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차가타이 칸국와 티무르 제국 (중앙 아시아)
칭기스 칸의 차남인 차가타이가 칭기스 칸에게 물려받은 영토를 바탕으로 세운 현재의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 지역에서 중앙아시아에 걸쳐 있던 몽골계 유목민족 국가이다. 1370년 차가타이 칸국내의소부족 출신인 티무르에 의해 멸망당했지만 차가타이 칸국을 계승한 동차가타이 한국(모굴리스탄칸국)은 18세기 초에 중가르에 의해 멸망당할 때까지 존속했다.
차가타이 칸국의 독립
초기의 차가타이 칸국은 칭기스 칸이 세운 몽골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고 독자적인 권력을 인정받지못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차가타이에 이어 칸위를 계승한 카라 훌레구, 예수 몽케, 무바라크 샤는모두 몽골 제국의 대칸에 의해 해임됐던 것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사실상 몽골 제국의 마지막 대칸이었던 몽케 칸이 죽은 후인 1260년에 즉위한 알루구(Alghu)는 중앙의 아리크 부케에게 반기를 들며 독자적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오고타이 칸국과의 대립
아리크 부케에게 반기를 든 알루구는 곧 아리크 부케의 지원을 받고 있던 오고타이 칸국의 하이두와 맞서게 됐다. 1266년, 알루구의 뒤를 이어 칸위에 오른 바락(Baraq)도 하이두와의 전투를 계속했다. 3년간의 격렬한 전쟁으로 바락과 하이두는 모두 심대한 피해를 입었고 결국 1269년에 잠시휴전할 것에 합의했다.
바락과 휴전한 하이두는 바락을 궁지에 빠뜨리기 위해 바락에게 일 칸국을 공격할 것을 종용했고지원군을 보냈다. 1270년 바락은 이 제안에 넘어가 먼저 일 칸국을 공격했지만 하이두의 지원군이그를 배신하면서 일 칸국의 군대에게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1년 뒤인 1271년에 바락은 죽고 차가타이 칸국은 오고타이 칸국의 속국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 하이두는 이름뿐인 칸들을 즉위시켜 차가타이 칸국을 완전히 장악했다. 하지만 곧 바락의 아들인 두아(Duwa)를 비롯한 왕족들의 반란이 일어났고 차가타이 칸국의 지배에 어려움을 느낀 하이두는 두아와 타협하여 그를 칸위에 올렸다.
두아는 영리한 인물이었고 자신을 칸위에 올린 하이두와 협력하며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1301년, 차가타이 칸국의 숙적인 하이두가 사망하였다. 하이두가 사망하자 두아는 즉시 오고타이 칸국의 칸위 계승 분쟁에 개입하여 1303년에 하이두의 장남인 차바르를 칸위에 올린 뒤 원을 비롯한 모든 칸국들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평화협정은 오래 가지 못했다. 평화협정이 체결된 지 3년이 지난 1306년에 두아는 원나라의 정종과 연합하여 오고타이 칸국을 공격, 칸인 차바르를 추방시키고 원과 함께 오고타이 칸국의 영토를 나눠가졌다.
분열과 몰락
오고타이 칸국을 멸망시킨 두아 칸 이후에 즉위한 에센부카 칸과 케벡 칸에 의해 차가타이 칸국은약 20여년간 중앙아시아의 분쟁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아유르바르와다는 일 칸국의 울제이투과 동맹하여 원나라를 공격한 차가타이 칸국의 에센 부카 1세에 대항하였다. 1316년 그는 에센부카를 격파하였고 에센부카의 사후에 케벡이 원나라와 화의하였다.
하지만 케벡 칸이 사망한 1326년(혹은 1325년) 이후 차가타이 칸국의 국세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각 유목 부족들은 독자적 권리를 행사하며 서로 분열하였고, 칸은 부족장들에 의해 추대되고부족장들에 의해 쫓겨났다. 여기에 차가타이 칸국의 이슬람화로 인한 이슬람교와 전통 종교인 불교-샤머니즘 간의 갈등까지 더해지면서 차가타이 칸국은 나락으로 치달았다.
지금의 신장 지역에는 유목민들의 세력이 강했고, 마 와라 알나흐르 지방에는 정주 세력이 더 강했다. 전자는 스스로를 ‘모굴인’이라고, 후자는 스스로를 ‘차가타이인’이라고 칭했다. 모굴인들은 차가타이인들을 ‘카라우나스’, 즉 혼혈아라 불렀고, 차가타이인들은 모굴인들을 ‘자타’, 즉도적이라 부르며 적대했다.
