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60: 노력한 만큼 좌절하고 절망함에 대해서
꼴찌에게 박수를 보낼때
지금은 그 기분이 기억도 나지 않지만 풀마라톤을 15년전쯤에 뛴적이 있습니다. 조깅을 시작해서 2년쯤 지나서였습니다.
마라톤을 뛸때 길거리에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쳐줍니다. 일등서부터 꼴등까지 박수를 받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이름을 불러줍니다. 번호판에 이름이 적혀있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이름을 불러줄 때 힘이 납니다.
특별히 풀마라톤을 완주하고 감동은 없었습니다. 항상 나는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조깅을 시작할때 자전거및 운동을 2년정도 해서 별로 힘들지 않게 적응했고. 가까운 커뮤니티헬스센터에서 조깅기본을 2달 배운 것도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힘이 안들었다고 할수는 없지만 재미도 있었고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며 별로 힘들지 않게 마라톤완주를 하고 난 후 조깅에 대한 흥미가 줄어들고 이제는 산보를 주로 하게 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열심히 조깅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때 기분이 기억납니다. 조깅을 하다보면 남들보다 열심히 하는데 실력이 상승 안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히프가 너무 발달했거나 비만이면 일단 몸무게를 줄여야 하는데 몸무게 줄이는 것 자체가 어렵고 히프가 발달하면 참 힘듭니다. 그런데 비만이면서 히프가 발달한 사람이 풀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을 보면 진짜 감동입니다. 그럴때 꼴찌에게도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절망한 만큼 성장한다
탁구 국가대표선수였으며 태릉 선수촌장이였던 이에리사는 "선수는 딱 자기가 노력한 만큼만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죽을 만큼 노력하지 않은 선수는 깊이 절망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진짜 도전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인생에서 성공이 전부는 아니며 꼴찌들도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런 박수갈채는 깊이 절망할 만큼 최선을 다한 꼴찌, 실패한 뒤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꼴찌, 다음을 기약하며 절치부심하는 도전자 꼴찌들의 몫일겁니다. 그러나 인생에서나 스포츠에서나 대부분 절망을 느끼지 못하는 노력만큼 하는 것 같습니다.
폴마라톤을 완주하고 기쁘지 않았던 것은 준비하면서 절망을 못느껴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절망하지 않았다는 것은 죽을 만큼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일겁니다. 진짜 노력했는데 실패했다면 절망감도 깊겠지만 허망하지는 않을겁니다.
절망해 본 적 있습니까?
절망할만큼 노력해야 하고 목표도 높히 잡아야 하는데 이룰수 있는 목표만 정해놓고 적당히 살다보면 절망이 무엇인지 모르고 평생을 살지도 모르겠습니다.
꽤 높은 목표를 정해놓고 온탕/냉탕을 몇년 간 왕복하고 있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이 절망인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절망 안에 있으면 절망인지 모르겠죠!
바다 속에 고기가 바다를 떠나야 바다가 무엇인지 알듯 절망도 벗어나야 절망 안에 있었는지 알겁니다.
절망을 먹는 불가사리: 희망
베스트 셀러 반열에 올라간 "성공" 관련 책의 저자들은 열에 아홉은 바닥을 쳤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두운 바닥을 서성이면서 자신의 무능함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을 것이고, 그 절망 속에서 단 한가닥의 희망을 길어 올렸을 겁니다. 그렇게 끄집어낸 "어떤 것"이 그들을 하늘로 날아오르게 만들어 주었을겁니다. 희망은 언제나 절망 속에서 탄생합니다.
절망은 희망으로 가는 길목 위에 놓여있지만 포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포기는 "죽음"으로 달려가는 지름길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포기"한 다음, 그 상태를 뻔뻔하게도 "절망"이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절망해라. 어쭙잖은 희망 갖지말고 밀치고 올라가야 할 단 한가지 희망만 붙잡으라고 합니다. 이런 경험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바닥인지 알았더니 지하 3층까지 또 내려가 보고 ‘이제 이게 마지막이다’ 하고 악을 쓰며 지하 3층에서 올라왔더니 지나가던 덤프트럭에서 흙더미가 쏟아져 덮치는 절망감에 빠지게 되는 경험. 그때 그 흙들을 바닥에 다지며 지하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때는 몰랐섰지만 그 흙더미는 희망이였다고!
절망하는 사람에게 최대의 독약은 과거를 생각하는 겁니다. 왜 그랬을까? 절망하는 사람은 그냥 열심히 자신 앞에 쏟아진 흙더미를 치우면 됩니다. 치우다보면 길이 보이고 길은 희망이 됩니다.
파도가 가르쳐준 교훈: 어떤 여작가의 경험
두 아들과 함께 미국 LA에 살 때, 남편이 한국에서 주식투자를 했다가 쫄딱 망했다. 1원도 남지 않고 폭삭 망했다. IMF로 세상이 지옥처럼 변해버린 1998년이었다. 그 충격을 도저히 이겨낼 방법이 없던 나는 무작정 하와이행 비행기를 탔다. "물에 빠져 죽어야겠다."
오아후섬 북쪽에 터틀베이라는 해변이 있었다. 파도가 거칠기로 유명한 바다다. 밤이 이슥할 무렵 정신을 놓아버리고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죽는다, 나는.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가슴 울컥한 일이 벌어졌다. 한 걸음을 바다로 들어가면 파도가 나를 뒤로 되돌려놓는 것이다. 그 힘이 얼마나 센지, 온몸이 멍이 들 정도였다.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다니, 화가 났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나는 백사장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그 바다가 나더러 살라고 격려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마치 나를 세상으로 떠밀어주며 살라고 고함을 지르는 것 같았다. 나는 완전히 기력이 빠진 몸과 황홀한 부활의 의지를 안고 터틀베이를 떠났다.
며칠 뒤 푸나후스쿨이라는 학교를 찾았다. 한 해 수업료가 1만달러가 넘는 좋은 사립학교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다닌 학교다. 해마다 봄이면 푸나후스쿨에서는 축제가 벌어진다. 축제 마지막 날 벼룩시장이 열리는데, 1달러를 주고 커다란 대봉투를 사면 시장에 나온 모든 것을 욕심껏 봉투에 담아갈 수 있다. 숟가락, 신발, 옷, 냄비, 밥솥, 프라이팬에 아보카도와 파인애플까지.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부자들이 아무 조건 없이 내놓은 것들이다. 가난한 나는 거기에서 내게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었다. 그 속에는 희망도 들어 있었다. 이제 다시 사는 거다.
그리고 무작정 하와이의 한 방송국을 찾아갔다. 한국에서 20년 동안 방송작가로 일한 경력을 보고 일자리를 줬다. 마침 한류 열풍이 하와이에 상륙한 때라, 하와이대학에서 드라마 강의도 맡았다. 그때 한 교수가 하와이에 온 이유를 물었다. "너무 절망해서 죽으려고 왔다"고 했더니 그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인생의 밑바닥까지 가보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생각하라"고. "절망의 밑바닥, 그거 언제 가보겠는가. 게다가 당신은 작가가 아닌가. 인생의 밑창을 경험해야 좋은 글도 나오는 것이다"라고.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을 찔렀다.
죽으러 갔던 섬에서 나는 5년을 더 살게 되었다. 아들들은 LA에서 공부를 마치고 성인이 되었고, 나는 제2의 생을 하와이에서 창조하며 살았다. 지금은 실리콘밸리 IT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큰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혹독한 비바람 지나고 나면 절망도 추억이 된다. 살아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축복이고, 한없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