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3장: 사민부쟁 (편을 가르지 말아라)
不尙賢 使民不爭
불상현 사민부쟁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불귀난득지화 사민불위도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불견가욕 사민심불란
是以聖人之治, 虛其心實其腹 弱其志强其骨
시이성인지치 허기심실기복 약기지강기골
常使民無知無欲 使夫知者不敢爲也
상사민무지무욕 사부지자불감위야
爲無爲 則無不治
위무위 칙무불치
특정의 사상이념이나 종교등을 숭상하지만 않는다면
백성들간에 파벌이 갈라져서 생기는 다툼은 없게 되오.
희귀한 재화를 소중하게 취급하지 않는다면
백성들도 물욕에 눈이 어두워 도둑질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큰일을 도모하려는 계획을 보여주지 않으면
백성들은 마음이 불안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자신의 마음을 깨끗히 비워서
나라의 경제를 풍족하게 채우며,
(백성들에게 부담가는)
큰일을 저지르려는 의욕을 스스로 자제하게 되면,
국가기강과 국력은 튼튼하게 다져지는 것이오.
(이렇게 성인이 무심으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언제나 바라는 것도 없고, 알 것도 없을 것이오.
대체로 이와 같이(백성들이 모두 순진무구하게 무심해 지면 )
소위 좀 안다는 지식인들이라 할지라도 감히 함부로 나서서
엉뚱한 수작을 부리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에,
무위적인 다스림을 본보기로 삼는다면,
이세상 다스리지 못할 것은 없소이다.
신용복교수님의 해석
노자는 백성들이 무지무욕하게 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지무욕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하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사실 나는 경제학을 전공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지금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이 ‘소비가 미덕’이라는 자본주의 경제학의 공리입니다.
절약이 미덕이 아니고 소비가 미덕이라니. 끝없는 확대 재생산과 대량 소비의 악순환이 자본 운동의 본질입니다. 자본주의 경제의 속성입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당연히 욕망 그 자체를 양산해내는 체제입니다. 욕망을 자극하고 갈증을 키우는 시스템이 바로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수많은 화(貨)를 생산하고 그 화에 대한 욕구를 극대화합니다. CF 광고나 쇼윈도 앞에서 무심하기가 어렵습니다.
순간순간 구매 욕구를 억제해야 하는, 흡사 전쟁을 치르는 심정이 됩니다. 모든 사람이 부단한 갈증에 목마른 상태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 상품 생산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라고 해야 합니다.
지식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지식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접속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나는 그것이 지식 상품의 CF라고 생각합니다. 지식도 상품입니다. 상품으로 생산되고 상품으로 유통됩니다. 상품의 운동 원리를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비가 미덕이 되고 부단히 새로운 상품이 생산됩니다.
그리고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상품 이외의 소통 방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상품 형태를 취하지 않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시장이 허용하지 않는 것은 설 자리가 없는 것이지요. 모든 것이 상품화된 거대한 시장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언어도 상품이 됩니다. 지식의 도구인 언어 그 자체가 가장 이윤 폭이 큰 첨단 상품이 되고 있습니다. ‘지식을 위한 지식’도 생산되고 유통됩니다. 도무지 무욕할 수도 없고 무지無知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구조와 현실을 깨닫는 것 그것이 『노자』의 현대적 재조명이라고 생각하지요.
노자는 또 배운자들로 하여금 함부로 무엇을 벌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자들이 벌이는 일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자가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일들을 지자가 저지르고 있는 것이지요.
부을 숭상하고, 부자를 귀하게 여기게 하고, 욕망 그 자체를 생산해내고, 심지를 날카롭게 하는 등 작위적인 일을 벌이는 사람들이 지자들이지요. 자본주의 체제하의 지자들은 특히 그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지요. 노자는 바로 이러한 일련의 작위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무리하게 하려는 자는 실패하게 마련이며 잡으려 하는 자는 잃어버린다는 것이 노자의 철학입니다. 자연의 법칙을 존중하는 무위의 방식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옷처럼 만물을 감싸 기르면서도 주인 노릇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衣養萬物而不爲主: 제34장).
그렇게 할 때에 비로소 혼란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爲無爲 則無不治). 나아가 천하는 무사로써 얻을 수 있으며(以無事取天下: 제57장), 감히 천하를 앞지르지 않음으로써 천하를 다스린다(不敢爲天下先 故能成器長: 제67장)고 합니다.
이 장의 지자(智者)는 오늘날 정치 지도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쟁취하려는 사람이며, 무언가를 하겠다고 공약하는 사람이지요.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나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노자적 성향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서예를 사사받은 정향 선생님은 해방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투표하신 적이 없다고 실토하신 적이 있습니다. 투표하시지 않은 이유가 매우 특이합니다.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나서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찍어줄 마음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삼고초려를 하더라도 선뜻 나서지 않아야 옳다는 것이지요.
하물며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서 남을 낮추어 말하고 자기를 높여서 말하는 사람을 찍어줄 생각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지역의 어른이시고 자연히 사람들의 이목이 있기 때문에 투표일에는 투표소를 한 바퀴 휘익 돌고 오신다는 것이었어요. 아마 노자에게 선거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투표하러 가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노자의 정치학이 이와 같습니다.
노자 정치학의 압권이 바로 ‘생선 굽는’ 이야기입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 굽듯이 해야 한다”(治大國若烹小鮮: 제60장)는 것이지요. 생선을 구울 때 생선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집다가 부스러뜨리는 것이 우리들의 고질입니다.
생선의 비유는 일상생활의 비근한 예를 들어서 친근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모습이나 소위 국가와 사회를 경영하는 방식을 반성할 수 있는 화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유가에서는 이 제3장을 들어 노자 사상은 우민 사상이며 도피 사상이라고 비판합니다. 무지, 무욕 그리고 무위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먼저 전체의 의미를 읽고 전체적 연관 속에서 부분을 읽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자구와 부분을 도려내어 확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부정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려는 것이지요. 미운 사람을 험담하는 경우에 그렇게 하지요. 부분의 집합이 전체가 아니기 때문에 부분의 확대는 전체의 본질을 그르치기 쉽습니다.
『노자』 독법의 기본은 무위입니다.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만 무위는 무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무위는 그 자체가 목적이나 가치가 아니라 방법론입니다. 실천의 방식입니다. 그것이 목표로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난세의 극복’입니다.
혼란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장은 은둔과 피세를 피력한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적극 의지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세의 사상이라는 것이지요. 다만 그 방식이 유원하고 근본을 경영하는 것이란 점이 다를 뿐입니다.
2장 https://steemit.com/kr/@thomaslee101/2m1xbg-2
1장 https://steemit.com/kr/@thomaslee101/3hzosu-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