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역사: 금주법 시대의 갱스터 – 알 카포네
미국의 시카고를 중심으로 조직 범죄단을 이끌었던 갱단 두목 알 카포네. 본명은 알폰세 카포네, 그러나 별명이 더 유명하다. ‘스카페이스’, 즉 끔찍한 흉터를 지닌 얼굴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알 카포네는 젊은 시절에 매춘굴에서 일할 때 벌인 싸움 때문에 왼쪽 뺨에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같은 제목의 영화에서 알 파치노가 열연을 했다.
알 카포네는 1899년 1월 17일, 뉴욕에서 이탈리아 나폴리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악명 높은 ‘파이브 포인츠(Five points)’ 갱단에 들어가 범죄를 일삼으며 성장하였다. 금주법이 발효된 1920년, 21살 때 시카고를 무대로 밀주, 밀수, 매춘, 도박 등으로 큰 돈을 벌었다. 이탈리아계 갱단(마피아)이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던 시기에 알 카포네도 시카고의 두목으로 군림하였다.
시카고의 정계인사와 경찰을 매수하여 1927년에는 1억 달러가 넘는 소득을 올렸다. 1929년 2월, 유명한 ‘성 발렌타인데이 대학살’ 등 수많은 폭력 살인 사건을 지휘하였다. 1932년 탈세 혐의로 투옥되었으며 1939년 석방 된 뒤에는 마이애미에서 조용히 지냈다. 1932년에 그는 매독에 걸리게 되는데 이 무렵 매독은 불치병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투병하다가 1947년 1월 25일에 뇌출혈과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시대는 금주법의 시대였다. 청교도 가족주의가 국가 이념인 미국에서 금주 운동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남북 전쟁 당시에도 이 제도를 부분적으로 시행한 적 있으며 1차 대전 때에는 무려 10여 개 주에서 술을 만들어 파는 일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되면서 식량 절약과 작업 능률 향상 그리고 맥주를 나라 독일에 대한 반감 등이 미국의 전통적인 청교도 순결주의와 결합하여 금주 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쳐졌다.
이에 따라 1917년에 강력한 금주법이 미 의회를 통과하였다. 알코올 음료를 양조하거나 판매 및 운반이나 수출입을 엄격히 금지하는 미 헌법 수정 18조가 연방의회를 통과하였고 각 주의 승인을 얻어 1920년 1월에 발효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관 관련된 이 법은 완벽하게 실시되지 않았고 오히려 갱단에 의한 밀조와 밀매가 판을 치는 바람에 1933년, 수정 헌법 21조에 의해 폐지된다. 바로 이 시대를 알 카포네는 종횡무진하였던 것이다.
금주법의 시대, 그러니까 1920년부터 10여 년은 오히려 술의 시대가 되었다. 비밀리에 열리는 밤의 클럽에서는 정열적인 재즈가 연주되었고 갱들은 전국을 무대로 술을 몰래 만들어 팔았다. 문화적으로 볼 때 이 시기는 청교도 순혈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근대의 미국이 전 세계의 모든 인종이 뒤섞여 거대한 용광로가 되어 현대의 미국으로 변화해 가는 성장통의 시기였다. 영화가 대중의 욕망을 자극하였고 자동차가 널리 보급되었으며 누구라도 비극적인 열망과 출세의 꿈을 안고 대도시로 몰려 들었다. 이 시기를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는 강렬하고 직선적인 문체로 담아냈는데, 물론 두 작가의 작품 속에 한결같이 술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알 카포네의 무대는 시카고. 시카고는 밀주, 밀수, 매음, 도박의 성지로 불렸는데 특히 이탈리아계 갱단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그들의 두목 자리를 알 카포네가 차지하고 있었다. 알 카포네는 거금을 들여 시카고의 정재계 인사들의 환심을 샀고 언제나 지역 경찰의 주머니를 두둑히 채워주는 방식으로 1927년에는 무려 1억 달러가 넘는 소득을 올리기도 하였다.