마침내 1348년, 현재의 신장 지역인 차가타이 칸국 동부 지역의 유력 가문인 두글라트부에서 투글루크 티무르(Tughlugh Timur)를 옹립하면서 차가타이 칸국은 동서로 분열되고 말았다. 동차가타이 칸한국(=모굴리스탄 칸한국)의 첫 번째 칸이 된 투글루크 티무르가 잠시 차가타이 칸국을 통합하고여러 부족의 아미르들을 격파하기도 했지만 이 일시적 통합은 그가 죽은 1363년에 붕괴되고 말았다.
투글루크 티무르에 이어 차가타이 칸국을 장악한 것은 발라스부의 아미르, 티무르였다. 투글루크티무르에 의해 아미르가 된 티무르는 다른 여러 부족들을 제압한 뒤 1370년에 서차가타이 칸국을장악하고 티무르 왕조를 세웠다. 티무르 왕조가 설립된 이후에도 차가타이 칸국의 칸은 1402년까지명목상으로 존재하지만 사실상 차가타이 칸국은 1370년에 멸망을 고했다.
티무르 제국(우즈베크어:Temuriylar)
14세기 후반 서차가타이 칸국 출신의 티무르는 스스로를 칭기즈 칸의 후손이라 칭하고 몽골 제국의재건을 기도했다. 그는 사마르칸트에 도읍하고 1380년 카르토 왕조를 멸망시킨 뒤, 1393년에는 자라일 왕조의 군주 아마드를 바그다드에서 몰아냈으며 동서 차가타이 칸국·일 칸국을 병합하였고,킵차크 칸국과 북인도에 침입했다. 이어 소아시아 방면에서 일어난 오스만 투르크를 앙카라에서 격파해 구몽골 제국의 서반부를 영유하는 제국을 건설했다.
중앙아시아의 트란스옥시아나(현재의 우즈베키스탄 중앙부)에 발흥했던 몽골 제국의 계승 정권중 하나로서, 중앙아시아부터 이란에 걸친 지역을 지배했던 이슬람 왕조(1370년~1507년)이다. 전성기의 판도로 북동쪽은 동투르키스탄, 남동쪽은 인더스 강, 북서쪽은 볼가 강, 남서쪽으로는 역사적 시리아・아나톨리아 방면까지 이르러, 과거 몽골제국의 서남부 지역을 제패했다. 창시자인 티무르 재위 중에 티무르 제국이라 불렸다.
왕조의 시조 티무르는 차가타이 칸국을 섬기는 발라스부의 출신으로 언어적으로 투르크화하고, 종교적으로는 이슬람화했던, 몽골군인(차가타이인)의 일원이었다. 티무르의 정복으로, 앞서 말한대판도를 구가하지만, 그의 사후에 자손들에 의하여 제국은 분할되었기 때문에 급속하게 분열하고축소되어, 15세기 후반에는 사마르칸트와 헤라트의 두 정권이 남았다. 결국 16세기 초에 우즈베크의 샤이반 왕조에 의해 중앙아시아의 영토를 빼앗겨 멸망했다.
티무르는 명의 정벌을 기도했으나 원정 도중 오트라르에서 병사했다. 티무르의 사후 왕실의 상속싸움이 계속되었는데 샤 루흐 시대에 일시 번영을 되찾았다. 하지만 울루그 베그 사후 제국의 분열이 표면화되어 사마르칸트와 헤라트에 각각의 정권이 세워져 대립하였다. 결국 우즈베크족의 침입으로 1500년에는 사마르칸트가 함락되고, 7년 뒤 헤라트도 함락되었다.
수도인 사마르칸트는 국제적인 상업 도시로서 번영하여 왕년의 바그다드를 능가할 정도로 번영했다. 예술·문화면에서는 이란 문화의 영향이 강하고 역대 군주의 보호 및 장려에 의해서 티무르풍의 이슬람 문화가 발달했다. 건축 양식에서는 중국식의 탑과 유목 민족의 천막을 조합한 독특한 사원이 만들어졌고, 회화에서는 이란풍의 미니아튀르(세밀화) 예술이 발달했다. 이란 문학에서는 시인 자미의 이름이 가장 알려졌고 아라비아 수학·천문학·의학· 지리학·역사학 등도 발달하여 이슬람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다른 글들
https://steemit.com/kr/@thomaslee101/1240-1502 킵차크 칸국 (중앙아시아 북부와 동유럽 1240-1502)
https://steemit.com/kr/@thomaslee101/2grcrg-4 칭기스칸 사후 (원의 탄생과 4개의 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