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446250&memberNo=9500991>
와이프 : "자기야 야채볶음 할꺼니까 마트가서 '브로콜리, 당근, 양파, 파프리카' 좀 사다줘. 그리고 이따 밥먹고 나서 먹게 '시원한 xx커피'도 부탁해~
눈누난나. 마트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먹고 싶었던 과자도 같이 사야지 ㅎㅎㅎ. 집앞 마트에 도착. 브로콜리는 여기 있고, 당근도 챙기고. 음. 그리고 또 뭐였더라? 맞다. 야채볶음이니까 양파랑 파프리카도 사야지. 후훗 이제 내가 먹고 싶은 과자도 고르고~
나 : 여보. 마트다녀왔어~ 여기 브로콜리, 당근, 양파, 파프리카 그리고 과자. ㅎㅎㅎ
와이프 : 응? 커피는??
나 : 아......맞다......
오늘 아침은 뭘 먹을까? 어제 저녁에 먹고 남은 밥과 닭볶음탕이 있었지. 간단하게 데워서 먹고 나가야겠다. 닭볶음탕은 냄비에 데우고, 남은 찬밥은 전자렌지로 고고. 잘먹었다. 근데 닭볶음탕이 너무 많았나? 또 남았네. 상할지 모르니 데워놔야겠군.
어랏. 근데 가스불이 왜 켜있지?
요즘 깜빡깜빡하는 일이 유난히 잦다. 사소한 일에서 부터 가스불 끄는 것까지. 가끔 뉴스에서 가스불을 끄지 않아 불이 났다는 말을 들을 때면, 어떻게 가스불을 끄지 않을수가 있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그게 내 이야기가 되었다.
몇 년 전만해도 할일을 따로 적어놓지 않아도 생각나는대로 일을 하다보면 모든 일을 잘 마치곤 했는데. 이제는 그날 할 일을 미리 적어놓지 않으면, 빼먹기 일쑤다.
일을 하다 시계를 보니 5시 30분. 뭔가 허전해서 잘 생각해보면 오후에 은행에 갈 일이 있었는데 깜빡하거나, 냉장고를 열었는데 왜 열었는지 생각이 안나서 다시 닫기도 한다.
자가진단을 해보니 "건망증에 노출되어 주의가 필요"한 단계이다.
생각해보니 하루가 짧아졌다. 예전에는 하룻동안 여러가지 일들을 처리하고 남는 시간에는 책도 읽고 TV도 보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일찍 자곤했는데. 지금은 몇 가지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12시가 되어 버린다.
짧아진 시간에 여러가지 일들을 처리하다보니 생각이 분산되고 깜빡깜빡하게 되는 것 같다. 근데 시간은 왜 짧아졌을까? 어릴 때는 심장도 빨리뛰고 세포분열도 빨라서 모든일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기에 시간이 상대적으로 천천히 흘렀지만 이제 노화(?)가 진행되면서 몸의 신진대사가 느려진 탓에 시간이 빨리흐르는 것 처럼 느껴지는 것인가? 그런지도 모른다. 몸은 느려지는데 마음은 여전히 빨리빨리를 외치고 있는 탓이다.
한편으로는 이메일과 스마트폰이 연락을 더 빠르게 만들고, KTX와 비행기는 이동시간을 빠르게 만들었다. 빨라진 세상만큼 시간이 늘어나면 좋으련만, 빨라진 만큼 많은 양의 일을 해내야 하는 세상이다.
몸은 느려지고 세상은 빨라지고 있으니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공자는 "불혹"에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였다고 하는데. 공자의 발뒷꿈치는 따라가야하지 않겠는가?
사물의 이치를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중심을 잡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다. 세상이 빨리빨리를 외친다고 거기에 모두가 휩쓸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앞을 향해서 천천히 나아가면 된다. 그것이면 족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오는 아침. 비가 내린다. 출근길에 신발장에 가족을 위한 멀쩡한 우산이 충분한지 살펴본다. 충분해 보인다. 다행이다. 집을 나선다. 비가 내린다. 손에 우산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