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61: 결핍에 대해서
불완전연소를 만드는 결핍
지금까지는 제대로 살지 못하고 결핍된 삶을 살았습니다. 기쁠때도 아쉬웠습니다. 이상하게 결핍을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천만원이 있어서 이렇게 행복하니 1억이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과장이 되서 이렇게 좋으니 부장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예를 들만 끝도 없을 겁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며 감사할 줄 모르고 더 많은 것을 생각하며 행복하지만 마음 안에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먹을때 즐겁게 먹고 잠잘때 푹 자야 충만한 삶일텐데 먹으면서 더 먹고 싶고 마시면서 갈증을 느꼈습니다. 가진 것을 완전히 즐기기 못하고 갈증을 느끼는 안타까운 삶입니다. 완전연소가 되야 앙금이 남지 않는데 불완전연소가 되니 몸에 안좋은 이산화탄소가 발생합니다.
천만원의 행복을 즐기지 못하고 9천만원의 부족함이 아쉽고 1억 가진 사람의 행복이 부러웠습니다.
부정스런 안티는 버려라!
성녀 테레사 수녀님은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전쟁반대 시위에는 참석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평화행진에는 참가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으나 정확한 뜻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전쟁반대와 평화행진의 차이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습니다.
전쟁반대를 하려면 일단 전쟁이 벌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대신 평화행진은 언제나 할수 있습니다. 전쟁반대를 하려면 마음 속에 전쟁에 참혹함이 떠오릅니다. 대신 평화행진을 생각하면 모든 사람들이 조화 속에 공존하는 것을 떠올릴수 있습니다.
평화에 반대는 불화입니다. 평화는 평온하고 화합스러운 상태이지만 불화는 불편한 상태입니다. 물론 불화가 깊어지면 싸움도 나고 전쟁도 발생할 수 있지만 평화의 반대가 직접적으로 전쟁은 아니라는 말씀을 들이고 싶습니다.
긍정적인 결과를 원한다면 부정적인 시작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은 생각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행복하고 싶다면 불행이나 결핍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아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을 원하다면 현재 즐길수 있는 행복을 즐기면 되지 혹시 이러다가 불행해지지는 않을까, 더 행복할 수는 없을까, 다른 사람은 더 행복할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은 누릴수 있는 행복을 반감시킵니다.
고행 안에는 고행이
고행을 하면서 행복을 느낄수는 없을겁니다. 고행을 하면서 더 이상 고행이 아니라고 깨우친다면 행복을 느낄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고행을 하면서 자신과의 싸움이나 도전이니 하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자신과 싸워서 이기면 누가 누구를 이겼다는 것인지 그리고 자신에게 도전을 한다면 이미 자신이 챔피언이라는 이야긴데 챔피언이 누구에게 도전을 한다는 것인지!
고행은 육체적인 욕망을 누르고 최고의 정신상태를 수행하는 것인데 몸이 아픈데 즐거울 수가 있을까요?
싯달타는 출가 후 첫 스승 알라마 칼라마으로 부터 선정주의를 배웁니다. 선정주의란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번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고 해서 지속적으로 지키기 힘들어 다음 스승님을 만납니다.
두번째 스승인 웃타가 라마풋타는 무념무상의 가르침을 받습니다. 마음의 평화와 무념무상을 배웠지만 인간의 고뇌에 대한 해결책은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몸을 괴롭히는 고행을 몇년동안 수행합니다. 고행으로도 깨달음을 찾지 못하던 싯달타는 보리수 및에서 명상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습니다. 깨달은 사람/깨어있는 사람이라는 부처로 다시 탄생합니다.
고행 안에는 고행이 그리고 결핍 안에는 결핍이 존재합니다. 있는 것을 즐기고 나머지는 잊어 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