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96: 선을 실천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위선)
위선 [僞善]: 겉으로만 착한 체함. 또는 그런 짓이나 일.
선의 반대는
노자 도덕경에선 위선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 노자에게 선의 반대는 악이 아니라 위선입니다.
서양 철학이 이분법인 접근으로 선악으로 구분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선과 악 사이에 여러가지 다른 구분을 해두었습니다. 서양철학에 기초를 둔 기독교의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 촌스러운 예입니다.
아름다움에 반대는 추함이 아니고 아름답지 않은겁니다. 아름답지 않은 것이 추하지는 않습니다. 아름답지 않은 것도 가꾸면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선과 악 사이에는 위선과 위악의 아주 큰 세계가 존재합니다. 아마 선과 악의 세계보다 더 넓고 판단하기 어려운 그런 세계입니다.
위선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을 먼저하고 말로 하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많은 실수와 실패를 거듭합니다. 그래서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전에는 말을 조심해야 하는데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싶은 조급함때문에 행동이 실천으로 이루어지지 전에 급하게 말을 하게 됩니다.
생각도 순수했고 말도 정당했지만 실천에 실패를 하게되면 원하지 않는 위선을 저지르게 됩니다. 개인에게는 단순한 실수 일수도 있지만 피해를 보는 사람에게는 위선이 됩니다. 여러번 실수를 저지르면 위선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지위가 높을수록 말조심을 해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리더의 생각이 창조적이였고 생각을 정당하게 실천하겠다고 선언을 했지만 실천을 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위선이 됩니다. 여기서 리더가 변명까지 하게되면 위선은 더 커지게 됩니다. 실패를 했을때 여러가지 사정과 상황이 있었겠지만 그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리더의 임무임을 잊으면 신뢰를 잃게 됩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고백을 하게 되면 다음 기회를 얻을수 있습니다. 그래서 리더의 신뢰도는 실패를 했을때 더 커지고 검증될 수 있습니다. 실패를 했을때 자신의 잘못을 최소화하고 핑계를 만들게 되면 위선자가 됩니다.
그래서 의도가 좋더라도 수련을 꾸준히하며 실천력을 높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자주 대련에 임해야 합니다. 실천력을 높힐수 있는 방법을 가르켜주는 분이 멘토입니다.
실천을 하려고 하는데 힘든 상황이 벌어지면 실천방법을 바꿀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실천의도를 바꾸면 안됩니다. 이것도 위선입니다. 힘든 상황을 설명하고 방법을 바꾸고 같이 실천하면 되지만 깊은 고민없이 상황에 따라서 자주 방법을 바꾸면 생각자체가 위선이 됩니다.
그래서 넓게 보고 깊이 생각해서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함부로 생각을 말로 옮기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번의 생각을 다방면으로 해보고 생각을 말로 옮겨야 합니다. 생각은 바꿀수 있지만 한번 떠난 말은 떠나간 세월처럼 다시 담을수 없습니다. 실천할 수 있는 말만 정직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니 언행일치로 정직하게 선을 실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선을 실천한다며 위선을 저지르는 멍청한 짓을 합니다. 의도, 과정, 결과가 모두 정당해야 합니다.
말을 전혀 안해서 사람들을 놀랬키는 행위도 위선입니다. 실천하기 힘들고 어렵다고 적당히 말하는 것도 위선입니다. 말을 하고도 안한척 하는 것도 위선입니다.
말을 너무 많이 해도 너무 적게 해도 위선입니다. 아는 것은 안다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해야 합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내 탓이요 내탓이요 내 큰 탓이옵니다!’ 천주교에서 신앙고백을 할때 나오는 귀절입니다. 위선을 죄라고 표현했습니다. 생각, 말, 행동이 일치가 될때가 삼위일체일겁니다.
싫어하는 사람에게 미소를 띄웠는데 측은지심이 든다면 선을 행한 것이고 마음 속에서 화가 치민다면 위선을 행한 겁니다. 자신의 그릇을 모르고 선을 행하려고 하면 위선이 됩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그릇이 있습니다. 자신 그릇의 크기를 먼저 알아내는 것이 첫째고 그 다음이 그 그릇의 크기를 키울 것인지 어떻게 채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두번째입니다.
