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역사: 총을 든 간디 -호지민

Words
478
Reading
3 min
Listen
Play
8y

호지민.jpg

현대 역사: 총을 든 간디 -호지민

호치민은, 미국과 맞싸워 승리한 최초이자 아직까지는 ‘불행하게도’ 최후인, 제3세계의 지도자이다.

그는 세 차례의 투쟁에서 모두 이긴 사람이다. 첫 번째 투쟁은 오랜 세월 동안 베트남을 지배한 제국주의 프랑스. 두 번째 싸움은 1960년대에 시작된 미국의 침공에 맞서 싸운 것. 그리고 세 번째 투쟁은 그 자신이 권력화되어 원래의 그 자신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경계하고자 한 싸움. 그는 평생 동안 치른 이 세 가지 투쟁 동안 갈색의 허름한 외투와 금방이라도 찢어지고 말 듯한 낡은 고무신을 신고 싸웠다.

1890년 베트남 명문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베트남 백성들을 가르치기 위해 공무원을 사퇴까지 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학과 서양학문, 그리고 올바르게 사는 법을 익혔다. 아버지의 개혁적인 성향을 이어받은 호치민은 프랑스의 세금 제도에 저항하면서 일찌감치 저항 인사로 분류되었다.

청년 호치민은 20세기 초의 수많은 식민지 지식인들이 겪어야 하는 통과제의에 따라 그 자신을 억압한 프랑스로 건너갔다. 하지만 호치민은, 영국으로 유학하여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던 간디나 프랑스로 유학하여 의사가 되었던 프란츠 파농이나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서 공부했던 안창호와 달리 1911년에 배를 타고 프랑스로 건너가 막노동꾼으로 일을 했다. 파리에서 사진 보정 기술자로 일한 그는 그 무렵에 창설된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고 이때부터 서구의 혁명사상과 그 자신의 베트남 애국주의를 결합해 나가기 시작한다.

호치민이 자신의 애국주의가 기본적으로 ‘행동’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1919년에 민족자결주의를 발표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이다. 호치민은 윌슨에게 프랑스가 베트남에서 저지르는 만행과 이에 대한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문서를 넘겨주려다 실패를 하게 된다. 이때 호치민은 서구 열강의 ‘이해 관심’이라는 틀에 베트남의 운명을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925년에 호치민은 홍콩을 거점으로 하여 프랑스에 대한 베트남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을 지휘한다. 지식인과 청년들을 대중과 적극적으로 만나게 하고 군대까지 결성하게 된다. 감옥에 갇혀 고초를 겪기도 했다. 2차 대전이 격렬해지면서 일본군이 프랑스군을 격퇴시키는 양상이 발생함에 따라 일부에서는 일본군을 해방의 조력자로 여겼으나, 프랑스에서의 체험을 잊을 리 없는 호치민은 제국주의의 군홧발에 베트남의 운명을 맡기는 조처를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프랑스와 일본을 상대로 저항 게릴라 운동을 지도한 호치민은, 1945년 일본군이 패퇴한 이후 다시 프랑스가 ‘질서 유지’를 이유로 재침략을 하려 하자 ‘당신들 1명이 죽을 때마다 베트남인 10명이 희생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들은 패배할 것이고 우리는 이길 것이다’는 말로 다시 저항에 나섰다. 프랑스와의 새로운 전쟁은 8년 동안 진행된 다음에야 끝이났다.

하지만 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이 베트남 민중과 함께 그들의 살림을 아름답게 설계해나갈 미래는 계속 유보되었다. 제국주의 시대는 종막을 고했지만 새로운 제국이 베트남의 미래에 먹구름을 드리운 것이었다. 인도차이나 반도를 차지하기 위한 미국의 책략은 마침내 1955년 남베트남 지역에 고 딘 디엠 정권을 세우는 일로 나타났다. 베트남은 강분되었고, 곧 내전의 형식을 빌린, 베트남과 미국의 전쟁이 벌어졌다.

베트남은 마침내 전쟁을 승리로 끝냈지만, 그 최종의 결과를 호치민은 보지 못했다. 1969년 9월 3일, 79살로 사망했다. 평생 남루한 옷차림으로 검소하게 살았던 호치민은 사망하면서도 한 뼘의 농지라도 헛된 일에 쓸 수는 없다며 화장을 해달라고 했다. 물론 현재 그의 시신은 사회주의권의 관례대로 방부 처리하여 영구보관하고 있다.

호치민의 투쟁 양식과 정세 판단과 상관없이, 그가 검소한 차림으로 평생을 일관했던 양식만큼은 어려서부터 유학을 깊이 배우면서 익히게 된 동양적 목민관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기록들을 보니, 과연 사실이 그러한지는 믿기 어려우나, 호치민은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머리맡에 두고 읽었다고도 하는데, 아무튼 그런 동양적 목민관의 검소하고 낮은 자세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역사: 총을 든 간디 -호지민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