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쯤에는: 더 크게 소유하려면 Let it go
잃은 것이 있으면
우리는 무슨 일이 생기면 잃은 것에 대해서 아쉬움을 느끼게 됩니다. 더 심하면 집착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연의 이치가 공백이 발생하면 다른 것으로 채워주게 됩니다.
물론 잃은 것이 돈으로 환산이 불가능 하던가 비싼 것이라면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도 힘들고 비싸다면 아깝기도 할 겁니다. 그렇지만 모든 위기는 기회를 동반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항상 이익을 생각하게 됩니다. 잃은 것과 얻은 것을 계산합니다. 계산을 통해 잃음에 대한 아픔도 치료하고 정당화를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잃어버린 것은 한번 떠난 것은 잘 돌아오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새롭게 찾아온 얻음과 관계를 맺으면 좋은데 아깝기도 하고 쉽지도 않고 그렇지만 선택은 없는데!
잃어버린 블로그
1년전쯤에 사용하던 블로그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네이버에 이메일을 보냈는데 답장도 없고 그냥 놀고 있기도 심심하고 그래서 새로운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블로그를 새로 시작하니 마음도 새롭고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고 다짐도 하게 됩니다.
일단 옛날 블로그에서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오려고 하고 정리를 하려고 합니다. 아주 천천히 하려고 합니다. 급한 일도 아니고 그리고 10년 전에 시작한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노자 도덕경도 첫 장부터 다시 공부하고...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오래된 것은 먼지도 털고. 논어도 매일 한 장씩 읽고. 역사도 다시 공부하고.
오늘 아침에는 노자 도덕경 2장을 읽었는데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새롭던지 그리고 특별히 유명한 장도 아니라서 그냥 덮어두고 살았습니다.
생이불유
생이불유(生而不有): 낳고 기르되, 소유하지 않는다.
도덕경 2장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만들면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은 우리들의 자녀들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 싶고 잘해주고 싶고 그렇지만 때가 되면 떠나서 스스로 성장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집착을 하고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생이불유는 이제 나에게 이렇게 들립니다. '더 크게 소유하고 싶다면 Let it go.'
우리들의 삶은 유한합니다. 그렇지만 무한하게 살고 싶어합니다. 무한하게 살고 싶다면 우리 자녀들이 자녀들을 낳고 그것을 반복하면 됩니다. 나의 DNA가 생존하는 겁니다. 생존하려면 변화해야 하고 적응을 해야 합니다.
나의 DNA가 생존하려면 여러 경험을 통해서 강인해지고 경쟁력이 생겨야 합니다. 그러려면 나의 자녀들이 경험을 해야 하고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Let it go.
유한한 삶이 무한 하려면 무소유를 하는 겁니다. 여기서 무소유는 소유를 안하는 것이 아니고 더 큰 소유를 생각해 보는 겁니다.
내가 노자 도덕경을 진짜 이해하려면 반복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읽으면서 항상 새롭게 읽어야 하는데 새롭게 읽으려면 내가 이해한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의 도덕경을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자꾸 과거의 내가 이해한 것을 지키면 성장을 할 수 없습니다. 그냥 과거의 나의 이해력에 머무르는 겁니다. 2500년 전에 쓰여진 노자 도덕경이 오늘날도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월이 흐르고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알고 경험한 만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크게 소유하려면 과거의 나를 Let it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