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 똥볼을 찰 기회 (욕심, 그릇 그리고 꿈)
초한지의 후흑학
진나라 말기에 이르러 진승.오광이 반란을 일으키자 각지에서 군웅이 봉기하였으며, 유방도 향리의지도자와 청년층의 추대를 받아 진나라 타도의 기치를 높이 들고 군사를 일으켜 패공이라 칭하였다(BC 209). 이듬해 북상하여 항량·항우의 군대과 만나 연합세력을 구축하였다. 그뒤 항우의 군대가동쪽에서 진군의 주력부대와 결전을 벌이는 사이, 그는 남쪽으로 관중을 향해 진격을 계속하여 항우보다 앞서 수도 셴양을 함락시키고, 진왕 자영의 항복을 받았다. 또 진나라의 가혹한 법률을 폐지하고 법삼장을 약속하여 인심을 수습하였다.
약 1개월 늦게 셴양에 도착한 항우가 유방을 살해할 목적으로 이른바 '홍문의 회'에 불려가 목숨의위협을 받았지만 부하인 장량과 번쾌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진나라가 멸망하자 항우는 서초패왕이라 칭하였고, BC 206년 유방은 항우로부터 한왕에 봉해졌다. 그뒤 4년간에 걸친 항우와의쟁패전에서 소하·조참·장량·한신 등 유능한 신하와 장수들의 보좌를 받아 마침내 해하의 결전에서 항우를 대파하고 중국 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다. BC 202년 유방은 황제에 오르고 수도를 장안으로 정하였다.
한나라 개국에 공이 큰 장수와 부하를 제후왕과 열후로 각지에 봉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이들은 모두 제거되거나 쇠망하고 왕실일족 출신으로 대체되어, 제후왕은 한실일족 출신자에 한정된다는 불문율이 성립하였다. 유방은 서민 출신이었으나 성격이 대담하고 치밀하며 포용력이 있어, 부하를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데 능숙하였으므로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항우는 유방과 중국 천하를 두고 경쟁하였는데 팽성전투에서 고작 5만 명의 군사로 56만 명의 유방군사를 무찔렀다. 하지만 수하의 장수들이 항우의 노여움을 두려한 나머지 한왕 유방에게 투항하는일이 생겼고 유방은 주변 세력을 연합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때문에 항우는 점점 고립되기 시작했다. 적과의 전투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지만 그의 마지막 전투인 해하에서 한왕 유방과 명장한신에게 포위되어 자살하였다. 이때 그가 사랑했던 여인 우희와 헤어지는 모습을 두고 패왕별희라는 고사가 전해진다. 항우를 두고 후대의 사람들은 항우는 병법에 뛰어나고 힘이 장사였지만 정치적으로는 미숙한 인물로 평가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항우 [項羽] (두산백과)
유방이 더 욕심이 많았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유방은 서민 출신이었으나 성격이 대담하고 치밀하며 포용력이 있어, 부하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데 능숙하였으므로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패도가 먼저
중국 청말 이종오가 발표한 후흑학(厚黑學)이란 게 있습니다.
얼굴이 두꺼워(厚顔)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無恥)과 뱃속이 검어서(黑心) 뻔뻔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성공의 첩경이라고 가르친 학설입니다.
기본취지는 ‘후흑구국’에 있습니다. 16세기 초 마키아벨리가 조국인 피렌체 공화국을 교황 및 외국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독립시킨 후 이탈리아반도 통일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군주론을 저술한 것과 같은 취지입니다.
후흑구국은 마키아벨리의 주장처럼 난세의 위정자가 통상적인 도덕률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원전 격에 해당하는 한비자와 손자병법 등을 탐독했고 그밖에 논어와 맹자, 순자 등의 제자백가서를 포함해 24사(史) 등의 사서를 두루 살핀 뒤 마침내 구국의 비책으로 찾아낸 게 바로 ‘후흑’입니다.
난세의 시기에는 늘 삼국시대의 조조와 유비처럼 각지에 할거한 군벌이 인의를 기치로 내걸고 온갖 궤변을 구사하며 치열하게 다투는 ‘군벌각축’의 양상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기면 모든 것이 미화돼 ‘만세의 구세주’가 되고, 패하면 모든 게 폄하돼 ‘만고의 역적’이 됩니다.
