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86: 공부의 종류에 대해서
공부 (工夫):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
살면서 최고의 공부는
살면서 최고의 공부는 인생 자체라고 합니다. 살다보면 알게 되고 알만 해서 열심히 한번 살아보려고 하면 아시죠! 그래서 좋은 조언을 유언이라고 남기려고 하지만 인생을 아직 다 경험해보지 못한 자녀들에게 인생을 이야기 한다는 자체가 모순이기에 말하기는 답답하고 그렇다고 안하기도 섭섭하고.
공부의 종류
기본인 사랑과 신뢰를 배우는 집안교육
o 어릴때는 사랑을 자라서는 신뢰를 집안어른에게 배움
o 대가족제도와 제사등 집안대소사들이 다 공부
o 조선시대때 소학공부는 행동을 중심으로
사회에 나서서 사용 할 기술을 배우는 학교공부
o 지식과 기술을 배웁니다
o 사회에 나가서 실천을 해야하므로 꾸준한 대련도 필요
집안교육과 학교공부를 실천으로 옮기는 인생공부
o 사회에 나서면 학교공부에서 못하던 나머지 공부를 시작해야 합니다
수련/대련의 방법
생각 전달하기
o 상대방이 이해를 못하면 공부/수련이 함께 부족
o 대화능력은 듣기능력과 동일
생각을 행동으로 옮김: 실천
o 오해나 곡해가 발생하면 수련부족
o 결과가 안좋으면 실천력의 부족함
§ 실천력의 시작은 작은습관으로 부터
글쓰기
o 전혀 상관없는 댓글이 적혔을 때 공부 부족
o 댓글에 화가나면 수련이 한참 부족함
물론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오해 할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도 자신의 잘못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상황과 수준에 맞추지 못했을 수도 있고 지금 행동은 잘못된 것이 없었는데 과거에 잘못된 행동으로 신뢰구축이 미숙할 수도 있습니다. 다 자신의 잘못입니다. 이럴때 부덕의 소치라고 하나 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신뢰해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기다림을 배우는 것이 진짜 공부의 진미가 아닐까 합니다.
대련이 필요한 이유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가듯이 공부, 수련, 실천도 진학을 합니다. 진학을 하려면 졸업장도 필요하고 졸업장을 받으려면 시험도 통과해야 합니다. 태권도를 배운다면 승단시험도 봐야 하고 대련도 해야 합니다. 그렇데 많은 사람들이 대련을 피합니다. 대련이 필요없다고도 합니다.
대련을 해봐야 자신을 알수 있습니다. 너무 잦은 대련이나 고수와의 무리한 대련은 피해야 하지만, 대련은 자신보다 한단계 높은 사람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배울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멘토의 중요성을 알게 됩니다.
실천만으로 알수 있는 것
수련을 통하면 자신의 실력을 검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련으로도 알수 없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것이 평상심, 심리전입니다.
실전에 들어가야 알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심리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심리전입니다. 심리적으로 힘들면 고행이고 안정된 심리를 가지고 있으면 행복이 충만해집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어도 실전에서 실력을 발휘못하면 헛 것입니다. 그래서 수련을 통해 경험을 얻어야 하지만 실전만한 수련은 없습니다.
그래서 연습을 시합처럼 시합을 연습처럼 하면 심리를 안정시켜야 합니다. 심리도 근육처럼 훈련시켜야 하는데 그것이 실전입니다. 그래서 공부하고 수련하고 실천하는 삼단계를 통해서 성장을 해야 합니다.
사이클 1과 2
사이클 1: Knowing – Experiencing – Being
사이클 2: Being – Doing – Having
자신을 아는 것이 사이클 1입니다. 공부하고 경험해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사이클 1 그리고 수련과 실천을 통해서 만들어가는 사이클 2.
실천을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었다면 그 경험으로 더 큰 공부가 된 것이고 더 큰 실천을 가능케 합니다.
사이클 1과 2가 합쳐져서 Becoming이 됩니다. 그래서 인생공부에서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인생자체가 경험이고 공부이며 실천입니다.
물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면 낭비일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낭비처럼 보였던 것도 다 공부였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 중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자왈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치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해설> - 신영복교수
학(學)과 사(思)는 어떠해야 하는가? 제가 어렸을 적에 저의 할아버지께서 이 구절을 설명하시기는 1시간 책을 보면 30분 정도는 읽은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감옥에서 이것을 다시 읽었을 때는 할아버지께서 틀렸어요.
저는 사(思)를, 밭(田)의 마음(心) 즉 실천의 의미로 읽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구절이 해석될 수가 없습니다. '이론(學)만 있고 실천(思)하지 않으면 어둡고, 실천(思)만 하고 이론(學)이 없으면 위태롭다.' 실천은 조건적이고 특수한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에 보편성에 대한 이론적 이해가 없으면 상당히 위험합니다. 학(學)과 사(思)의 균형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석을 해석: 비보이와 김연아
실천이란 몸으로 때우는 겁니다. 동양이 서양에게 지난 200년간 망신을 당했습니다. 망신을 당한 이유는 실천의 부족으로 발생했습니다. 기독교란 종교적 한계를 벗어나려고 서양의 지식인들은 과학에 집중을 했습니다. 그리고 과학에서 나온 이론을 증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과는 괄목할만한 물질적 발전이였습니다. 무기와 지식으로 무장한 서양인들은 무자비하게 다른 민족에게 자신들의 힘을 증명했습니다. 다른 민족들이 정신세계가 부족해서 굴복당한 것이 아니고 물리적인 힘의 부족으로 어쩔수없이 망신을 당했습니다.
비보이는 춤으로 승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춤이라고 하면 흑인들이 당연히 잘할것 같은데 한국인 비보이는 최고입니다. 예술과 운동의 종합인 피겨스케이팅에서 김연아는 최고입니다. 그리고 요새 한류를 이끄는 많은 아이돌도 있습니다.
한국이 선진국 문턱에 있는 이유는 몸으로도 다른 민족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공부의 시작은 독서및 학습이지만 결과는 물질적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가끔 한국 어른들이 젊은이들이 공부를 안한다고 걱정을 하시는데 쿵푸라는 단어는 중국 발음이라서 그렇지 한자로는 공부입니다.
중국식 공부는 DO입니다. 무엇이던지 하면 공부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공부는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것도, 스케이팅을 연습해도, 춤추는 것도 공부입니다.
모든지 열심히 하면 좋은 공부입니다. 그렇다고 항상 결과가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실천력의 부족이므로 좋은 결과가 나올때까지 다시 공부하면 됩니다. 좋은 결과는 좋은 습관에서 출발하고 좋은 습관은 아주 작은 습관서부터 시작됩니다. 습관은 소학인 집안교육의 소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