은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의식주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어리석고 변덕스럽기까지 한 그들의 행동이
이상하면서도 신기한 악덕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상거래의 수레바퀴 역활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