만세의 구세주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승리해야 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후흑’이 달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난세의 군주가 지녀야 할 덕목으로 ‘여우의 간계’와 ‘사자의 용맹’을 든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후흑의 근원적 욕구는 욕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똥볼을 차는 이유
패도: 仁義(인의)를 무시하고 무력이나 權謀術數(권모술수)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일. 王道(왕도)의 對(대). 출전 孟子
욕심을 부려서 패도를 했다고 해도 그릇이 안되면 담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억지로 욕심을 부려서 자신이 원하던 정상을 올라 갔는데 유지를 못하는 경우는 많이 봅니다.
몇달 전 박지원 국민의 당 의원이 추미애 민주당 대표를 보고 말했습니다. '내가 똥볼 찾 줄 알았다!'
추미애대표의 그릇은 국회의원인 것 같습니다. 추미애의원에게 대표자리는 버거워 보입니다. 자주 자신의 그릇보다 더 큰 일을 하고 싶어하기에 버거워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정치인들이 많이 보입니다.
몇 년 전 민주당 박영선대표 세월호 문제로 똥볼을 찾습니다, 현재 새누리당의 이정현대표 박근혜대통령에 대한 짝사랑으로 똥볼을 찾습니다, 몇 년 전 홍준표 그리고 얼마 전 김무송대표 3일이면 자신의 의지를 바꾸는 똥볼...다 들 당대표를 하기에는 버거워 보입니다.
욕심이 있어서 대표가 되기는 했는데 대표자리가 버거워 보이고 자꾸 무리하게 일을 하다 보니 탈이 납니다.
똥볼을 차는 이유는 욕심은 큰데 그릇이 작으니 급해지고 힘들어서 행동이 자유스럽지 않으니 자연히 똥볼을 차게 되는 것 같습니다.
패도도 힘든었는데 그 자리를 지키려니 힘들고 왕도는 꿈도 꾸지 못합니다.
꿈이라
힘들게 패도를 하고 그 자리를 억지로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왕도정치를 외치고 다녔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자와 맹자였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 현 위치를 지키기도 힘들어서 쩔쩔매는데 그래서 부국강병이 최우선인데 왕도정치라니...
그것을 깨달은 순자는 왕도보다는 법을 외칩니다. 법이 먼저인 법치국가 그래서 강한 법을 받아들인 진나라가 부국강병을 이루고 진시황제는 최초의 중국통일을 합니다.
그렇지만 법치국가인 진나라는 14년을 못 버티고 무너졌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자신을 다스리고 집안을 편안케 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에 평화를 이룬다. 이렇게 한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부처님과 예수님도 평천하를 시도 했지만 이루지 못했고 공자와 맹자도 평천하인 왕도정치를 외치기는 했지만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들은 꿈을 꾸기는 했습니다.
꿈이란 이상은 패도를 하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패도도 이루지 못한 범부들의 꿈은 개꿈인 것 같습니다. 능력이 부족하고 증명되지도 않았는데 꿈이라 그래서 개꿈입니다.
골인이던 똥볼이던?
패도를 하고 그 자리를 지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Transcending (초월하다) vs. Condescending (거들먹거리다)
패도를 하고 나서 자신과 패도를 이룬 동료들에게 감사와 동시에 더 큰 꿈을 품자고 그래서 더 큰 성장을 같이 이루자고 지금의 패도를 초월해서 왕도를 실천하자고 그런데 패도를 하고 나면 자신과 같이 패도를 한 사람들을 버리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이 패도를 했다고 생각하니 권력을 나누기도 싫고 동료들이 부족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동료들을 버리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동료들 때문에 자신이 그 자리에 까지 같다는 생각은 잊어버리게 됩니다.
고마움과 감사를 통해서 동료들과 힘을 합치면 초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거들먹거리며 자신의 위대함을 과시하고 싶으면 똥볼을 차게 되는 것은 아닐지!!!
패도를 하고 수성을 하고 그 다음에는 존경까지 받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겨우 패도를 하고 수성에 실패를 하는 사람들이 많고 패도를 하지도 못하고 실패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꿈만 쫓고 그릇만 크게 보이려고 무리를 하다 보면 작은 것 하나 이루기 힘듭니다. 작은 것이라도 이루려면 욕심이 있어야 하고 꼼꼼해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작은 것이라도 이루려면 뭐를 해야 할까요?
자신이 욕심 부릴 만한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슨 수를 사용하더라도 패도를 해야 합니다. 패도를 먼저 해야 무엇이던지 할 수 있습니다.
패도를 해야 똥볼을 찰 기회가 생깁니다. 똥볼이던 골이던 차려면 패도를 해야 합니다. 패도를 하고 Transcending을 할지 Condescending을 할지는 그때 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