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tolle lege, any books (들고 읽어라 아무 책이나)
영지주의
영지주의(Gnosticism)는 고대에 존재하였던 혼합주의적 종교 운동 중 하나이다.
1945년에 나그함마디 문서가 발견되고 그 이후 이들 1차 문헌들을 토대로 영지주의가 현대의 학자들에 의해 새로이 조명되기 이전에는 영지주의에 대한 연구는 영지주의를 논박하는 기독교 교부들의 논서들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했다.
이들 논서들에서 영지주의는, 정통파 기독교에서 세력을 얻지 못하는 좌절을 겪은 배교자들이 창시한, 타락된 형태의 교의를 가진 기독교의 한 이단인 것으로 대체로 서술되고 있다. 반면, 현대의 연구에 따르면 영지주의는 교의 체계가 다양하여 특정 한 종교 분파 또는 단체로 묶을 수 없으며 기원 또한 기독교로 국한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영지주의 종교 운동이 가장 활발히 전개된 시기는 기독교가 태동하던 기원후 1세기부터 3세기까지의 시기로 기독교와 밀접한 관련 하에 전개되었다.
정통파 기독교와 영지주의의 본질적인 차이는 정통파 기독교에서는 구원이 "믿음(신앙 faith)"을 통해 가능하다는 견해를 가진 반면 영지주의에서는 구원이 "앎 (gnosis 그노시스)"을 통해 가능하다는 견해를 가진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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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의 깨달음
힌두교에서는 구원에 이르는 길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1) 깨달음의 길(jnana marga), (2) 헌신의 길(bhakti marga), (3) 행함의 길(karma marga)이다.
세 길 모두 자기 중심적 자아를 극복함으로 새 사람이 되게 한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행하기에 상대적으로 어려운 길과 쉬운 길로 나누기도 한다. 깨달음의 길은 가장 가파르고 어려운 길이라 상근기에 속하는 소수에게만 가능하다고 본다. 일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따르는 길은 신에게 전적으로 헌신하는 신애의 길이다.
불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이 있다.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음으로 성불하겠다는 선불교의 길을 보통 ‘난행도’라고 하고 아미타불의 원력을 믿고 그의 이름을 부름으로 서방 정토에 왕생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토종의 길을 ‘이행도’라고 한다. 물론 참선하겠다는 사람보다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
오강남교수님 펌
성 어거스틴 (354-430)의 Confession
하버드 대학의 철학교수 화이트헤드(Whitehead)는 “현대의 모든 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이고 현대의 모든 신학은 어거스틴의 주석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어거스틴이 위대한 성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인간적으로 보면 기도하는 어머니 모니카와 암브로시우스라는 좋은 스승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방탕과 타락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또한 인생에서 좋은 신앙의 스승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둘째로 어거스틴이 위대한 이유는 그의 신학 사상이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 신학의 토대를 놓았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고대에 나타났던 모든 신학사상을 종합해서 체계적으로 정리를 했고, 후대로 넘겨주어 중세와 근대 신학의 모태가 되도록 했다.
어거스틴은 354년에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Tagaster)에서 기독교인 어머니와 이교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모니카는 남편의 타락을 인내로 참아내며 남편과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녀의 남편은 370년에 죽기 직전에 세례를 받았다.
모니카는 어거스틴의 재능을 일찍 발견했고 그가 출세의 길을 걷기를 원했다. 어거스틴은 11세에 웅변가가 되기 위해 라틴어를 배웠고, 17세에 카르타고라는 대도시로 가서 수사학 학교에서 공부하며 우수한 학생임을 증명했다.
카르타고는 방탕의 도시였다. 어린 어거스틴은 세속의 한가운데서 죄의 달콤함에 깊이 빠져들었다. 어거스틴은 한 여인과 동거를 시작했고 18세에 ‘아데오다투스’라는 아들을 낳았다. 어거스틴은 또한 극장의 연극에 탐닉했다. 어거스틴은 「참회록」에서 카르타고의 드라마는 그의 감정을 깨끗하게 하는 대신에 상처를 할퀴는 것 같이 감정을 짜증스럽게 했다고 고백한다.
어거스틴은 19세에 철학을 발견하면서 극장의 쾌락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키케로(Cicero)의 「호르텐시우스」를 읽다가 ‘지혜를 향한 엄청난 열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후에 그는 진리탐구를 위한 방황을 시작했다. 어거스틴은 회심을 하고 신앙으로 돌아오기까지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지적이고, 윤리적인 방황을 했다.
젊은 어거스틴은 성경이 비지성적이라고 비웃었다. 그는 20대에 마니교에 빠져서 9년을 방황했다. 마니라는 종교지도자는 216년 바벨론에서 태어났다. 마니의 사상은 중국, 인도, 팔레스타인, 이집트까지 퍼져나갔고 기독교 신앙에 큰 위협이 되었다.
