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쯤에는: 어둠이 필요한 이유
해초가 없으면 물고기가 없다
만약 밝은 대낮만 계속 된다면
사람들은 며칠 못 가서 다 쓰러지고 말 것이다.
다들 어둠을 싫어한다.
하지만 어둠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 갈 수 있다.
낮도 밤도 모두 삶의 일부인 것이다.
다들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추함이 있어야 아름다움이 더욱 빛나듯
시련이 있어야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태양의 고마움은 당연한 듯 여기나
새벽별의 기상은 가슴 깊이 각인된다.
어둠을 뚫고 솟구쳤기에 그런 것이다.
젊은 어부가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다.
해초가 많아 고기를 잡는데 방해가 되었다.
그는 화를 내며 불평했다.
“독한 약을 풀어서라도 해초를 다 없애 버려야겠다.”
그러자 늙은 어부가 말했다.
“해초가 없어지면 물고기의 먹이도 없어지고
먹이가 없어지면 물고기도 없어진다.”
우리는 장애물이 없어지면 행복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장애물이 없어지면
장애를 극복하려던 의욕도 함께 없어지게 된다.
오리는 알 껍질을 깨는 고통의 과정을
겪어야만 살아갈 힘을 얻는다.
누군가 알 깨는 것을 도와주면
그 오리는 몇 시간 못 가 죽는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시련과 고통이 있어야 탄생과 성장이 있다.
그림자가 없으면 빛도 없다.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 빛과 그림자는 둘 아닌 하나인 것이다.
이원론
세계나 사상을 두 개의 상호간에 독립하는 근본 원리로 설명하는 입장이다. 세계나 인간을 설명할 경우에 쓰인다.
조로아스터 등의 종교에도 있지만 철학에서는 데카르트가 대표자이다. 데카르트는 물심 이원론을 주장하여, 정신과 신체(물질)는 전혀 이질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원론을 철저히 구명한다면 물심이 분열해버리기 때문에 스피노자는 물심이 실체의 표리(表裏)라 하여 일원론을 주장했다. 또한 다원론도 일원론의 곤란을 극복하는 것으로서 생겨났다.
서양 철학에서 감정과 이성을 분리하고 이성에 절대적 지위를 부여한 인물 데카르트. 그 같은 사고방식은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가령 "냉정하게 생각해봐"와 같은 일상회화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일까? 냉정하게 생각해보라는 이야기는 흥분해서 감정에 치우쳐서 판단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일겁니다.
이성과 감정을 분리하려고 노력한 데카르트 그러나 그런 행동이 가능할까요?
천국과 지옥, 악마와 천사, 흑과 백, 아군과 적군, 믿는자와 안믿는자 그리고 이런 것들을 좋고 나쁨으로 나누는 이원론.
나에게 좋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나쁜 것도 될 수 있으므로 이원론으로 세상을 보면 서로에게 많은 불편이 있습니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들 좋다고 생각하면 좋을텐데 그런지 않아서 우리를 많이 불편하게 합니다.
악마라는 개념…
내 머리 속에 악마는 나쁜 겁니다. 아주 빨간색이거나 검은색입니다. 그리고 지옥에나 살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쁜 것이 왜 존재할까요?
없어져야 할텐데 왜 존재할까요? 옛부터 존재한다면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이원론으로 생각하지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악마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악마도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요?
왜 천사는 악마를 없애지 않을까요?
악마도 신의 명령을 받을까요?
흑백논리 말고
흑백논리를 줄이려고 합니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고, 달도 차면 기울고, 태어나면 죽고, 겨울이 오면 봄이 오고…
악마라는 것을 시련이라고 바꿔 표현하면 어떨까요? 인생을 살다 보면 시련이 옵니다. 시련을 못 겪은 사람은 인간적인 성장을 하기가 힘듭니다. 물론 시련을 겪지 않고 깨달음을 얻으면 좋겠지만 사람이 그렇게 현명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악마, 시련, 고생, 어려움, 궁핍함, 억울함 그리고 외로움 이런 단어들이 뜻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기도를 합니다. 억울했을 겁니다. 외로웠을 겁니다. 신은 어디 있냐고 외쳤을 겁니다. 신은 없다는 악마의 유혹도 받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진정으로 하느님을 받아들입니다. ‘당신의 뜻이라면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고!’
시련을 구원으로 받아들이는 예수!
악마라고 불리는 나쁜 놈이 없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멍청한 질문을 던지며 악마도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고민을 해봅니다.
하지만 악마가 창궐하면 인간세상이 살기는 힘들어질겁니다. 그럴때면 사람들은 메시아를 찾습니다. 가끔 메시아를 가장한 더 나쁜 악마들도 많지만.
어둠이 필요한 이유
어둠이 없다면 우리는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어둠이 없다면 우리는 겸손해지지 않습니다. 어둠이 없다면 우리는 고민 하지 않습니다. 어둠이 없다면 우리는 작아지지 않습니다.
쉬지 않고, 겸손해지지 않고, 고민을 하지 않고, 작아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장할 이유를 모를 겁니다. 성장하기 위해서 이해하기 위해서 깨달음을 위해서 우리는 시련을 만납니다.
우리는 시련 앞에서 약해지고 작아지지만 시련을 넘어서면 강해지고 성장합니다.
시련이라는 악마, 어둠이라는 둥지에서 생활하는 악마 그러나 악마는 우리주위를 맴돌고 항상 우리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약해지고 교만해지면 다시 등장을 할겁니다. 악마는 아주 많은 가면을 준비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