자신의 그릇을 아는 사람은 선을 행할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그릇크기를 모르면 자신도 모르게 위선적인 행동을 저질르게 됩니다.
위선자가 넘치는 세상?
위선자의 대부분은 의도는 좋았지만 방법의 선택이나 실천력의 부족으로 실패를 하게됩니다. 지속적으로 실패를 한다면 방법을 바꾸거나 다른 일을 시작해야 할텐데 실패한 방법을 고집한다면 나쁜 놈보다는 실패자가 될겁니다.
실패자가 오갈 곳 없어서 나쁜 놈들과 어울리게 된다면 그때는 나쁜 놈이 되는 겁니다. 만일에 위선자가 자신의 과거를 덮고 싶다면 결국은 나쁜 놈들과 결탁해야 합니다. 위선자가 자신의 위선을 밝히지 않으면 나쁜 놈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집니다.
그런데 위선자가 실패도 하지 않고 과거도 덮지 않고 잘살수 있다면 위선자가 들끊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위선자가 잘 살고 그것을 처세술이라고 말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위선을 행한다는 것은 악, 즉 나쁜 짓을 한다는 것도 포함하겠지만 크게는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일 겁니다.
언행일치에 종심(從心)
– 두산백과사전 펌
《논어(論語)》〈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孔子)가 "나이 일흔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았다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고 한 데서 유래한다. 이에서 연유해 뒤에 나이 일흔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공자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고, 30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 40세에는 미혹됨이 없었고, 50세에는 하늘의 명을 알았으며, 60세에는 귀가 순하여 남의 말을 듣기만 하여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어70세에 이른 뒤의 성취를 표현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이다.
50세의 지천명(知天命)과 60세의 이순(耳順)을 거쳐 공자가 최종적으로 도달한 성인(聖人)의 경지를 이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종심'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혹은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여도 어떤 규율이나 법도·제도·원리 등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행하든 일정한 법도가 있었다는 뜻이니, 바로 유교에서 말하는 '성인지도 (聖人之道)'를 이름이다.
재물없이 베풀수 있는 7가지 보시
보시라고 하지만 그릇을 키우고 종심을 얻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和顔施(화안시) -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대함
和顔悅色施(화안열색시) - 자비롭고 미소띤 얼굴로 사람들을 대함
言辭施(언사시) -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로 사람들을 대함
身施(신시) - 내 몸을 수고롭게 하여 남들을 대함
心施(심시) - 착하고 어진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함
床座施(상좌시) - 다른 사람에게 기쁜 마음으로 자리를 양보함
房舍施(방사시) - 잠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방을 내어주고 친절히 대함
위선의 7가지 보시
수지시(隨至施) : 요구하기에 거절할 수 없어서 마지못해 베푸는 보시
포외시(怖畏施) : 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올지 몰라 베푸는 보시
보은시(報恩施) : 이전에 받았던 은혜를 갚고자 베푸는 보시
구보시(求報施) : 반대급부를 기대하고서 베푸는 보시
습선시(習先施) ; 선례가 있어서 할 수 없이 따라 하지 않을 수 없는 보시
희천시(希天施) : 베품으로서 내세나 후광을 기대하며 베푸는 보시
요명시(要名施) : 스스로의 명성을 높이고자 베푸는 보시
소인이 되서 돈 안드는 보시도 잘 안합니다, 대신 주위사람들이 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보시는 예의라고 생각하고 멋있게 보이려고 합니다. 하면서 피곤하고 하고 나선 후회합니다.
안과 밖이 다르면 위선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안과 밖이 다른지도 모르면 위악이 됩니다.
위선의 보시를 다시 읽어보니 세일즈 테크닉이네요… 참 세일즈가 어렵긴 한가봅니다. 위선자가 되어야 잘 할수 있는 것이 세일즈입니다. 그런데 재물없이 베풀수 있는 보시를 다시 읽으니 책에서 읽던 진짜 좋은 세일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