마니교 사상에 의하면, 이 세상은 보이지 않은 두 개의 물질인 ‘선과 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람 안에서 악의 원리가 강하면 악을 행하게 되고, 선의 원리가 강하면 선해 진다고 했다.
왜 이런 사상이 생겨났을까? 세상에는 선이 패배하고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참 많이 있다. 욥처럼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어느 날 재산이 다 날라 가고 가족들이 비명횡사하고 자기 몸까지 병들어 비참해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반면, 악하고 못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그 자식들도 잘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악을 허용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마니교는 바로 이 문제에 대답을 하려는 시도였다. 세상에는 절대적인 선이 없고 늘 선과 악이 대립한다고 본 것이다.
당시 모니카는 어거스틴이 마니교에 빠진 것을 알고 눈물로 기도했다. 교회의 감독은 모니카에게 “오직 그를 위해 기도하라, 그는 독서를 통해 스스로 잘못이 무엇인지 발견할 것이다”라고 충고했다. 어거스틴은 공부를 통해 마니교의 모순을 발견했다. 어거스틴은 마니교의 최고 이론가, 파우스투스를 만났는데 자기의 고민거리를 명료하게 답변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마니교에 흥미를 잃었다.
어거스틴은 마니교에서 빠져 나와 로마에서 선생으로 성공하려는 꿈을 가졌다. 그는 로마에서 신플라톤주의를 만나게 되었다.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누스(Plotinus, 204/5-270)는 세계형성의 원리를 유출설(emanation theory)로 설명했다.
유출설에 의하면 우주의 가장 위대한 신으로부터 에너지가 넘쳐 흘러나오면 그 신보다 열등한 신들이 생겨나오게 되고 유출된 에너지가 그 신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악해져서 마지막에는 악한 세상을 창조한 열등한 신이 나오게 된다.
신플라톤주의는 물질을 악하게 보았고, 본래의 신과 가까우면 선한 것이고 멀어지면 악이 된다고 보았다. 악이란 ‘선의 결핍’이라고 보게 된 것이다. 어거스틴은 이 신플라톤주의를 통해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라 영이라는 것을 깨닫고 완전하게 마니교를 벗어났다.
AD 384년 어느 날 모니카는 로마에 있는 어거스틴을 찾아와서 그를 밀라노의 유명한 설교자인 암브로시우스 감독에게 데려갔다. 암브로시우스는 훌륭한 설교자였다 그는 이민족을 학살하고 회개하지 않은 황제에게 성사를 집행하지 않고 교회 밖으로 쫓아낸 명망이 높은 성직자였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권력 앞에서 그렇게 당당할 수 있다면 . . .)
암브로시우스는 어거스틴이 가장 궁금하게 여기던 두 가지를 설명을 해주었다.
교회의 권위였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이성의 한계를 깨닫게 되면 결국 신앙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교회의 권위는 이성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이성보다 우월하며 이성을 보완한다.”
구약성경이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문자적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문자적으로 읽지 말고 영적인 해석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거스틴은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듣고 조금씩 은혜를 받다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롬10: 17).
어느 날 어거스틴은 정원에서 “하나님 왜 지금 나의 더러움을 벗어 버릴 수가 없습니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소리 내어 울부짖었다. 그런데 어디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Tolle lege’(들고 읽어라). 그래서 그가 성경을 폈을 때 로마서 13장 13-14절의 말씀을 읽게 되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하게 행합시다. 호사한 연회와 술취함,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기에 빠지지 맙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롬13: 12~14).
[출처] 제5장 성 어거스틴의 생애와 사상 (1) 생애|작성자 물길 손길
tolle lege
깨달음 후에 믿음이 오는 것인지 믿음 후에 깨달음이 오는 것인지...성 어거스틴의 경우는 많은 육체적 방황 그리고 지적이고 종교적인 방황 후에 깨달음을 얻고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tolle lege (들고 읽어라).. 로마서 13장 12절-14절 대단한 귀절은 아닙니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내용입니다. 왜 그 내용이 어거스틴에게 깨달음과 믿음을 주었을까요?
나의 깨달음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이제 생각하지 말고 믿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호학을 즐기던 공자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tolle lege, any books (들고 읽어라 아무 책이나)
어떤 책이 당신에게 깨달음을 줄지 아무도 모릅니다. 같은 책이라도 언제 어디서 몇 페이지가 당신에게 깨달음을 줄지 믿음을 줄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냥 tolle lege any books...
부록: 부처님은 명상과 고행 후 보리수나무 아래서 머리 깨지게 고민 고민 후 연기론을 깨달고 아무도 믿지 말고 자신이 경험한 것만 믿으라고 했는데 성 어거스틴은 하느님을 믿기로 합니다.
동양과 서양의 정신세계는 이렇게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