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대해서: 티베트 사자의 서 (Tibetan Book of Death)
공포 대장: 죽음
살면서 제일 큰 공포는 죽음입니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면 모든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 죽음이 왜 필요하고,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안다면...
인간의 궁극적 질문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왜 나는 이곳에 ‘육신’을 갖고 태어났는가?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탄생은 왜 있으며 죽음은 또 왜 있는가?”
책 티벳 사자의 서
죽음과 환생 사이의 중간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자 (死者)를 위한 안내서입니다.
제1부는 차카이 바르도이다.죽음의 순간에 일어나는 정신적인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제2부는 초에니 바르도인데 사후에 일어나는 꿈의 상태와 카르마의 환영들이 나타나고 있다.
제3부는 시드파 바르도는 환생을 갈구하는 사자의 본능과 환생직전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려보인다.
불교와 힌두교에서는 죽음의 순간에 갖는 마지막 생각이 그 다음 환생의 성격을 결정 짓는다고 믿는다. <법구경>의 서두에서 붓다(Buddha)는 말하고 있다.
“우리의 모든 것은 우리가 생각한 것의 결과이다.” 마찬가지로 히브리 현자들은
<잠언> 23장7절에서 “인간은 자기 마음 속에 생각하는 대로 되느니라.”고 했다.
티벳 사자의 서에 담긴 가르침들 (요약)
- 윤회계(인간계/천상계/지옥계)의 모든 존재들이 처한 상황과 조건들은 전적으로 ‘현상’에 의존한다. 이는 윤회하는 ‘마음’에게만 나타나는 것일 뿐 실제로는 덧없는(영원하지 않은) 것, 실체가 없는 것에 불과하다.
- 천신들이나 악마들이나 신령들이나 중생들과 같은 존재들은 사실 어떤 곳에도 없다. 이 모두는 원인에 의존한 ‘현상’일 뿐이다. 이 원인이란 육체적인 감각과 변하기 쉬운 윤회의 삶을 추구하는 욕망이다.
- 이 ‘원인’이 완전한 깨달음(大智彗)으로 극복되지 않는 한 죽음은 태어남을 뒤쫒고 태어남은 죽음을 뒤쫒아 그것은 끝이 없을 것이다.
- 사후세계는 그 조건만 다를 뿐 인간세상에서 만들어진 현상들의 연속이다. 이 두 세계는 똑같이 카르마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즉,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지 않으면 이 법칙에 따라 천상계나 지옥계에서 또는 Bardo 세계에서 곧바로 인간세계로 환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 완전한 깨달음은 윤회계가 또는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환영이며 실재하지 않는 허상임을 깨닫는 데서 얻어진다.
- 명상 수행, 다시 말해 ‘바른 지식’에 이르기 위해 마음을 집중할 수 있도록 사념(邪念)을 조절하는 수행은 필수적이다.
- 이번 세계의 주기에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위대한 스승은 고타마 붓다이다. 그의 가르침은 그만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죽음과 환생의 순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윤회의 대양을 건너 니르바나에 이르기 위해 아득한 세월 이전부터 수많은 붓다들이 인간세계에 폈던 것과 똑 같은 가르침이다.
- 모든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은 윤회계로 부터의 해방이며, 그것만이 유일한 목적이 될 수 있다. 이는 니르바나 (모든 고통과 번뇌가 끊어진 경지)를 실현하는 것이다.
니르바나의 경지를 체득한 붓다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설했다.
"제자들이여, 흙, 물, 불, 바람이 없는 세계가 있다. 그곳은 끝없는 공간도 아니요,끝없는 생각도 아니요, 無도 아니요, 생각과 생각 아님(想非想)도 아니다. 그것은 이 세계도 아니요, 저 세계도 아니다. 그곳은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머무름도 죽음도 태어남도 없다. 그곳은 슬픔의 끝이니라. 이렇듯 불변, 불생, 부조, 무형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변화하고 태어나고 만들어지고 형상을 가진 세계로부터의 벗어남이 있느니라.”
[출처] 티벳 死者의 書|작성자 감초
모든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
모든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이 윤회계로 부터의 해방이라면 왜 윤회계를 처음부터 만들었을까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윤회계는 실습하는 곳입니다. 여러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 자신을 진짜 아는 겁니다. 개념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육체를 통해서 개념을 실천해보는 겁니다.
자신을 진짜 보려면 거울에 비추어 볼 수도 있지만 제3자의 눈으로 볼 수 있으면 좋을 겁니다.
니르바나에서 보면 윤회계가 우습게 가볍게 보일 수도 있지만 현자라도 윤회계 안에 들어오면 현실이라는 현실 앞에서 작아집니다. 시간이 지나고 니르바나에서 보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티베트 사자의 서' 에서 설명하는 것들은 진실일 겁니다. 그렇지만 진실의 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신과 나눈 대화' 에서 설명되는 니르바나는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그것도 진실의 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윤회계에서 보이는 니르바나와 니르바나에서 보이는 윤회계는 같은 곳이 겠지만 위치에 따라서 설명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위치가 다르기에 보이는 것도 설명되는 것도 다를 수 있다는 것.
내가 이해한 것은 잘 산다는 것 = 잘 죽는다는 것 그러려면 지금 잘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잘하려면 자신을 믿으면 된다는 것. 믿는다고 흔들림이 없는 것이 아니고 흔들려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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