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대해서: 파괴의 신 시바
힌두교 삼신(三神)의 하나로, 세계를 멸망시키는 파괴자이다. 시바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베다 시대의 루드라Rudra(울부짖는 자, 소용돌이에서 인격화된 파괴의 신)에서 비롯된 드라비다 계통의 신으로 생각된다. 시바의 파괴는 새로운 재창조를 의미하는 것으로서의 죽음이다. 창조 이전 단계에서의 시바는 우주의 축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으므로 링가의 형태로 숭배된다.
시바는 원래 부와 행복, 길조를 의미했지만 나중에는 창조와 파괴의 신이 되었다. 눈은 셋이고, 악마가 풀어 놓은 오염된 바닷물을 마셔 목이 검푸르다고 전해진다.
네이버 백과사전 중에서
Against vs Pro
파괴를 통한 새로운 재창조를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파괴를 하는 과정에서는 희생이 발생합니다. 어쩔수 없는 것인지 항상 무리를 하고 실수를 거듭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파괴의 과정이 없다면 새로운 창조는 없습니다.
테레사 수녀님께 기자가 물어보았습니다.
기자: '전쟁에 대한 반대 시위가 있는데 참가하시겠습니까?'
수녀님:'아니오 저는 평화를 사랑하는 모임에는 참가하지만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에는 참가하지 않겠습니다'
기자:'같은 것 아닙니까?'
수녀님: '파괴로 사랑을 실천할수는 없습니다'
어떤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해하는데 오래 걸렸습니다. 전쟁반대와 평화사랑은 비슷한 것 같지만 실천방법에서 많이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비슷한 성격으로 시작될수도 있겠지만 실천을 하다보면 결과가 달라집니다.
아무리 성전이라고 외쳐도 과격 이슬람단체들이 외치는 지하드는 테러가 됩니다.
G20 회의가 몇년전에 토론토에서 있었습니다. 시위에 참가한 청년들은 창문들을 깨고 차에 방화를 하고 파괴적으로 변했습니다.
FTA 반대 시위는 항상 폭력으로 끝나게 됩니다.
무엇에 반대하다보면 과격하고 파괴적이 됩니다. 결과는 서로 헤어지게 됩니다. 대신 같이 도모하다보면 서로 같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서로 다른다는 것을 확인하는 반대와 서로 크게 차이는 없고 본질은 같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도모와 동의.
그러나 필요한 파괴의 신
새로운 창조를 하려면 파괴의 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파괴를 사람 스스로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렇지만 자주 파괴의 신이 등장하면 사람들의 삶은 피팍해지고 힘들어집니다.
자신을 스스로 파괴하고 다시 창조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참 어려운 단어입니다. 스스로를 파괴하고 창조하고
자연을 한문으로 해석하면 '스스로 그러하다' 입니다. 자연은 그냥 스스로 알아서 합니다. 스스로를 파괴하고 창조하면서 변화합니다. 가능할까...나는 가능할까...스스로를 파괴하고 창조할 수 있을까?
자연 (스스로 자 自 그럴 연然)
알버트 아인스타인은 "바보는 같은 행동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원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같은 행동을 하면서 좋은 결과를 상상합니다.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창조를 꿈꾸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