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 대해서: 믿음 (믿습니까!: 왜 물어보는데?)
기독교에서는 원죄의 교리가 있습니다. 언제부터 원죄가 시작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에게 원죄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인이고 회개해야 한다고 합니다.
죄가 있다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아야 반성도 하고 회개도 할텐데 잘못을 한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하여만 마음만 뒤숭숭합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중에 ‘너! 나 믿지, 듣고 있어, 잘 들어봐…’ 같은 반어법이 있습니다. 너! 나 믿지라는 말은 혹시 믿지 않을까봐 겁이나서 확인하는 말이고, 잘 들어봐라는 말은 잘 안들으니까 하는 말이고, 듣고 있어라는 말은 알듣고 있으니까 하는 말입니다.
신자들에게 ‘믿습니까!’ 외치는 목사님은 ‘왜 믿지 못하냐고 ‘ 신자들에게 야단을 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목사님이 신자들을 믿지 못하니 신자들도 신을 믿지 못하는 악순환이 지속됩니다.
죄명이나 알고 죄인이 되자!
나는 대화를 좋아합니다. 잘하지도 못하면서 좋아합니다. 언젠가는 잘할 것이라는 믿음은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하고 자주해서 잘할려고 합니다.
이것이 내가 대화를 잘못하는 원죄입니다….
감독들은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영화나 드라마 중간에 주인공이 누군가와 중요한 대화를 합니다. 그 대화 속에 감독/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과 덕만공주의 대화가 크라이맥스고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주인공 니오와 오라클의 대화가 흥미롭습니다. 좋은 영화는 대화만으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데 가끔 관객들이 못 알아들었을까 염려하여 영화 마지막에 덤을 주는 모자라는 감독도 있습니다. 그럴때는 주인공이나 주인공의 친구가 독백으로 풀어줍니다. 조금 짜증이 납니다.
선덕여왕 중에서
미실: 백성은 진실을 부담스러워하고 희망을 버거워하며 소통은 귀찮아하고 자유를 주면 망설입니다.
나는 이것보다 더 큰 진실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백성은 지배자가 떡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더 큰 떡을 주는 지배자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진실을 이야기 할때는 아주 조금씩 천천히 소통은 될수 있으면 하지 말고 지시를 하면 됩니다. 희망을 이야기 하지말고 꿈을 던져주면 됩니다.
미실은 덕만에게 희망은 더 교활한 환상이라고 말했습니다. 환상이 안이루어지만 다른 환상을 꾸면 되지만 희망이 실패하면 다른 희망을 꾸기 너무 힘듭니다.
매트릭스 중에서
모피우스가 니오를 오라클에게 데리고 갑니다.
Oracle: You know what I am going to say.
Neo: I am not the one. Morpheus almost convinced me I am the one
Oracle: I am sorry. You have the gift. But you’re waiting for something, next life maybe.
덕만공주와 니오는 대화와 경험을 통해서 성장을 합니다. 자신이 할수 있을까 끝없는 의심이 있었지만 자신들의 멘토와 대화를 하며 자신들이 할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고 경험을 통하여 알게 됩니다.
책 신과의 대화 중에서
You can not get there. You can only be there.
Do not, therefore, ‘try to believe’ that you can do these things. Try instead to move to a state of total awareness. Then belief will no longer be necessary. Complete knowing will work its wonders.
해탈 (Complete knowing): 믿음이 필요하지 않는 상태. 설명이 필요없고 그냥 행하여라!
나의 죄명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할수 있다고 믿으며 같은 순간 의심을 합니다. 한번도 온몸과 온마음으로 믿은 적이 없습니다. 아무런 의심없이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는 나를 의심합니다.
수 많은 성인들이 책과 행동으로 전해주셨고 예수님이 오셔서 진실을 말씀하시고 행하셨지만 의심했고 반신반의했습니다. 이것이 나의 원죄입니다.
Do not try to believe, just do!
모자란 인간이기에 하지 못하고 노력만 한다는 변명을 합니다. 예수가 인간의 몸을 통해서 태어난 이유는 인간도 할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아닐까요? 인간인 예수도 했으니 당신 모두도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사람의 아들이며 동시에 신의 아들입니다.
토마스: 이렇게 열심히 믿으며 노력하면 신계서 계시를 주실것이다. 그때까지 열심히 믿으며 기다리자!
신: 지금까지 많은 성인을 보내주었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를 보내주었다. 신호를 이렇게 많이 주었는데 뭘 기다려!!!! 그냥 하면 된다!
나의 자녀들이여! 자녀들이 하고 싶은 것 얻고 싶은 것을 이미 다 주었다. 이제 기다리지말고 지금 이순간부터 받아들여라!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