1929년 2월에는 이른바 ‘발런타인데이 대학살’이라고 불리는 대규모의 잔인한 폭력 살인 사건을 조종했다. 1927년 그의 재산은 약 1억 달러로 추산되었다.
미 정부는 그를 체포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였으나 살인, 도박, 매춘 등의 온갖 혐의로 공격하였으나 대부분 증거 불충분이 되거나 유력한 증인들이 기억상실증에 걸리거나 실종되는 등의 어려움을 겪다가 마침내 주류 밀매와 탈세 혐의로 체포하게 된다. 그는 “시민이 바라는 것을 공급했을 뿐이다. 내가 범죄자라면 선량한 시카고 시민들 역시 유죄다”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이 과정은 영화 <미션 임파서블>로 유명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언터쳐블>이라는 영화에서 흥미롭게 잘 다루기도 했다. 또한 그의 어떤 측면은 영화 <스카페이스>로 변주되기도 했는데, 이 영화는 알 카포네의 전기적 사실과 부합되기 보다는 치명적인 상황에 내몰린 한 인간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그 자신만의 방법을 선택하는, 비록 그 길이 파멸에 이르는 것일지라도 그밖에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는 운명을 치밀하게 다룬 작품이다.
1931년 6월, 연방소득세법 위반으로 기소된 카포네는 11년의 징역과 8만 달러 벌금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고, 샌프란시스코만의 섬에 새로 지은 그 유명한 앨커트래즈 교도소에 수감된다. 1939년 11월에 매독 증세가 심해져서 볼티모어의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이후에는 플로리다의 농장에서 은둔생활을 하다가 1947년 1월 25일에 사망하였다.
미국의 금주법
금주법 시대 (Prohibition era)란 미국 의회에서 미국 수정 헌법 제18조, 소위 금주법을 비준한 1919년부터 1933년까지를 말한다. 금주법 제정을 주도한 것은 농촌지역의 개신교 세력인 "금주 십자군(dry crusaders)", 로비 단체인 안티살롱 동맹, 기독교 여성단체인 여성기독교금주연맹 등이었다. 1919년 1월 16일 비준된 수정헌법 제18조와 볼스테드 법은 주류의 양조·판매·운반·수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였다.
종교적 목적으로 그러니까 성만찬에 사용하는 포도주 등만이 허용되었고, 알코올의 개인적 소유 및 소비는 연방 법률로 불법화되었다. 금주법은 1933년 12월 5일 미국 수정 헌법 제21조가 수정헌법 제18조를 대체하면서 폐지되었다.
금주법은 1890년대에서 1920년대를 가리키는 "진보 시대"의 끝물을 장식한 사건이었다. 19세기에 들어 알코올 중독, 약물 남용, 도박 중독을 비롯한 다양한 악폐를 추방하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했다. 그래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여러 공동체에서 알코올 금지를 도입했고, 이는 알코올 금지의 법제화로 이어졌다.
금주법 지지자들(dries)은 금주법을 공공도덕과 보건후생의 승리라고 자축했다. 한편 반대자들(wets)은 알코올 금지는 농촌 지역 개신교도들의 이상을 도시지역 이민자 공동체와 천주교 신자들에게 강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통념적으로 금주법은 실패로 돌아간 악법이라고들 생각하지만, 금주법이 시행된 1920년동안 미국의 알코올 소비량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1940년대까지 알코올 소비량은 금주법 이전 수준 이하를 유지했다. 때문에 금주법이 최소한 일시적으로라도 본래의 목적을 수행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기도 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금주법의 실패를 법 자체의 문제보다 그 주위의 역사적 맥락에서 찾기도 한다.
그러나 금주법의 결과 마피아나 갱스터 같은 도시 지역 범죄조직들이 성장하게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들 범죄조직의 밀주 유통 사업이 오늘날의 마약 밀매 사업의 원조가 되었다고 진단하는 시각도 있다. 금주법은 해가 갈수록 지지자를 잃었으며, 1929년 대공황이 발생했을 때 각 주 정부들은 주세가 없어졌기 때문에 심한 세수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펌)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