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쯤에는: 누구나 맞으면 아프다
작가 이외수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작가 이외수님이 몸이 불편하시다고 합니다. 그리고 원인은 우울증을 동반한 알콜중독이라고 합니다.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서 검사를 하신다고 페북에 올라왔습니다.
이외수님의 내공이면 세상을 위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역시 삶은 누구에게나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1946년 음력 8월 15일에 경남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에서 출생했다. 외가에서 태어났다고 바깥 외(外)자와 항렬자인 빼어날 수(秀)를 합해서 이름이 이외수가 되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그가 3살때 병으로 타계했다. 그의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었고 6.25전쟁에 참전하여 화랑무공훈장까지 받은 분이었다.
아버지는 여러 곳에서 군복무를 하였고 이외수는 아버지를 따라 자주 학교를 전학다녔는데 고향인 경남 함양군 상내백초등하교, 대구광역시 삼덕초등학교, 강원도 화천군 신풍초등학교, 강원도 양구군 양구초등학교, 강원도 인제군 기린초등학교 등을 거쳤다. 6학년 때는 아버지가 제대를 하고 교사가 되었는데 이외수의 담임을 맡기도 했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초등학교와 인제중학교를 거쳐 인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4년 춘천교육대학교에 입학했다. 1968년 육군에 입대한 뒤 71년 제대하고 72년 춘천교육대학교를 중퇴했다.
어릴 적 꿈은 화가로 춘천교대 시절 미전에 입상한 경력도 있었지만 스스로 재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절망해서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참고 이 해에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견습어린이들>이 당선되었으며 73년엔 인제남초등학교 곗골(인제읍 남북리 일대)분교 소사로 잠시 근무하였다.
이외수의 아픔
그에게 있어서 1970년대(특히 70년대 초)는 가난으로 찌든 절망의 세월이었다. 춘천에 살면서 구걸한 경험도 있고 하숙집 방세가 밀려서 쫓겨난 적도 있으며 크림빵으로 하루를 때운다거나 생라면 한 봉지로 며칠을 때운 경험도 있다.
심지어는 빈 쓰레기통이나 개집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새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젊은 시절을 보낸 것에 본인도 한이 서리고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가끔씩 들어오는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으신가?"라는 질문에 "내가 미쳤냐?"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교육대학교 재학시절에서는 당시 학장이 이외수의 생활사정을 참작해서 조금이나마 이외수의 생활을 도와줄 정도이기도 하였다.
이외수의 투쟁
2010년 9월 이외수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치킨 브랜드 BBQ에 대한 언급을 한달에 4번만 하면 1,000만원씩 입금해준다는 계약을 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이외수는 "그 돈을 가난한 농촌 청소년들에게 전액 기증합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서 진성호가 잘못알고 BBQ를 비윤리적으로 광고했다며 비판하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외수는 타진요가 타블로에 대해 학력위조 논란을 야기시켰을 때 타블로를 옹호하였다. 이로 인하여 타진요 소속의 네티즌들과 대립하였고, 이외수는 "똥이 더러워 피한다면 이 세상은 결국 똥밭이 되고 만다."고 말하며 타진요와의 정면대결을 피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형사재판에서 타블로 측이 승리하자 이외수는 "타진요 운영자는 저를 똥물에 튀겨 버리고 싶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군요. 실소를 금치 못할 지경. 똥물에 튀겨 직접 먹을 거라면 그렇게 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라며 "하지만 똥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과 저질 선동에 속아 부화뇌동하고 있는 맹목적인 추종자들이나 먼저 구출한 다음에 너무 수준이 떨어져 측은지심까지 불러일으키는 그놈의 허세를 한 번 떨어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따위 저질 선동에도 부화뇌동하는 수준이라니, 도대체 뇌가 있는 겁니까?"라고 강하게 타진요 측을 비판하였다.
