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쯤에는: 소심하면서 뻔뻔하면 안되나요?
소심한 나
소심하고 비겁하고 그저 그런 자신이 싫었고 그래서 대범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런 멋있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소심하고 비겁하고 실수하고 바로 후회하고 쉽게 반성하고 다시 실수를 저지르는 아주 가벼운 육십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소심한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소심에서 대범이 아니고 소심함을 인정하고 소심한 나는 대범하지 않기에 미리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무시.극복.인정.대비) 라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소심하고 비겁한 자신을 알면서도 인정할 수 없어 아니라고 무시하면서 동시에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같고 태어난 천성을 극복한다는 일은 다시 태어나는 일만큼 어려운 일 일겁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극복하려고 했지만 당연시 실패했습니다. 이유는 아주 다양하겠지만 만일에 소심함을 극복하고 대범해지려면 태어난 그릇을 키워야 하는데 어떻게 태어난 그릇을 바꾸겠습니까?
소심함을 인정
인정을 하기로 했습니다. 소심하고 비겁하게 태어난 내 자신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소심하고 비겁하게 태어난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믿기로 했습니다. 다른 방법도 없고.
그리고 소심하고 비겁하고 동시에 뻔뻔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삼종세트입니다. 소심하고 비겁하고 동시에 뻔뻔.
대범하지도 못하고 용기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소심함과 비겁함을 뻔뻔함이라는 포장을 하기로 했습니다.
대범하고 용기 있음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최선의 선택이 뻔뻔함으로 포장하는 것이라고...
아직도 절대적인 가치로는 대범과 용기가 되겠지만 능력이 부족하다면 대범과 용기는 자신을 더 힘들게 만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뻔뻔함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해결책으로 채택했습니다.
일단 뻔뻔함으로 시간을 벌면서 생각을 하겠습니다. 뭐를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