2010년 10월, 중국이 조선족이 사용하는 조선어가 자국의 언어라고 주장하며 '조선어 국가표준 워킹그룹'을 구성해 스마트폰과 태블릿PC, PC 키보드용 조선어 입력 표준, 소스코드, 지역식별자 등에 대한 표준안 마련을 위해 일명 한글공정을 추진하자 이외수는 "우리가 한글이라는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귀중함을 모르고 소홀히 하니 중국이라는 도둑이 이를 훔치려는 마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라며 비판했다. 또 "중국이 한글을 중국의 문화유산이라고 우기는 것은 한국이 만리장성을 한국의 문화유산이라고 우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라며 일침을 가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추진 당시 이외수는 트윗으로 "돌에게도 생명과 감정이 있습니다.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지 마세요"라고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9]
이외수는 2013년 10월 25일 독도의 날을 맞아 자신의 트위터에 “독도는 한국 땅, 그리고 오늘은 독도의 날”이라는 글을 반복해서 올렸고,“독도는 천지개벽을 하는 날이 와도 한국 땅입니다. 일본은 세슘에 초밥 말아먹는 소리 그만해야 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외수는 2011년 11월 15일 자신의 트위터에 "일본 아베 총리가 한국을 '어리석은 나라'로 폄훼했다"면서 "총리님 이성을 완전히 잃으신 것 같은데 뇌검사 한번 해 보시지요"라고 글을 남겼다.
이외수는 2014년 세월호사건과 관련하여 '가난한 아이들이 경주나 갈 것이지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갔다'라고 발언한 한기총 조광작 목사를 향해 '십자가에 못박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며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이외수는 2014년 6월 10일 "한국 축구 4대 0으로 가나에 침몰. 축구계의 세월호를 지켜보는 듯한 경기였다"라는 트윗을 남겼다.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문제제기하는 네티즌들을 '난독증' '곤계란' 등의 표현으로 비난하다 결국 여론이 악화되자 트위터를 통해 공식 사과하고 문제의 글을 삭제하였다.
이외수 문학관
2012년 8월 12일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799번지 감성마을에 이외수 문학관이 개관되었다. 화천군이 75억원의 예산을 들여 연면적 1243㎡에 전시관 964㎡, 영상실 48㎡, 수장고 115㎡, 퍼포먼스공간 55㎡, 중앙정원 339㎡를 조성하였다.
비판
일부 문학가들에 의해 문단의 평가에 비해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소설가라는 비난과 함께 문학관 건립이 혈세 낭비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화천군민이 불과 2만5000명인데 이외수 작가를 위한 감성마을에 100여억 투자’라는 윤정훈 목사의 비판을 네티즌이 마광수 연세대학교 교수의 홈페이지에 올리자, 마광수 교수는 답변을 통해 "군민 혈세로 호화 주택이나 지어주고 있으니 우리나라 행정가 나으리들의 무지몽매함이 드러난다"고 답하였다.
이기식 고려대학교 독어독문과 교수는 2013년 1월 23일 한국경제연구원의 칼럼에서 "감성마을은 좌우파의 문제도 아니라 돈을 매개로 예술과 정치가 서로 결탁한 것에 불과하다"면서 "예술을 위한 감성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충실한 '이익 감성' 뿐"이라고 비난했다.
펌) 위키백과와 나무위키
아픔의 치유
글을 쓰실 때는 따뜻함과 현명함이 나타나고 자신이 나서서 투쟁을 해야 할 때는 피하지 않습니다. 이외수님이 삶을 사는 방법이겠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외수님의 아픔을 내가 알 수는 없지만 어릴 때 어머님을 잃은 외로움 그리고 젊어서의 가난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그는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힘듭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따뜻함과 현명함으로 그렇지만 자신과 뜻과 길이 다른 사람들과는 대결과 투쟁으로...
잘사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대결과 투쟁을 할 때 자신의 아픔이 치유되는 것이 아니고 더 커지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자꾸 언론에 투쟁하는 면이 부각되기에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아무리 강한 사람도 매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육십쯤에는
맞아서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대결과 투쟁은 피해야 하는 것이 상책일 것 같습니다.
이제 이외수님도 대결과 투쟁은 피하셨으면 합니다. 대결과 투쟁의 삶은 피곤하고 힘들 수 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외수 선생님 아니 형님 지금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감독을 하셔야지 현역선수 생활을 접고. '형님도 많이 잡수셨다 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